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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가정폭력 피해자, 고양이를 두고갈 수도 데려갈 수도 없었다

등록 2022-08-02 11:48수정 2022-08-02 12:38

[애니멀피플] 통신원 칼럼
가정폭력 피해 반려인, 반려묘 지키려 쉼터 입소 미뤄
피해자 빠른 보호 위해 동물 보호방안 병행돼야
두 살 고양이 쁘띠와 빠띠의 반려인은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 반려묘 4마리를 키우고 있던 보호자는 고양이들의 보호처가 마련되지 않아 쉼터 입소를 미루다 더 큰 폭력을 당했다. 카라 보호소에서 아기 고양이들을 돌보고 있는 쁘띠. 카라 제공
두 살 고양이 쁘띠와 빠띠의 반려인은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 반려묘 4마리를 키우고 있던 보호자는 고양이들의 보호처가 마련되지 않아 쉼터 입소를 미루다 더 큰 폭력을 당했다. 카라 보호소에서 아기 고양이들을 돌보고 있는 쁘띠. 카라 제공

쁘띠와 빠띠는 두 살 된 페르시안 친칠라 고양이다. 보호자는 그들을 펫숍에서 구매했다. 동물에 대해 잘 몰랐던 보호자는 당시 고양이를 입양할 수 있는 방법을 달리 몰랐다고 했다. 더불어 보호자는 고양이들에게 중성화 수술을 해줘야 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쁘띠는 한 살 즈음 임신을 했고,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 아기 고양이가 태어나 네 마리 고양이 가족이 반려인의 보호 아래 단란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좋았을 테지만 이 소박한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 가족 안에서는 상습적인 폭력이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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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이 쉼터 입소를 미루는 이유

고양이들의 보호자는 동거인인 가해자로부터 심각한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 언어폭력은 기본이고, 각종 육체적 폭력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피해자는 병으로 머리를 맞거나 발로 차이고 밟혀 온몸에 멍이 들었다. 가해자는 심지어 포크로 피해자의 목을 찌르기까지 했다. 가정폭력 신고를 받은 수사기관과 지역 폭력예방 상담소의 조치로 피해자는 일차적으로 주거를 분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해자의 끈질긴 회유와 고양이 걱정 탓에 피해자는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게 됐다. 돌아온 것은 더 심해진 폭력이었다. 결국 갈비뼈가 부러지는 사달이 나고서야 피해자는 지난 2월 더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피해자가 서둘러 가해자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에는 고양이들을 데려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카라 입소 직후 쁘띠와 빠띠. 카라 제공
피해자가 서둘러 가해자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에는 고양이들을 데려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카라 입소 직후 쁘띠와 빠띠. 카라 제공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피해자가 서둘러 가해자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에는 고양이들을 데려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주변 지인들, 동물병원, 지자체 동물보호센터에까지 문의를 했으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살아있는 생명들을 길거리에 버릴 수도 없었다. 그렇게 피해자의 쉼터 입소는 계속 미뤄졌다.

한국여성의전화 등 국내 단체들은 여러 해 동안 동물 학대와 가정폭력의 상호연관성을 지적하며 반려동물 동반 입소가 가능한 피해자 쉼터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가정 폭력 피해 여성들은 자신이 극심한 폭력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동물이 같이 시설에 가지 못하면 입소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해왔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에게 반려동물은 중요한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들은 반려동물을 생각해 가정을 떠나는 것을 주저한다. 미국 퍼듀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폭력 피해 여성의 20%는 반려동물의 안전 때문에 가해자를 떠나는 것을 미뤘으며, 동물도 함께 학대를 당할 경우엔 폭력 관계를 떠나는 것을 더 연기할 가능성이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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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안전망은 여전히 허술하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 차원에서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의 동물을 인수해 돌봐주는 제도를 2020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보호자와 동물이 쉼터에 동반 입소가 가능한 것은 아니며 보호 기간도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이마저도 서울·경기 이외의 다른 지역은 적용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구조 당시 쁘띠는 출산이 임박한 상태였다. 카라에 입소한 쁘띠는 귀여운 아기 고양이 삼남매를 낳았다. 카라 제공
구조 당시 쁘띠는 출산이 임박한 상태였다. 카라에 입소한 쁘띠는 귀여운 아기 고양이 삼남매를 낳았다. 카라 제공

카라 또한 2018년부터 여러 차례 가정폭력 피해 가정의 동물들을 위탁해왔지만 그 사이 제도가 크게 보완된 점은 없다. 가정에서 벌어지는 가장 내밀한 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몇 년 사이 성장했지만, 폭력의 피해자인 여성과 동물 등 약자를 제대로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은 여전히 너무 허술한 것이다.

당장 쁘띠네 가족과 보호자도 지방에 거주하고 있어 지자체의 보호 제도가 전무한 상태였다. 도움 요청을 받은 카라는 먼저 농림축산식품부와 사건 발생 지역의 동물보호센터와 보호 논의를 진행했지만, 긍적적 답변을 얻긴 어려웠다.

