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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한 교사들, 무심한 공무원들…토끼 40마리 ‘원정유기’됐다

등록 2022-07-21 11:39수정 2022-07-22 09:53

[애니멀피플]
서울 초등학교에서 개체수 늘자 ‘방사’ 명목으로 40마리 유기
동물단체 “유기 인지하고도 면피…무책임한 동물 사육 비교육적”
군포시 동물방역팀과 토끼보호연대는 7월9일 군포시립중앙도서관 인근에 토끼 18마리가 버려졌다는 제보를 받고 포획 작업에 들어갔다. 토끼보호연대 제공
군포시 동물방역팀과 토끼보호연대는 7월9일 군포시립중앙도서관 인근에 토끼 18마리가 버려졌다는 제보를 받고 포획 작업에 들어갔다. 토끼보호연대 제공

사람이 기르던 토끼를 산에 ‘자연 방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7월9일 수리산 입구에서 토끼 18마리가 발견돼 군포시 동물방역팀과 토끼보호연대가 구조에 나섰다. 숲이나 굴에 숨어있던 토끼들을 모아보니 개체 수는 30여 마리까지 늘었다. 비에 맞고 굶주린 토끼들 일부는 죽거나 심하게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상처 입은 토끼의 등은 구더기가 끓었고, 그 사이 태어난 새끼들은 살아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사체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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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사육장서 불어난 토끼 60마리

사상 초유의 ‘토끼 집단 유기 사건’의 주동자는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로 드러났다. 군포시와 토끼보호연대의 설명을 들어보면, 지난 9일 서울시 서대문구 ㄱ초등학교는 교내에서 기르던 토끼가 중성화 미비로 개체 수가 불어나자 군포 수리산을 찾아 토끼 40마리를 ‘방사’했다. 현행법상 토끼는 동물보호법에서는 반려동물, 축산법으로는 가축에 포함돼 키우다가 자연에 놓아주면 유기에 해당한다.

최초 18마리로 추정됐던 유기 토끼는 구조·포획 작업을 시작하자 30여 마리까지 늘어났다. 토끼보호연대
최초 18마리로 추정됐던 유기 토끼는 구조·포획 작업을 시작하자 30여 마리까지 늘어났다. 토끼보호연대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가 7월 초 사육하던 토끼 40마리를 경기 군포시 수리산 입구에 유기한 일이 뒤늦게 드러났다. 토끼보호연대 제공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가 7월 초 사육하던 토끼 40마리를 경기 군포시 수리산 입구에 유기한 일이 뒤늦게 드러났다. 토끼보호연대 제공

군포시 동물방역팀과 토끼보호연대는 토끼들이 발견된 직후부터 이들을 유기한 이를 찾으려 했지만 진전이 없자 18일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일주일 동안 수리산에서 구조된 토끼는 모두 35마리로, 2마리는 구조 뒤 사망했고 2마리는 사망한 채 발견됐다. 이러한 정보가 농림축산검역본부 유실·유기동물관리시스템(APMS)에 등록됐고, 이를 확인한 ㄱ초등학교가 19일 군포시청에 연락해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라고 알렸다.

ㄱ초등학교는 토끼를 산에 풀어준 것이 유기에 해당하는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ㄱ초등학교 조아무개 교감은 애니멀피플과의 통화에서 “학교 교사의 지인이 군포시 주민이라 수리산을 추천했다. 지난 6월 말, 그 지인이 군포시 환경과에 토끼 방사에 관해 전화로 문의를 했는데 당시 받은 답변을 허락한 것으로 판단해 토끼들을 방사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토끼들은 토끼 동아리 학생들이 교내 사육장에서 기르던 개체들로 2018년 4마리로 사육을 시작했으나 중성화 미비로 지난달 60~70여 마리까지 불어나게 됐다. 관리가 힘들어 해결책을 논의하던 중 5마리만 남기고, 모두 중성화를 하거나 산에 풀어주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후 20마리는 가정 분양을 했고, 나머지 40마리는 산에 풀어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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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허락 받은 것” 시청 “안 된다는 취지”

이렇게 40마리의 토끼는 토요일인 7월9일 교사 3명의 차량에 실려 서울 서대문구에서 경기 군포시까지 40여㎞ 이동해 ‘원정 유기’됐다. 조 교감은 “동물에 대해 너무 무지했던 탓이다. 의도적으로 유기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유기동물 공고에 우리 토끼들이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시청에 연락을 했다”고 말했다. 유기동물보호소에서 보호 중이던 21마리 토끼들은 19일 바로 회수했고, 이들 중 수컷 토끼들의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유기동물 입양 플랫폼 ‘포인핸드’에 유기 토끼들의 정보가 올라오자 ㄱ초등학교가 문제를 깨닫고 군포시에 연락을 취해오며 유기인임이 밝혀졌다. 포인핸드 갈무리
유기동물 입양 플랫폼 ‘포인핸드’에 유기 토끼들의 정보가 올라오자 ㄱ초등학교가 문제를 깨닫고 군포시에 연락을 취해오며 유기인임이 밝혀졌다. 포인핸드 갈무리

군포시청은 ㄱ초등학교 교사의 지인에게 어떻게 답했던 걸까? 해당 문의는 맨 처음 군포시청에 접수됐고, 군포시청은 이를 환경부에 문의했다.

