정병호(59)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극장국가 북한’ 공동저자 정병호씨
정통성 취약한 김정은 체제
장성택 숙청은 내부 경고용
마식령 스키장·피자 가게는
경제개발 적극추진 신호탄
정통성 취약한 김정은 체제
장성택 숙청은 내부 경고용
마식령 스키장·피자 가게는
경제개발 적극추진 신호탄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는 장남이 아닌 ‘3남 세습’을 했고 내세울 경력이나 투쟁 경험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권위 강화를 위해 앞으로도 상징 조작 등에 매달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의 권력 세습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분석한 책으로 화제를 모았던 <극장국가 북한>(창비)의 공동 저자인 정병호(59·사진)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최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런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의 처형 이후 김정은 제1비서의 행보와 관련해 “‘극장국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교수는 김 제1비서의 취약점으로 3남이라는 점을 꼽았다. 장 전 부장의 처형도 이런 취약점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김정일의 2대 세습 때 북한은 권력의 상징 체계를 장남의 세습으로 형성했다. 이런 전례에 비춰보면 3남의 3대 세습은 정통성이나 권위에서 취약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이 혁명의 어머니로 ‘재발명’돼 2대 세습 정통성을 모계 쪽에서도 확보해줬지만, 김정은의 어머니 고영희는 재일동포 출신으로 그런 구실을 못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에서 ‘백두혈통’의 권위는 확고하지만 3남은 대체 가능하다는 약점이 있으며, 장남 세습을 하지 못한 사정을 잘 아는 장성택이 이런 대체 가능성을 실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장성택 전 부장이 실제 김정은 제1비서의 대체를 추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 제1비서로서는 미리 위협을 느끼고 싹을 잘라버릴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장성택 숙청은 우선 김정은 이외의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는 내부 엘리트 집단에 대한 경고 메시지가 크다”고 말했다.
북한이 장 전 부장의 숙청을 공개적으로 전격 처리한 배경과 관련해서는 “변화된 미디어 환경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신비성은 카리스마 권력의 중요한 속성이기 때문에 이번 공개에는 리스크가 따른다”며 “그렇지만 이미 남쪽 언론에 다 알려졌고, 중국에만 북한 사람들이 10만명 넘게 왔다갔다하는데, 과거처럼 그냥 묻어두고 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북한은 이미 경제개발을 중시하는 발전주의 국가 모델로 가고 있다”며 “김정은이 평양에 햄버거, 피자 가게를 열고 마식령 스키장을 건설하는 등 소비문화를 주도하는 것은 그런 징후”라고 말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발전주의 모델의 주도권과 방식 등을 놓고 김 제1비서와 장 전 부장이 충돌했을 가능성도 제시했다.
그는 북한 언론들이 최근 밝힌 장 전 부장의 죄목에 ‘대원수님들의 모자이크 영상 작품과 현지지도 사적비를 모시는 사업을 가로막았다’는 대목이 있는 점 등을 들어 “장성택이 극장국가 모델의 낭비와 비효율성 등을 이유로 제동을 걸었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또 장 전 부장이 외자 도입이나 경협 등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발전주의 모델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을 우려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장 전 부장은 실제 북한 언론으로부터 “제 놈이 있던 부서가 나라의 중요 경제부문들을 다 걷어쥐여 내각을 무력화시켰다”는 비난을 받았다.
정 교수는 당분간 김 제1비서가 권위 강화를 위해 더욱 상징 조작에 매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은이 나이가 어리고 투쟁 경험도 없고 게다가 3남이기 때문에 상징 조작, 극장국가 강화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올 2월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와 함께 <극장국가 북한>을 출간하면서 ‘북한이 유례없는 극장국가를 만들어 성공적으로 세습체제를 구축했으나 결국에는 북한의 총체적 실패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인도적 지원을 목적으로 여러 차례 방북했으며, 남북 문화통합을 다룬 <웰컴 투 코리아: 북조선 사람들의 남한살이> <한국의 다문화 공간> 등도 냈다.
글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사진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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