농림부에서는 반려동물 유기를 최소화하기 위해 제한된 조건에서 ‘반려동물 인수제’를 동물보호법 개정안에 포함시키긴 했지만,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인수제도 마련은 당장 확답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동물보호센터는 고양이들이 피해자와 함께 함께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야만 입소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여러 번의 이사, 출산을 겪은 쁘띠의 불안을 달래준 것은 빠띠였다. 쁘띠(왼쪽)와 빠띠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이들을 동반입양 할 수 있는 가족을 찾는 중이다. 카라 제공
여러 번의 이사, 출산을 겪은 쁘띠의 불안을 달래준 것은 빠띠였다. 쁘띠(왼쪽)와 빠띠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이들을 동반입양 할 수 있는 가족을 찾는 중이다. 카라 제공

카라는 피해 여성과 고양이들이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되길 원하지 않았다. 네 마리 고양이들의 구조가 결정됐다. 피해자는 고양이들을 카라로 보내기 전날에 깨끗하게 목욕을 시켰다고 했다. 활동가들이 고양이들을 인계했을 때 고양이들에게서는 샴푸 향이 솔솔 났다. 카라에 연락을 취했던 지역 폭력예방센터 상담사는 피해자가 고양이들을 보내면서 많이 울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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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철든 빠띠가 다시 행복하길…

그리고 쁘띠의 두 번째 임신 사실이 확인됐다. 아기 고양이 세 마리의 탄생이 임박한 상태였다. 혹시 구조가 되지 않았다면 네 마리 고양이 가족은 금방 일곱 마리로 늘어났을 것이었다. 생명의 탄생은 축하받을 일이지만, 위기 상황에 놓여있는 피해자에게 생명이 늘어나는 것은 현실적으로 너무나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카라 입양센터 아름품에서 사이좋게 문 밖을 보고 있는 쁘띠와 빠띠. 카라 제공
카라 입양센터 아름품에서 사이좋게 문 밖을 보고 있는 쁘띠와 빠띠. 카라 제공

이후 피해자는 쉼터로 입소했고, 쁘띠네 가족은 카라 더불어숨센터에서 방 한 칸을 사용하며 지내게 되었다. 쁘띠네 가족은 함께였기에 서로를 의지해 센터 생활에 차근차근 적응했다. 쁘띠는 건강하게 세 마리 아기고양이를 출산했다. 이미 한 차례 새끼들을 돌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쁘띠는 유독 야무지게 새끼들을 챙겼다. 아빠 빠띠도 종종 새끼고양이 돌봄을 거들었다. 쁘띠가 일 년 전 출산했던 삐요와 뿌요는 그 사이 입양 가족을 만났고, 아기 고양이 삼남매의 입양도 순조롭게 이어졌다.

현재 쁘띠와 빠띠는 카라 입양센터 아름품에서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쁘띠는 새끼들을 모두 입양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뛰어놀기 시작했다. 손길과 빗질을 좋아하지만, 자신의 의사를 속삭이듯 표현해 활동가들이 종종 시그널을 놓칠 때가 있다. 우리는 쁘띠에게서 빨리 철든 아이와 같은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속 시끄러운 가정에서 너무 조숙해질 수밖에 없었던 아이를 만났을 때와 같은 마음으로 쁘띠를 보게 된다.

쁘띠는 새끼들을 모두 입양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뛰어놀기 시작했다. 우리는 쁘띠에게서 빨리 철든 아이와 같은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퇴근하는 활동가를 마중하는 쁘띠. 카라 제공
쁘띠는 새끼들을 모두 입양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뛰어놀기 시작했다. 우리는 쁘띠에게서 빨리 철든 아이와 같은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퇴근하는 활동가를 마중하는 쁘띠. 카라 제공

여러 번의 이사, 출산을 겪은 쁘띠의 불안을 달래준 것은 빠띠였다. 보호자가 폭행 당하는 가정에서도, 구조되어 새로이 옮긴 환경에서도 둘은 서로가 있어 그나마 적응이 수월했을 것이다. 우리는 쁘띠와 빠띠의 행복을 위해서 이들을 동반입양 할 수 있는 가족을 찾는 중이다. 그리고 고양이들의 행복과 안녕은 이들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안전한 데로 보내고서야 자신의 살 길을 찾았던 보호자에게도 소중한 희망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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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길

지난 5월 22일부터 ‘아동을 가정폭력에 노출하는 행위도 정서적 학대에 속한다’는 내용을 담은 개정된 아동복지법이 시행되고 있다. 동물보호법도 언젠가는 정서적 학대에 대한 층위를 폭넓게 다루며 가정폭력 위기에 처한 반려동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쁘띠네 가족과 피해자의 안녕을, 그리고 지금도 위기에 처해 있는 모든 생명의 안녕을 기원한다. 동물의 안전과 사람의 안전은 다른 것이 아니다. 자신을 지킬 힘 없는 모든 약자들이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곧 모두가 안전한 사회다.

글 김나연 카라 활동가, 사진 동물권행동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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