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애니멀피플 반려동물

8년 만에 쇠목줄 푼 고양이…무지가 부른 ‘잘못된 사랑’

등록 2023-02-24 12:51수정 2023-02-26 19:43

[애니멀피플] 통신원 칼럼
마당개처럼 짧은 목줄에 묶여 산 시골 마을 고양이들
묶고 가두는 것보다 더 나은 보호법 교육으로 알려야
아홉 살 고양이 ‘소초’는 강아지 목줄에 묶여 시골 마당에 묶여 있었다.
아홉 살 고양이 ‘소초’는 강아지 목줄에 묶여 시골 마당에 묶여 있었다.

아홉 살 고양이 ‘소초’는 자유롭게 산다. 시골집 앞마당 어디엔가 숨어서 쿨쿨 낮잠을 자다가도 사료통을 흔드는 소리에 훌쩍 나타나고, 할아버지가 비닐하우스로 밭일을 나서면 자연스럽게 동행한다. 뺨이 퉁퉁하고 머리가 큰 소초는 동네 고양이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매우 많다. 할아버지와 소초가 나란히 걸으면 그 뒤를 쫓아 걷는 길고양이들이 꽤 있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할아버지가 깨 터는 걸 흥미진진한 듯 구경한다고 한다.

강아지 목줄을 한 마당 고양이들

지난 해 늦봄, 카라 활동가들은 강원도 평창에서 목줄에 목이 졸려 피부가 괴사되어가던 떠돌이 개를 구조하는 과정에서 고양이 소초를 만났다. 소초는 담벼락 하나 없는 집 마당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소초는 낯선 활동가들을 보고도 1m 남짓한 쇠목줄 때문에 도망가지를 못했다. 대형견에게도 무거워 보일 쇠목줄은 소초가 움직일 때마다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소초 이외에도 마당 곳곳에 묶인 채 발견된 고양이는 성묘만 4마리였다.
소초 이외에도 마당 곳곳에 묶인 채 발견된 고양이는 성묘만 4마리였다.

재래시장에서 쥐잡이용으로 고양이들을 묶어 키우는 건 가끔 봤지만, 딱히 아무것도 지킬 것 없어 보이는 빈 마당에 고양이가 묶여 있는 것을 본 활동가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집주인을 찾기 위해 집 인근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활동가들은 소초와 마찬가지로 목줄에 묶여 있는 고양이 여럿을 발견했다.

밭 바깥쪽 얼룩무늬 고양이, 밭 입구쪽 삼색이, 밭 건너편의 또 다른 얼룩무늬 고양이까지 소초 말고도 세 마리가 더 있었다. 심지어 마지막에 본 고양이 ‘자유’는 목줄에 묶인 채 누워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고양이들의 보호자는 노부부였다. 고양이들을 왜 묶어 키우느냐는 질문에 답은 명료했다. 쥐약으로부터 고양이들을 ‘지키기 위해’ 목줄을 채웠다는 것이다. 길고양이가 다른 집 비닐하우스를 뜯는 경우가 있는데 농사를 위해 고양이 접근을 막아야 하는 농부들이 쥐약을 놓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동안 약을 먹고 죽은 고양이가 여럿이라고 했다.

고양이들은 2~8년씩 강아지 목줄에 묶여 마당에서 지내왔다.
고양이들은 2~8년씩 강아지 목줄에 묶여 마당에서 지내왔다.

그렇게 고양이 소초는 8년, 젖을 먹이던 고양이 자유는 4년, 동그란 얼룩무늬 고양이 ‘부엉이’는 2년, ‘삼색이’도 2~3년을 목줄에 묶여 살았다. 그러면서 지금은 죽고 없는 고양이 한 마리는 목줄에 묶인 채 겨울을 나던 중, 귀가 점점 떨어져 나가 세상을 떠났다고도 했다.

이들이 고양이를 묶고 가둔 이유

노부부의 양육 방식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지만, 고양이들에게 더 좋은 삶의 형태가 있다는 건 자명했다. 카라 활동가들은 몇 개월 동안 천천히 노부부와 신뢰 관계를 쌓으며 고양이의 생태와 습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목줄을 풀고 중성화(TNR)를 하고 정기적으로 밥 자리를 관리하면 고양이들이 마을의 말썽꾸러기가 될 일은 없을 거라고, 고양이들이 노부부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

인근 마을에서는 좁은 닭장 안에 고양이들을 키우는 집도 있었다.
인근 마을에서는 좁은 닭장 안에 고양이들을 키우는 집도 있었다.

그렇게 두번 계절이 바뀌었고 활동가와 노부부 사이에도 믿음이 생겼다. 그렇게 지난해 11월 드디어 초소와 다른 고양이들의 쇠목줄이 풀렸다. 소초의 목줄은 무려 3㎏에 달했다. 목줄은 풀렸지만 목에 자국이 선명했다.