군포시청 환경과 정지운 주무관은 애피와의 통화에서 “3월 초 전화 문의를 받았다. 교육기관에서 토끼 20마리를 방사하고 싶다고 했다. 저희는 부서는 야생동물 담당이라 (직접 판단할 수 없어서) 환경부에 문의해 ‘야생생물법에 저촉되는 것은 없다. 그러나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의 답변을 받았고 이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환경과는 이 답변이 ‘방사하면 안 된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ㄱ초등학교 쪽은 이를 ‘바람직하지 않으나 법에 저촉되는 것은 없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 동물보호법엔 ‘소유자 등은 동물을 유기해선 안된다’(8조)고 규정하고 있다. 국내 자생종인 야생생물은 치료가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방사가 가능하지만, 반려동물·가축을 마음대로 방사해선 안된다. 국내 자생종인 야생 산토끼는 방사해도 문제가 안되지만 사람이 기르던 집토끼를 방사하면 유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지자체-정부 부처 어느 누구도 ‘반려동물을 유기해선 안 된다’는 상식에 가까운 법 조항을 몰랐거나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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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군포시와 환경부는 왜 버리면 안된다고 하지 않고, 야생생물법의 처벌 규정만 안내했을까.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박소영 과장은 “토끼 같은 반려동물을 유기 방사하는 것은 법을 떠나 상식에 기반해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각 부처마다 소관 업무가 나뉘어 있어, 환경부에 문의하면 야생생물법을 근거로 말씀을 드리게 된다. 반려동물처럼 야생생물법에서 정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 방사 여부를 판단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야생동물은 환경부가, 반려동물과 가축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구조된 토끼 20여 마리는 군포시 유기동물보소센터에서 보호 중이었으나 19일 ㄱ초등학교가 다시 회수한 상태다. 토끼보호연대 제공
구조된 토끼 20여 마리는 군포시 유기동물보소센터에서 보호 중이었으나 19일 ㄱ초등학교가 다시 회수한 상태다. 토끼보호연대 제공

반려토끼는 유럽 남서부에서 개량한 종으로 야생 적응 능력이 떨어진다. 유기된 토끼들은 천적의 공격을 받거나 구더기증을 앓아 치료가 시급한 상태로 구조됐다. 토끼보호연대 제공
반려토끼는 유럽 남서부에서 개량한 종으로 야생 적응 능력이 떨어진다. 유기된 토끼들은 천적의 공격을 받거나 구더기증을 앓아 치료가 시급한 상태로 구조됐다. 토끼보호연대 제공

20일 이 사안을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보호과에 문의하자 “토끼를 방사하는 것은 유기로 볼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통상 이런 문의는 국민신문고나 정부민원안내콜센터를 통해 접수되고 전달된다. 저희도 담당하는 업무에 관해서는 안내할 수 있지만, 타부처의 법령까지 해석해 드리긴 어렵다”고 환경부와 비슷한 입장을 전했다. 고질적인 부처간 장벽이 의외의 곳에서 드러난 셈이다.

사람들이 토끼를 버리고 책임을 전가할때, 토끼들은 산에서 죽거나 상처 입었다. 토끼보호연대에 따르면, 구조된 35마리 중에는 다른 동물로부터 공격당해 상처 입은 토끼가 4마리, 구더기증을 얻게 된 토끼가 2마리로 치료가 시급한 상태였다. 구더기증은 반려토끼가 더럽고 습한 환경에 노출되면 얻는 질병으로 쇠파리 등이 토끼 피부에 알을 낳으면 구더기들이 토끼의 조직을 파고들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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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를 죽음에 몰아넣는 행위”

토끼보호연대는 “국내 입양되는 반려용 토끼는 유럽 남서부에서 수입된 굴토끼로 산토끼와는 완전히 다르다. 굴토끼는 애완으로 길들여져 천적의 공격을 피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야생 적응 능력도 현저히 떨어진다. 이런 토끼를 산에 풀어놓는 것은 토끼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행위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학교의 무책임한 동물 사육도 당장 멈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토끼보호연대는 “ㄱ초등학교는 유기임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방사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면피하고 있다. 학교에서 생태교육이란 명목으로 전담 인력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동물 사육장을 만드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반생명적이고 비윤리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단체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국의 모든 공립학교 및 기관들에서 동물 전시·사육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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