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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취객 구한 짱순이처럼…우리 동네 ‘네 발 순찰대’ 잇단 도전장

등록 2022-08-24 13:00수정 2022-08-24 15:42

[애니멀피플] 서울 반려견 순찰대 선발 현장
동네산책하며 방범 활동…서대문구 32팀 참가
‘상위 10%’ 개들 참가했지만 시험장서 긴장
“반려견 사회봉사로, 비반려 가족에도 환영받길”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서대문문화체육회관에서 ‘서울시 반려견 순찰대’ 선발 심사가 진행됐다. 반려인 김예은씨가 ‘관우’와 함께 실내 코스 실기시험을 치르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서대문문화체육회관에서 ‘서울시 반려견 순찰대’ 선발 심사가 진행됐다. 반려인 김예은씨가 ‘관우’와 함께 실내 코스 실기시험을 치르고 있다.

지난 21일 일요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서대문문화체육회관에 반려견 가족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큰 개, 작은 개, 나이든 개, 발랄한 개, 차분한 개 등 다양한 개 10여 마리가 차례로 실내체육관으로 들어섰다.

먼저 도착한 보호자들은 대기 좌석에서 아는 얼굴을 발견하고 인사를 나누거나 앞쪽에 펼쳐진 ‘모의 산책 코스’를 유심히 살폈다. “올리 화이팅.” 먼저 심사를 마친 ‘개 친구’ 라이카의 보호자가 5살 보더콜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올리의 보호자 김민지씨(연희동)가 드디어 노란색과 파란색 꼬깔이 설치된 코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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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건너기, 위협 대응하기 ‘쉽지 않다’

차분하다 못해 긴장된 분위기가 흐른 이곳은 다름 아닌 ‘서울시 반려견 순찰대’ 서대문구 심사 현장이다. 반려견 순찰대는 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가 올해부터 운영을 시작한 시민참여형 지역봉사 활동이다. 매일 동네 이곳저곳을 산책해야 하는 반려견의 특성을 이용해 보호자와의 산책 때 거주 지역을 살피며 가로등, 도로 등 시설물 파손이나 주취자 신고 등 방범 활동을 벌이는 것이다.

반려견 순찰대는 지난 5~6월 강동구에서 시범운영 한 뒤 주민과 반려인들의 반응이 좋아 하반기에는 서울시 9개구 자치구로 확대됐다. 유기견없는도시 제공
반려견 순찰대는 지난 5~6월 강동구에서 시범운영 한 뒤 주민과 반려인들의 반응이 좋아 하반기에는 서울시 9개구 자치구로 확대됐다. 유기견없는도시 제공

지난 6월 서울 강동구에서는 16살 믹스견 ‘짱순’이가 트럭 바퀴 아래 쓰러진 취객을 발견해 조치한 사례가 알려졌다. 유기견없는도시 제공
지난 6월 서울 강동구에서는 16살 믹스견 ‘짱순’이가 트럭 바퀴 아래 쓰러진 취객을 발견해 조치한 사례가 알려졌다. 유기견없는도시 제공

지난 5~6월 강동구에서 시범운영 한 뒤 주민과 반려인들의 반응이 좋아 하반기에는 서울시 9개구 자치구(강동·송파·서초·금천·강서·마포·서대문·성동·동대문)로 확대됐다. 지난 6월 강동구에선 트럭 바퀴 아래 쓰러진 취객을 구한 16살 믹스견 ‘짱순’대원의 활약이 알려지며 순찰대 활동에 관심이 모아졌다.

이날 심사에는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반려가족 66팀이 참가 신청을 했고 시험에는 32팀이 응했다. 참여 열기가 생각보다 높아 오전 8시부터 매 시간 12팀씩 나누어 심사가 진행됐다. 선발 인원은 정해져 있진 않지만 100점 만점에 70점을 얻어야 순찰대원으로서의 자격이 주어진다.

평가 항목은 3㎞미만의 코스를 산책하며 횡단보도 건너기, 낯선 사람과 다른 개를 만났을 때의 대응 등을 살피게 된다. 줄을 당기는 모습이 보이면 3점 감점, ‘앉아’ 신호 한 번에 잘 기다리면 10점, 2~3회 반복해야 하면 5점, 낯선 사람의 위협에 차분하게 대응하면 10점을 얻는 식이다. 평소대로 하더라도 자칫 실수를 반복하면 감점이 되기 쉬워보였다.

참가자 김민지씨가 반려견 ‘올리’와 함께 신호 기다리기 코스 심사를 받고 있다.
참가자 김민지씨가 반려견 ‘올리’와 함께 신호 기다리기 코스 심사를 받고 있다.