우리는 소초를 포함해 그 마을 일대의 길고양이와 마당개 30여 마리에게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다. 목줄에 묶여 살아 야생성을 잃은 고양이 부엉이와 자유는 입양을 위해 카라 보호소로 구조했고, 야생성이 강한 길고양이들은 제자리 방사를 했다. 마을 곳곳에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했고 지역 케어테이커가 중성화된 길고양이의 안부를 확인하며 이후 관리를 맡아주기로 하셨다.

카라는 두 마을을 찾아 주민 대상 동물권 인식 개선 교육을 하고 동물들의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다.
카라는 두 마을을 찾아 주민 대상 동물권 인식 개선 교육을 하고 동물들의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다.

그러나 ‘마을 동물들’을 위한 활동은 그 날로 마무리되지 못했다. 소초를 방사하던 날, 우리는 또 다른 문제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인근 마을 한 가정집 닭장에 고양이들이 갇힌 채 울고 있었던 것이다. 목줄만 없을 뿐 고양이의 생태에 어울리지 않는 보호 환경이란 것은 똑같았다. 좁은 닭장에 갇힌 고양이들은 중성화 없이 갇혀 번식을 거듭하고 있었다. 바닥에 대소변이 가득 쌓인 그곳에서 태어난 새끼들은 영양이 부족해 1살이 넘도록 몸무게가 3㎏가 되지 못했다.

무지가 부른 학대…알면 달라진다

갇혀 사는 고양이들에게도 보호자가 있었다. 보호자는 아끼는 길고양이가 약을 먹고 피를 토하며 죽었었다며 고양이들을 지키기 위해 이들을 가뒀다고 했다. 활동가들이 중성화와 급식소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니 보호자는 곧 그 제안을 수용했다.

최근 카라 활동가들은 의료팀을 꾸려 다시 마을로 향했다. 닭장에 갇혀 산 고양이들을 포함해 길고양이, 마당개들의 중성화가 진행됐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동물들도 살던 터전으로 돌아갔다.

마을에선 주민을 대상으로 한 동물권 인식 개선 교육프로그램도 진행했다. 몸에 리드줄을 매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며 1m 목줄에 묶여 사는 동물들의 불편함도 재연해 보고, 중성화의 필요성에 대한 강의도 함께 했다. 마을 할머니들은 활동가의 강의에 성심성의껏 참가해주셨다.

목줄에 묶여 살아 야생성을 잃은 고양이 부엉이와 자유는 입양을 위해 카라 보호소로 구조됐다. 부엉이의 구조 전후.
목줄에 묶여 살아 야생성을 잃은 고양이 부엉이와 자유는 입양을 위해 카라 보호소로 구조됐다. 부엉이의 구조 전후.

고양이가 쇠목줄에 묶여 살거나 좁은 데 갇혀 있던 혼란한 마을이었지만, 그건 고양이에 대한 무지 탓이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변화는 불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이런 ‘마을 단위 동물복지 개선 프로젝트’ 활동으로 동물들의 삶이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요즈음 소초네 집 노부부는 집 주변 고양이들을 위해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일대 고양이들은 중성화 수술을 해둔 덕에 개체수가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소초는 종종 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올라와 사랑을 표현한다고 한다. 자신을 8년 넘게 묶어둔 사람일지언정 소초에겐 소중한 사람인 것이다.

다정한 ‘동물 이웃’이 되어주는 법

소초의 지금이 참 귀하고 고마운 한편, 안타까움도 크다. 너무 오랫동안 묶여 살았기 때문이다. 그 오랜 세월 무거운 목줄에 매여 있던 소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난 고통을 자꾸 헤아리게 되는 건 소초의 처지가 시골 동물들의 운명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소초는 목줄에서 풀려난 뒤에도 노부부 곁에 머물고 있다.
소초는 목줄에서 풀려난 뒤에도 노부부 곁에 머물고 있다.

아직도 교외 도처엔 1m 목줄에 묶여 사는 마당개들, 열악한 환경에 처한 고양이들이 많다. 일부러 학대하려는 것이 아닌데도 동물에게 더 좋은 환경이 뭔지 몰라서 혹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서 동물들은 더 나은 삶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그 기회를 되찾아 주기 위해 우리 인간동물이 해야 할 일은 말 못하는 비인간동물에게 더 다정한 이웃이 되어주는 일이 아닐까.

글 김나연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 사진 동물권행동 카라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애니멀피플] 핫클릭

차등 지원으로 “‘개식용’ 조기 종식”…46만마리는 어디로 1.

차등 지원으로 “‘개식용’ 조기 종식”…46만마리는 어디로

청딱다구리, 시민 선호도 낮아 보호종 해제한다고? 2.

청딱다구리, 시민 선호도 낮아 보호종 해제한다고?

루이·후이바오 ‘반전’ 돌잡이…사랑 더 받으며 건강히 자라길! 3.

루이·후이바오 ‘반전’ 돌잡이…사랑 더 받으며 건강히 자라길!

까막딱따구리 집 예약하세요…‘가상 숙박’으로 멸종위기종 돕는다 4.

까막딱따구리 집 예약하세요…‘가상 숙박’으로 멸종위기종 돕는다

빵에 집착하는 고양이들, 왜 그러는 걸까? 5.

빵에 집착하는 고양이들, 왜 그러는 걸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