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티어하임’은 안락사가 없는 동물보호소로 이름이 높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 또한 많은데, 슈투트가르트 보트낭 티어하임에서 한 달 동안 산책 봉사를 하면서 독일의 티어하임을 둘러봤다. 임세연 객원기자
해가 채 뜨지 않은 아침 7시, 내복 세 겹으로 무장하고 일주일에 세 번씩 집을 나섰다. 지하철과 버스로 1시간30분 걸려 도착한 곳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보트낭 티어하임(동물보호소)다. 이곳에서 한 달 동안 보호견 산책 봉사를 했다.
다리를 절뚝거리던 암브로와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걷던 데릭 그리고 사일라, 라콘차, 피코, 네테. 지난겨울 독일 슈투트가르트 티어하임에서 함께 산책한 보호견들이다. 오전 9시부터 낮 12시 사이 약 2시간 남짓 보호견과 산책했다. 이른 아침 눈이 자욱하게 쌓인 숲길과 목줄을 잡느라 빨갛게 얼어버린 손, 다른 봉사자들과 나눴던 인사, 종종걸음으로 따라오던 보호견들과 나눈 추억이 선명하다.
슈투트가르트 티어하임은 개, 고양이, 염소, 양, 파충류와 외래동물, 야생동물 등 총 600~800마리를 보호하고 있다. 개는 실내외를 오갈 수 있는 집에서 지낸다. 일정 시간 돌아가며 더 큰 공간에 머문다. 염소와 양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방목한다.
이들 중 95%가 새로운 집을 찾는다. 암 또는 질병으로 고통이 심한 동물 말고는 안락사는 없다. 보호자가 반려동물을 사정상 더 이상 키우지 못하게 될 때에는 보호소에 약 100~300유로를 지불하고 다시 맡긴다.
동물은 ‘물건’이 아닌 ‘생명’
독일 티어하임(Tierheim)은 ‘동물(Tier)의 집(heim)’이라는 뜻이다. 약 1000여 개의 티어하임이 독일 전역에 퍼져있다. 티어하임은 대개 독일동물보호연합 소속이다. 독일동물보호연합은 전국협회 16곳, 지역협회 740곳과 동물보호소 550곳이 소속되어 있다.
슈투트가르트 티어하임에서 보호 중인 개. 임세연 객원기자
동물보호소는 민간이 운영하지만, 슈투트가르트, 뮌헨 등에서는 지자체에게 일부 비용을 지원받는다. 슈투트가르트 티어하임은 총 운영비 160만유로의 3분의 1정도를 지자체에게 받는다. 뮌헨 티어하임도 같은 비율의 지원을 받는다. 나머지 운영비는 회원비와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회원은 연회비로 약 60유로를 지불한다. 미혼이거나 자식이 없는 노년층에서 재산 모두를 기부하는 일도 잦다고 하다. 특히 제2차세계대전을 겪은 세대 여성 중 홀로 지냈거나 아이가 없는 사람들이 재산을 환원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독일은 동물을 생명으로 바라보고 동물에게 제3의 법적 지위를 부여한 나라다. 독일 기본법은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2002년 재정)를 명시하고 있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문은 1990년 민법에 추가됐다. 가축전염병 등 합리적 이유 없이 동물을 죽이는 행위 또한 불법이다. 동물단체인 ‘세계동물보호’(WAP)가 2014년 발표한 ‘세계동물보호지수’에 따르면, A~G 등급 중 독일은 스위스, 오스트리아, 영국, 뉴질랜드(A등급) 다음으로 높은 B등급을 받았다.
특히 티어하임은 독일의 동물보호운동에도 앞장선다. 슈투트가르트에 머문 5개월 동안 독일 티어하임을 조사했다. 슈투트가르트, 베를린, 뮌헨 보호소를 차례로 둘러봤다. 175년 된 베를린 티어하임은 유럽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보호소다. 뮌헨 티어하임은 독일에서 그 다음으로 유명하다. 오랜 역사를 가진 동물보호소는 무엇이 다를까?
