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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파괴왕, 탈출왕, 호기심왕 라쿤 ‘로켓’은 잘못이 없다

등록 2021-10-01 13:00수정 2021-10-01 13:31

[애니멀피플] 통신원 칼럼
지난해 동네서 말썽 피우다 구조된 라쿤 ‘로켓’ 이야기
환경조성 노력에도‘역부족’…사랑하다면 자연에 남겨두자
지난해 동네에서 여러 말썽을 피우다 구조된 라쿤 ‘로켓’. 로켓은 중성화까지 마친 유기 동물이었다.
지난해 동네에서 여러 말썽을 피우다 구조된 라쿤 ‘로켓’. 로켓은 중성화까지 마친 유기 동물이었다.

라쿤 ‘로켓’은 어느 날 도심에 문득 나타났다. 길고양이 급식소에 비치된 사료와 물을 먹었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두 손으로 가정집 창문을 열고 들어갔다 쫓겨났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말썽을 부렸던 로켓은 중성화가 끝나 있는 개체였다. 일반 가정이든 야생동물 카페든, 누군가 키우던 라쿤이란 뜻이었다.

라쿤이 언제까지고 동네에서 말썽을 부리도록 놔둘 순 없었다. 라쿤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었을뿐더러, 한국의 자연발생종이 아닌 만큼 도심 생태계에도 악역향을 미칠 것이 염려되었다. 카라 활동가들은 포획틀에 라쿤이 좋아하는 견과류를 놓아 로켓을 안전히 구조했다. 벌써 지난해 겨울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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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많은 라쿤, 로켓의 일상

포획된 라쿤은 야생동물이지만 국내종이 아니기 때문에 야생동물구조보호센터에 입소할 수 없었다. 유기동물로 보호자를 찾는 공고도 냈지만, 보호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라쿤은 카라에 입소하고 로켓이란 이름을 얻었다. 로켓은 구조 이후부터 지금까지 서울 서교동 카라 더불어숨센터 옥상의 실내외를 보금자리로 삼아 지내는 중이다.

라쿤은 활동량도 호기심도 많은데다가, 손을 민첩하게 쓸 줄 아는 동물이었다. 구조한 첫날 시시티브이(CCTV)를 뽑았고 일주일 뒤에는 에어컨 날개를 다 뜯어냈다.
라쿤은 활동량도 호기심도 많은데다가, 손을 민첩하게 쓸 줄 아는 동물이었다. 구조한 첫날 시시티브이(CCTV)를 뽑았고 일주일 뒤에는 에어컨 날개를 다 뜯어냈다.

로켓과 함께 지내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라쿤은 활동량도 호기심도 많은데다가, 손을 민첩하게 쓸 줄 아는 동물이었다. 구조한 첫날 시시티브이(CCTV)를 뽑았고 일주일 뒤에는 에어컨 날개를 다 뜯어냈다. 잠가놓은 옥상문을 열고 한 층을 내려와선 탕비실을 헤집고 서랍 하나하나를 다 열고 엉망으로 만들었다.

로켓은 안전했지만, 많이 심심했던 것 같다. 어쩌면 라쿤이 버려진 게 아니라 문을 열고 나온 건 아닐까 하는 의뭉스러운 나날이 이어졌다. 활동가들이 번갈아 놀아줄 때에야 로켓은 조금 신이 나 보였다.

잠가놓은 옥상문을 열고 내려와 화분을 망친 로켓이.
잠가놓은 옥상문을 열고 내려와 화분을 망친 로켓이.

라쿤은 생각보다 더 다양한 행동자극이 필요한 동물이었다. 카라 활동가들은 도시 재개발지역 티엔아르(TNR·포획해서 중성화 한 뒤 제자리 방사하는 것) 활동을 갈 때마다 버려진 장난감을 주워왔다. 중고거래로 플라스틱 미끄럼틀과 시소, 목마 같은 것들을 구해오기도 했다.

