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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잠복 끝 급습…동물단체는 왜 도살장 철폐에 나섰나

등록 2021-08-11 15:35수정 2021-08-12 21:03

[애니멀피플] 카라 여주도살장 급습 1박2일 동행
경찰·지자체 나서야 할 불법 개도살장 적발에 온 힘
도살 직전 개 31마리 구조…“개식용 유통망 끊어야”
말복을 앞둔 지난 7~8일 동물단체 카라가 경기 여주시 불법 개도살장 현장을 급습했다. 당시 현장에는 개 31마리 등이 전기쇠꼬챙이를 이용한 도살 직전에 놓여있었다. 사진 카라 제공
말복을 앞둔 지난 7~8일 동물단체 카라가 경기 여주시 불법 개도살장 현장을 급습했다. 당시 현장에는 개 31마리 등이 전기쇠꼬챙이를 이용한 도살 직전에 놓여있었다. 사진 카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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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네번째다. 활동가들은 익숙한 듯 큰 가방을 메고 집결지로 들어섰다. 티셔츠는 두 장을 겹쳐 입은 모습이었다. 겉옷은 동물단체 티셔츠를 가리기 위한 위장용이었다. 한 테이블에 서너 명이 자리를 잡자 카라 김현지 정책실장이 각 테이블로 이동하며 앞으로 있을 ‘거사’를 꼼꼼히 상의했다. 각 조가 맡은 역할과 동선, 타임 테이블 등이 적힌 상황판이 등장하자 분위기도 한층 긴장감이 느껴졌다. 비밀 작전이 따로 없었다. 작전 참가자들은 동물단체 활동가, 훈련사, 수의사 등이었다. 동물단체 카라가 네번째 불법 개도살장 급습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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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행위 포착 위해…24시간 잠복 ‘비밀 작전’

지난 7~8일 카라의 경기 여주시 불법 개도살장 적발 현장에 동행했다. 카라는 지난해 12월부터 경기 고양시, 의정부 등에서 음성적으로 운영되는 불법 개 도살장을 적발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날 목표가 된 여주시 도살장은 지난해 이미 잔인한 도살 행위로 벌금 200만원의 처벌을 받은 적이 있는 고양시 설문동의 도살업자가 또 다시 불법 도살을 벌이는 곳이었다.

7일 낮 12시 1차 집결지에 모인 활동가들은 먼저 도살업자의 도주로를 막기 위한 방안부터 논의했다. 지난해 적발 당시 도살업자가 자신의 불법 행위가 드러나자 현장에서 그대로 자취를 감추고, 도살장에 남아있던 서른 마리의 개들을 몰래 빼돌리려 했기 때문이다. 도살장이 표시된 지도 위에 A조와 B조의 잠복 위치가 그려졌다.

불법 도살장은 산 속 깊은 곳에 숨어 있었다.
불법 도살장은 산 속 깊은 곳에 숨어 있었다.

“도살이 시작될 것 같으면 A조가 바로 치고 들어가고, B조가 퇴로를 막고 들어오기로 했어요.” 김현지 실장의 배려로 A조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도살장 ‘타격조’에 들다니 손끝이 저려왔다. 그러나 대기 시간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7일 자정이 지나도록 도살업자는 주요 본거지인 성남 모란시장 안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잠복 대기는 날을 넘겨 꼬박 24시간 동안 이어졌다.

이들이 꼭 도살 순간을 덮치려는 이유가 있었다. 전진경 카라 대표는 “외진 곳에 숨은 불법 도살장은 찾기도 어렵지만, 막상 위치가 파악되더라도 도살 현장이 포착되지 않으면 고발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전기쇠꼬챙이, 털제거 기계, 뜨거운 물(탕지) 등 불법도살에 쓰이는 도구 만으로는 불법 도살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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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직전 31마리의 개가 구조됐다

8일 오전 8시께 드디어 도살업자가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추적조’는 업자의 차가 파주시 육견경매장 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알려왔다. 두어 시간 뒤 개들을 실은 차량이 여주시 도살장에 인접했다. 타격조는 추적조에 실시간으로 도살업자의 움직임을 묻고 있었다. 그가 도살장에 도착했는지, 트럭에 개들을 몇 마리나 실었는지, 개를 우겨넣은 철망을 하나씩 내리는지 한꺼번에 내리는지 등 질문은 아주 구체적이었다. “실제로 도살이 벌어지기 직전에 들어가야 한 마리도 목숨을 잃지 않으니까요.”

불법도살 현장이 드러나자 저항하는 도살업자와 이를 제지하는 활동가들.
불법도살 현장이 드러나자 저항하는 도살업자와 이를 제지하는 활동가들.

오후 1시 마침내 급습 신호가 전달됐고 활동가들이 산 속 도살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웅용 키움애견스쿨 소장과 코리안 케이나인 레스큐 활동가 등 훈련사들이 앞장서고 뒤이어 카라 활동가들이 도살장으로 진입했다. 활동가들을 발견한 도살업자는 “나가!”라고 소리치며 저항했지만, 20여 분 만에 경찰이 도착하자 자신의 불법 행위를 인정하는 듯 보였다.

