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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이러다가 오래 못 간다 / 한귀영

등록 2013-10-15 19:26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정치와 드라마, 둘 다에 관심이 높은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과 인기 있는 막장드라마의 시청률은 묘하게 닮았다. 첫째 욕하면서 본다(지지한다)는 점이다. 막장드라마는 비상식적이고 자극적인 줄거리로 구성되어 있지만 시청률만큼은 높다. 박 대통령의 청와대는 비리 전력의 서청원 공천, 기초연금 공약 위반, 채동욱 총장 밀어내기 의혹 등 상식 무시, 약속 위반, 퇴행적 행태 등에도 불구하고 60% 안팎의 안정적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둘째, 막장드라마나 박 대통령 국정운영 모두 주변에 지지한다는 사람이 드문데도 막상 시청률(지지율)은 높게 나타난다. 이는 당사자들이 자신을 드러내길 꺼리기 때문인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각자 짐작하시라. 셋째, 볼만한 것이 없을 때 욕하면서도 막장드라마를 보게 된다. 대통령 지지도도 마찬가지다. 마땅한 대안이 없을 때는 차악으로라도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막장드라마의 높은 시청률에는 나름의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인간의 밑바닥 감성을 후벼파는 묘한 설득력이 있다.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도 마찬가지다. 기초연금 공약을 둘러싼 상황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대표적인 복지공약을 위반한 것에 실망한 지지층이 이탈하면서 박 대통령 국정운영이 타격을 받았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공약 파기라며 강하게 비판하는 야권과 다수 전문가들의 분석과 달리 여론조사 결과는 정부안에 공감하는 의견이 높다. 9월30일 보도된 한국방송(KBS) 조사에서는 기초연금 축소 결정에 공감한다는 응답이 60%였고, 10월 첫주 갤럽 조사에서도 찬성 여론이 62%로 반대 여론(26%)을 압도했다. 이미 국민 다수(82%)가 기초연금 선별지급안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소득 하위 70%로 대상이 축소된 박근혜 정부 기초연금안에 대해 국민들은 불가피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초연금에 대해 공약 파기로 대응한 야권의 프레임이 국민들의 일반적 정서와 겉돌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동안 정치인이 내거는 공약은 으레 선거 때만 유효하고 당선되면 말 바꾸기가 능사였던 것에 실망했던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래도 박 대통령은 공약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라도 보인 축에 속할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은 이런 정치권에 대한 낮은 기대심리, 정치에서 약속 파기란 당연하다고 체념해왔던 대중의 밑바닥 정서를 포착해 철저하고 교활하게 이용하고 있다. 야권은 이런 냉혹한 현실을 외면했거나 제대로 볼 수 있는 냉철함을 갖추지 못한 채 ‘순진하게’ 대응했다. 기초연금 공약을 둘러싼 많은 논란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건재한 이유다.

하지만 시청률에 목맨 막장드라마는 그때뿐 시간이 흐르면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진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겉으로는 견고해 보여도 내부적으로는 점점 균열이 가고 있다. 위협적인 견제세력의 부재 속에 폭주에 가까운 국정운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엔엘엘(NLL) 논란을 핑계로 삼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부관참시하는 등 증오심리를 자극하는 일이 횡행하고 있다. 서청원 공천 등 이성과 상식을 파괴하는 인사도 반복되고 있다. 기초연금 공약 위반에서 드러나듯이 대중의 낮은 기대수준에 안주하고 이용하는 국정운영 행태가 자행되는 가운데 국민들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교활하지도 세련되지도 못하다. 높은 지지율이 덫으로 작용하고 있다. 외부와의 소통은 차단되고 성찰과 반성이 설 자리는 부재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부디 막장드라마와 다른 길을 가기를 바랄 뿐이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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