로켓은 어린이용 장난감들과 캣폴, 대형 터널 등 기물을 이용해 활동가들과 술래잡기를 하는 걸 좋아했고 여름엔 간이풀장에서 노는 걸 즐겼다. 그러다 흥분도가 너무 높아지면 종종 활동가들을 덥석덥석 물어 피를 내거나 피부를 찢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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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쿤의 행복에 대하여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괜찮아질까?’ 야생동물이 사람 곁에서는 절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활동가들은 무엇이 동물에게 최선일지 매번 고민하며 로켓을 돌보고 있다. 라쿤의 생태와 복지를 위한 환경이 보장된 보호처를 찾고 있지만 조건에 맞는 곳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우리가 구조한 로켓의 사정이 라쿤카페나 동물원, 가정집의 라쿤들에 비해 낫다는 것 또한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우리나라 자연발생종이 아닌 라쿤은 야생동물구조보호센터에도 갈 수 없었다. 결국 카라 더불어숨센터에서 지내게 됐다.
우리나라 자연발생종이 아닌 라쿤은 야생동물구조보호센터에도 갈 수 없었다. 결국 카라 더불어숨센터에서 지내게 됐다.

로켓은 어린이용 장난감들과 캣폴, 대형 터널 등 기물을 이용해 활동가들과 술래잡기를 하는 걸 좋아했고 여름엔 간이풀장에서 노는 걸 즐겼다.
로켓은 어린이용 장난감들과 캣폴, 대형 터널 등 기물을 이용해 활동가들과 술래잡기를 하는 걸 좋아했고 여름엔 간이풀장에서 노는 걸 즐겼다.

라쿤은 지난해 생태계위해우려생물 1호로 지정됐다. 생태계교란 야생생물보다 위해성이 명확하지 않지만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생태계교란 위험이 있고, 수영장이 설치된 집이라 해도 절대 라쿤의 행동욕구를 해소할 수 없어 라쿤의 복지는 떨어지기만 하는데, 유기되거나 방치학대를 당하는 라쿤이 보호받을 제대로 된 생태공원 하나 없다는 것이 당장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한편 라쿤카페나 실내 체험동물원에서 라쿤을 전시, 체험에 이용하거나 라쿤을 반려동물로 기르려고 하는 상황은 계속 발생 중이다. 공중파나 유튜브 등 미디어에서는 라쿤 번식과 판매에 대한 윤리적 문제는 뒤로 한 채 동물의 귀여운 모습만 강조하기 일쑤다. 라쿤 반려를 미화하고, 소유욕을 부추기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사회에서 라쿤이 라쿤답게 살아갈 김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활동가들은 재개발 현장에 갈 때마다 버려진 장난감을 주워왔다. 중고거래로 플라스틱 미끄럼틀과 시소, 목마 같은 것들을 구해오기도 했다.
활동가들은 재개발 현장에 갈 때마다 버려진 장난감을 주워왔다. 중고거래로 플라스틱 미끄럼틀과 시소, 목마 같은 것들을 구해오기도 했다.

아무리 모든 것을 책임지며 라쿤 반려를 다짐한다고 해도, 인간은 라쿤에게 적합한 환경을 제공할 수 없다.
아무리 모든 것을 책임지며 라쿤 반려를 다짐한다고 해도, 인간은 라쿤에게 적합한 환경을 제공할 수 없다.

누군가는 ‘모든 것을 감수하고 책임진다’며 라쿤을 반려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책임’에 휩쓸려야 하는 라쿤에게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삶을 박탈 당하고 가족과 이별해 수백 킬로가 떨어진 먼 나라에서, 생태와 어긋나는 기후를 감당하며 자연과는 현저히 동떨어진 환경에서 살아가야 한다. 오직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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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라쿤을 라쿤답게

로켓을 돌보면 돌볼수록, 다른 라쿤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라쿤을 제대로 사랑하는 법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미끄럼틀과 시소를 갖다놓고 사람이 놀아주려고 해도 그 자극은 적합하지도 자연스럽지도 않다. 라쿤을 정말 좋아한다면 그들의 서식를 보호하고 태어난 그대로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존중하는 것이 섭리가 아닐까.

라쿤을 정말 좋아한다면 그들의 서식를 보호하고 태어난 그대로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존중하는 것이 섭리가 아닐까.
라쿤을 정말 좋아한다면 그들의 서식를 보호하고 태어난 그대로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존중하는 것이 섭리가 아닐까.

야생에서 도태되거나 병에 걸려 단명할지언정 라쿤답게 사는 것. 아마도 그것이 그들이 원하고 바라는 삶일 것이다. 여우, 수달, 미어캣 등 체험동물원의 수많은 야생동물들도 마찬가지다. 품종견, 품종묘 구매가 어떻게 생명경시를 부를 수 있는지 공감하는 시대다. ‘이색 반려동물’ 구매와 반려 또한 절실한 자성과 변화가 필요한 때다.

글 김나연 카라 활동가, 사진 동물권행동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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