현장에는 개 31마리와 염소 2마리, 칠면조 등 가금류 4마리가 있었다. 도살장 바닥에 던져진 철망 안에는 서너 마리의 개가 우겨 넣어져 있었다. 고개도 들수 없을 정도로 좁고 낮은 철망에 갇힌 개들은 물에 젖어 있었고(보통 도살업자들은 전기 감전을 위해 개들에게 물을 뿌리고 전기봉을 들이댄다), 바로 옆에는 털 제거를 쉽게 하기 위한 뜨거운 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전진경 카라 대표가 현장에서 발견된 전기쇠꼬챙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전진경 카라 대표가 현장에서 발견된 전기쇠꼬챙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전기쇠꼬챙이는 바로 쓸 수 있도록 콘센트에 연결돼 있었다. 도살장 안은 별다른 칸막이조차 없어 다른 개들이 도살 장면을 훤히 볼 수 있는 구조였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음에 이른 행위(제8조 1항)와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제8조 2항)를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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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발도 구조도 시민이…공권력은 어디 있나

개들은 낮 기온 33도의 폭염과 서로의 몸에 부대껴 헉헉대고 있었다. ‘개고기’가 될 운명이었지만 갈비뼈가 훤히 드러나 있었고, 뜬장에 웅크리고 있는 도사견들은 눈곱이 잔뜩 끼어 있었다. 와중에도 어린 강아지들은 사람을 반기며 꼬리를 흔들어댔다. 수의사 김형규씨의 진단에 따라 탈진 상태에 빠진 개들부터 켄넬로 옮겨졌다.

수의사 김형규씨의 진단에 따라 탈진 상태에 빠진 개들부터 켄넬로 옮겨졌다.
수의사 김형규씨의 진단에 따라 탈진 상태에 빠진 개들부터 켄넬로 옮겨졌다.

도살업자가 연행되면서 개들을 철망에서 빼내는 것에는 동의해 일단 개들은 켄넬로 옮길 수 있었지만, 보호 조치를 위해서는 여주시의 판단이 필요했다. 동물보호법은 학대 받은 동물의 학대 재발방지를 위해서 지자체장(시·군·구청장)이 학대 행위자로부터 격리해야 한다(제14조)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관련기사: ‘불법 도살’ 여주 도살장 개들 왜 일부만 구출됐나)

급습 1시간 뒤 현장에 나타난 여주시 관계자는 처음엔 도살장을 보고서도 ‘무엇이 학대냐’고 되묻다 활동가들로부터 항의를 들어야했다. 카라 활동가들이 재차 관련 법률과 보호 조치를 설명하며 설득하는 과정이 30여 분간 이어졌다.

관할 지구대에서 출동한 경찰들은 동물학대 상황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여기서 개가 죽은 걸 봤냐”는 말을 반복해 활동가들은 도살자가 이전에도 동종 범죄로 처벌 전력이 있다는 점과 주변의 불법 도살 도구와 사체 등을 제시해야 했다.

‘개고기’가 될 운명이었지만 갈비뼈가 훤히 드러나 있었고, 뜬장에 웅크리고 있는 도사견들은 눈꼽이 잔뜩 끼어 있었다.
‘개고기’가 될 운명이었지만 갈비뼈가 훤히 드러나 있었고, 뜬장에 웅크리고 있는 도사견들은 눈꼽이 잔뜩 끼어 있었다.

어린 강아지들은 사람을 반기며 꼬리를 흔들어댔다.
어린 강아지들은 사람을 반기며 꼬리를 흔들어댔다.

마침내 여주시가 모든 동물을 학대동물로 인정해 격리조치를 결정했지만, 개들을 직접 보호할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격리조치를 결정한 직원이 현장에서 말도 없이 사라진 뒤 동물보호팀 팀장이 현장에 나온 것은 급습 3시간이 지난 오후 4시었다. 카라 활동가들은 “시민들도 SNS로 소식을 보고 현장에 모이고 있는데 담당 지자체 직원이 일요일이라며 대처가 어렵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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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장·경매장이 돈 버는 구조, 유통 끊어야”

결국 여주시는 추후 카라가 모든 개들을 보호한다는 내용의 협약을 맺은 뒤에야 시 동물보호센터 입소를 결정했다. 개농장·도살장 적발을 대하는 지자체의 소극적 태도는 비단 여주시만의 사례는 아니다. 수백억 예산을 투입해 반려동물테마파크를 짓는 시대지만, 대부분의 지자체가 동물보호팀 직원은 서너 명에 불과하고 위탁 운영 중인 유기동물보호센터는 이미 수용포화 상태이기 때문이다.

8일 저녁 개들은 임시 격리 보호처인 여주시 동물보호센터로 이동한 뒤 10일 카라 보호소에 입소했다. 카라 제공
8일 저녁 개들은 임시 격리 보호처인 여주시 동물보호센터로 이동한 뒤 10일 카라 보호소에 입소했다. 카라 제공

‘목 마른’ 동물단체들이 앞장설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단체들은 대선을 7개월 앞둔 지금이 바로 ‘개 도살 식용’의 문제점을 드러낼 적기라고 판단하고 있다. 전진경 대표는 “영세한 개농장주들은 이미 폐업을 원하고 있다. 돈을 버는 것은 경매장·도살장을 운영하는 유통업자들이다. 싼 값에 개를 사들여 2배 이상의 값으로 시장에 팔고 있다. 벌금 100~200만원은 하루 이틀이면 충당할 수 있는데 어떻게 불법이 근절될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글·사진/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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