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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여기는 거대하고 평화로운 캣타워라네

등록 2017-09-11 09:30수정 2017-09-12 18:14

[애니멀피플] LGBT 공동주택 ‘무지개집’의 고양이들
쓰레기통 출신 구월이, 굴러온 돌 온돌이
겁 많은 하영이, 백설 같은 첫눈이…
평화롭게 영역 공유하는 ‘계단냥이’들

냉혹한 세상서 차별의 존재로 지내다
꼭 닮은 반려인 만나 체온 나누기까지
국내 최초 ‘고양이 위주’ 인터뷰 해봤다
그들은 환대 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도시에서 고양이들은 축복과 환영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냉대와 차별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어디에나 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고양이들은 이 도시의 ‘퀴어' 같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엘지비티(LGBT·성소수자) 공동주택 ‘무지개집'에 사는 고양이들은 자신과 닮은 반려인들과 함께 체온을 나누며 산다. 9월4일 저녁, 무지개집을 찾아 이들의 평화로운 공존 비법을 들었다. 반려인들이 고양이 대변인으로 나섰다. 유일무이한 고양이 인터뷰다.

고양이와 가족 사진 찍기에 도전했다. 왼쪽부터 우지영씨와 온돌, 전재우씨와 첫눈, 함경식씨와 어진이. 억지로 하는 일은 무엇이든 싫어하는 고양이들은 사진을 찍자마자 반려인 품을 벗어나 우당탕탕 계단으로 도망쳤다. 신소윤 기자
고양이와 가족 사진 찍기에 도전했다. 왼쪽부터 우지영씨와 온돌, 전재우씨와 첫눈, 함경식씨와 어진이. 억지로 하는 일은 무엇이든 싫어하는 고양이들은 사진을 찍자마자 반려인 품을 벗어나 우당탕탕 계단으로 도망쳤다. 신소윤 기자
어진(9살 추정), 하영(5), 첫눈(5), 구월(4), 온돌(2살 추정). 무지개집에는 다섯 마리 고양이가 14명 사람들과 함께 산다. 어진과 하영, 첫눈과 구월이 각각 한 집에 살고, 온돌이도 다른 한 집에 산다. 무지개집은 주방과 거실 등 입주민이 나눠 쓰는 공용 공간과 개별 집이 분리돼 있는데, 고양이들에게도 공용 공간이 있다. 다섯 마리 중 하영 한 마리를 제외하곤 모두 ’계단냥이’들이다. 반려인이 각자 집 문을 열어 두면 고양이들은 슬그머니 나와 계단을 한칸씩 차지하고 앉는다. 그러다 가끔 마음이 맞으면 ‘모험대장’인 온돌의 뒤를 따라 앞발로 직접 문을 따고 우르르 마당으로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평화로운 일상을 얻기 전까지 고단한 길고양이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작은 몸으로 세상의 희노애락을 대변하는 고양이들이 무지개집에 깃든 사연을 들어보면 가슴팍에 품은 단어들이 하나씩 있다.

하영·어진·구월에게서는 폭력이라는 단어를 지울 수 없다. 다섯마리 중에 하영이는 겁이 가장 많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집에 들어가면 늘 숨기 바쁘다. 하영이는 2013년 고양이보호협회(고보협)를 통해 입양됐다. 새끼 때 어느 가정집에서 지내던 하영이는 아이들에게 학대를 당했다. 아이들은 하영이를 장난감처럼 던지며 놀았다. 고양이는 온 동네에 소문이 날 정도로 고통에 부르짖었다. 4년이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하영은 사람을 보면 위축되고, 가족인 함경식씨와 그의 동거인 외에는 거의 곁을 내주지 않는다. 하영과 함께 사는 어진 또한 고양이의 태생적 습성을 이해받지 못하고 한 재래시장에서 목줄에 묶여 지내다 구조됐다.