“파란 불입니다. 건너세요.”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던 개가 살짝 줄을 당기며 튀어나갔다. “올리, 천천히 천천히.” 반려인 김민지씨가 차분히 다독이자 개도 금세 평온을 되찾았다. 그 앞에는 난이도가 더 높은 과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좁은 통행로에서 진행 요원 한 명이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 ‘워!’하고 놀래킨 뒤 호루라기를 크게 부는 것이다. 깜짝 놀라 짖을 만도 한데 올리는 별 반응 없이 여유롭게 코스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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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보수 봉사활동 반려인들은 왜 열성적?

꽤나 ‘짠’ 평가 기준에, 별도의 활동비도 지급되지 않는 봉사활동에 반려인들은 왜 적극적으로 참가했을까. 순찰대의 운영과 기획을 맡은 ‘유기견없는도시’ 김지민 대표도 시민들의 참여가 놀랍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은 했지만 반응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한 주민분은 이 지역에서 30년을 살았는데, 순찰대를 하면서 우리 동네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고까지 하시더라”고 전했다.

참가자들은 어떨까. 김민지씨는 “평소에도 도로 파손이나 인도 위 깨진 유리나, 가로등 고장 등 민원 넣어왔는데 이왕에 할 거 개와 산책하면서 하면 더 좋을 것 같아 참가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실 반려견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순찰대 조끼가 귀엽다고 인기”라고 귀띔했다.

평가 항목은 3㎞미만의 코스를 산책하며 횡단보도 건너기, 낯선 사람과 다른 개를 만났을 때의 대응 등을 체크한다. 대인 반응 시험을 치르고 있는 진돗개 똘똘이와 반려인 이채영씨.
평가 항목은 3㎞미만의 코스를 산책하며 횡단보도 건너기, 낯선 사람과 다른 개를 만났을 때의 대응 등을 체크한다. 대인 반응 시험을 치르고 있는 진돗개 똘똘이와 반려인 이채영씨.

반려견 문화나 중대형견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싶어 참가했다는 반려인도 여럿이었다. 진돗개 똘똘이(4살)는 짖음도 없고 사회성이 좋은 편이지만 산책을 나가면 ‘왜 입마개를 하지 않느냐’거나 ‘왜 개를 끌고 나왔냐’는 등의 말을 종종 들었다. 반려인 이채영씨(홍제동)는 “똘똘이는 하루에 3번 산책을 한다. 그때마다 반려견 순찰대 조끼를 입고 지역 사회에 봉사하는 모습을 보이면 개도 우리 사회의 일원이고 구성원이라 여겨지지 않을까 한다”고 참가 동기를 밝혔다.

유기견이었던 관우(3살)를 입양한 김예은씨(연희동)도 마찬가지다. 2016년 독일에서 귀국한 김씨는 반려견 문화가 달라지려면 보호자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보호자의 역할이 아주 중요해요. 동물은 전혀 문제가 없어요. 오늘도 저는 제가 당황하지 않고 더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면 관우는 잘 따라줄 거라 생각했어요.”

심사위원을 맡은 최용석 독스포츠센터 대표는 참가자들을 상위 10%의 반려가족이라고 평했다.
심사위원을 맡은 최용석 독스포츠센터 대표는 참가자들을 상위 10%의 반려가족이라고 평했다.

이날 심사위원을 맡은 최용석 독스포츠센터 대표는 참가자들을 상위 10%의 반려가족이라고 평했다. 최 대표는 “많은 반려견 세미나를 진행해왔지만 ‘반려견 순찰대’ 심사 현장만큼 조용한 곳이 없다. 개 10여 마리가 한 공간에 모이는데 이렇게 조용하고 질서정연 하다는 것은 그만큼 보호자들이 노력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모범적인 반려가족들이 순찰대로 활동하며 비반려인에게 ‘반려견이 안전하고 착하다’는 것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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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 어르신도 ‘개모차’ 타고 참가

눈길은 끈 것은 단연 최고령·최다 응원 인력과 함께 온 16살 보들이였다. ‘어르신’ 보들이는 개 친구들을 만났을 땐 고전을 했지만, 횡단보도 기다리기나 신고 상황 재연 등은 무난히 통과했다. 실기를 치르는 보들이의 뒤로는 리드줄을 잡은 반려인 외에도 모두 3명의 가족이 함께 했다. 나이가 들어 산책 시간이 줄긴 했지만 유모차를 타고라도 꼭 산책을 나가는 보들이도 순찰대로는 손색이 없다는 것이 반려인 나연우씨(홍제동)의 설명이다.

지난 15일 16번째 생일을 맞은 ‘보들이’는 가족 4명이 총출동해 열렬한 응원을 받았다.
지난 15일 16번째 생일을 맞은 ‘보들이’는 가족 4명이 총출동해 열렬한 응원을 받았다.

“유기견이라 생일이 따로 없어서 8월15일 광복절을 생일로 해왔거든요. 추억 만들어주려고 오긴 했지만…붙을 수 있겠죠? 꼭 합격해서 보들이와 지역사회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요.” 반려견 순찰대 누리집에는 벌써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반려인들의 글이 속속들이 올라오고 있다.

글·사진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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