첫눈(위)과 구월이가 나란히 누워 잠을 자고 있다. 무지개집 제공
첫눈(위)과 구월이가 나란히 누워 잠을 자고 있다. 무지개집 제공
구월은 쓰레기통 출신이다. 어두운 골목의 검정 쓰레기 봉지 속에서 발견됐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동물병원협동조합 '우리동생'을 통해 구조된 구월이는 4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검정 비닐 봉지에 담겨 있었다. 그 중에 한 마리는 구조되자마자 죽고, 구월이도 심한 질병을 앓았다. 치료를 받고 새 반려인을 만난 날이 9월이라 이름이 구월이라 붙여졌다.

구사일생의 '묘생'을 얻었지만 세 고양이의 고단한 과거는 우리 사회 일부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반영한다. 고양이는 늘 세상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이방인 취급을 받고 물건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의 반대편에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동물들에게 돌봄을 제공하며 공존의 길을 택하는 이들이 있다.

첫눈은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발견됐다. 어미 고양이나 형제들도 없이 외따로 지내는 하얀 고양이를 학생들이 보살피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주는 밥을 먹으며 비교적 평탄한 길 생활을 했다. 백설기처럼 하얀 털 때문에 아이들이 '첫눈'이라는 이름도 붙여줬다. 그런데 첫눈이의 길고양이 시절이 끝난 이유는 다소 생뚱맞다. 첫눈이에게 홀딱 빠진 아이들이 공부를 너무 안해서 담임 선생님이 작정을 하고 첫눈이의 입양처를 찾았다. 그렇게, 서울 마포구에 있는 민중의집 토끼똥 공부방에서 ‘임시 보호’ 생활을 거쳐 무지개집의 전재우씨 집으로 입양됐다.

온돌(왼쪽)과 그의 반려인 정현희씨가 입을 맞추고 있다. 무지개집 제공
온돌(왼쪽)과 그의 반려인 정현희씨가 입을 맞추고 있다. 무지개집 제공
고양이들은 가끔 계단에 모여 반상회를 연다. 무지개집 제공
고양이들은 가끔 계단에 모여 반상회를 연다. 무지개집 제공
온돌은 ‘굴러온 돌'이라서 온돌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귀 한쪽 끝이 잘려 있는 온돌은 무지개집 인근 골목을 터전으로 살던 고양이였다. 무지개집 입주민들이 작은 마당에서 길고양이 밥을 챙길 때마다 어슬렁거리며 찾아와 사료를 얻어먹었다. 온돌은 무지개집 입주민들을 만날 때마다 온갖 애교를 부리고, 호시탐탐 집안으로 들어갈 기회를 엿봤다. 입주민들은 이 박력있는 고양이를 집안에 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 회의를 열었다. 회의 끝에 정현희·우지영씨가 온돌이를 입양해 기르기로 했다. 무지개집에 들어오고 마음이 편해졌는지 체중도 많이 늘었다. 8kg에 육박하는 온돌이는 무지개집에서 가장 체격 좋은 고양이다. "그런데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온돌이보다 먼저 우리한테 밥을 얻어먹던 ‘시도’라는 고양이가 있거든요. 그 친구가 집 근처에 찾아오면 그렇게 싫어서 난리예요. 반려인 정현희씨가 말했다. 인터뷰를 위해 무지개집을 찾은 날도, 집앞에 찾아온 시도를 보고 흥분해 문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온돌이를 입주민들이 말리고 있었다.

“온돌이 등쌀에 시도에게 밥을 못주게 됐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이 동네 주민들이 대체로 고양이에 우호적이거든요. 시도는 여기 말고 고정적으로 밥을 먹는 집이 있어요. 여기 길고양이들은 주민들이 합심해서 TNR(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사업)을 해서 개체 수도 더 늘지 않고, 대부분 자기 영역을 정해서 마당냥이처럼 지내요.” 전재우씨가 말했다.

이렇게, 무지개집과 그 주변의 고양이들은 편견없는 시선과 애정이 혐오와 차별을 뛰어넘는 가장 빠른 지름길임을 대변한다. 무지개집 고양이들은 늘 문이 열려 있는 전재우씨의 집에 자주 모여 반상회를 벌이곤 한다.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때때로 모여 머리를 맞대기도 하면서, 무지개집 사람과 동물들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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