뮌헨: 문제견은 훈련 뒤 입양 가능
뮌헨 티어하임은 각 동물에 맞는 입양 절차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뮌헨 티어하임을 총괄하는 매니저 산드라 길트너는 “입양 절차가 너무 철저하고 엄격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어쩔 수 없다. 입양된 동물들이 행복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양이, 개, 토끼, 햄스터 등 주로 반려동물로 키우는 동물을 입양하려면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5~6주가 걸린다. 토끼와 햄스터 등 설치류, 고양이는 대부분 당일 입양이 가능하다. 특이사항이 없는 고양이는 보호소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 본 뒤 입양이 가능하다.
그러나 개 입양은 더욱 꼼꼼히 따진다. 개가 입양후보자와 잘 어울리는지, 얌전하게 구는지를 본다. 몇 가지를 입양후보자에게 질문하고 함께 산책을 나가게 한 다음 결정한다. 질문에는 개가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을지, 거주지가 어딘지, 마당은 있는지, (노견의 경우) 엘리베이터가 없는 높은 층의 집인지, 아이 또는 다른 반려동물이 있는지 등이 포함된다. 강아지나 훈련이 어려운 개를 입양할 때는 티어하임 관리자가 직접 입양인 집을 방문한다.
뮌헨 티어하임에서 토끼를 보살피고 있다. 임세연 객원기자
공격성이나 문제 행동을 보이는 개를 입양할 땐 훈련을 받아야 데려갈 수 있다. 처음 2~3시간은 무료로 제공되고 그 후 회당 20유로 정도를 내고 3~5회 훈련을 받게 된다. 길트너는 “한 달에 두 번씩 받는다면 40유로다. 그 정도를 지불할 수 없다면 동물도 키우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티어하임에서 입양할 때 동물에게 심리적 문제가 있는지 많이 물어본다. 맞다. 버려지고 소외되는 등 아픈 사연을 가진 동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을 받지 않고 훈련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동물이 잘못된 행동을 익히는 일도 많다”고 설명했다.
뮌헨 티어하임에서는 정년퇴직 등으로 쉬고 있는 노인층의 반려동물 복지도 지원한다. 반려동물의 먹이와 예방접종, 건강관리를 책임진다. 반려동물이 급히 수술해야 한다면 일정 금액을 지원하고 추가 비용은 반려인이 분할 지불할 수 있게 한다.
뮌헨 티어하임은 현재 800여 마리 동물을 보호하고 있으며 그 종류 또한 다양하다. 개, 고양이, 토끼, 햄스터 등 사람이 일반적으로 키우는 반려동물과 오리, 염소, 새, 다람쥐 등 농장·야생 동물도 관리한다. 고양이는 실내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고, 개는 실내외를 오갈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이 주어진다. 오리에게는 작은 호수가, 그 외의 동물에게도 특성에 맞는 보금자리가 마련된다. 수의사 및 관리사는 총 60명으로 10~15명이 일하는 대부분 동물보호소에 비해 많다.
베를린: 시민들이 운영하는 동물보호소
짚으로 안락하게 꾸며진 철장에서 관리자가 토끼를 꺼내 들었다. 여자아이와 부모가 미소 지었다. 토끼를 안은 관리자가 토끼의 성격과 특성에 대해 한참을 설명했다. 가족 모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가족은 토끼 두 마리를 입양했다. 베를린 티어하임은 활기찼다.
축구장 21개의 면적(16만㎡)인 베를린 티어하임은 개, 고양이, 양, 돼지, 파충류, 원숭이 등 약 1400마리를 관리하고 있다. 고양이 약 400마리, 개 360마리, 설치류 및 토끼류 100마리, 원숭이 14마리와 돼지, 염소, 양, 닭, 오리, 파충류 등 동물들은 각 종에 따라 분리된 건물 또는 공간에 머무르고 있다. 실험 및 서커스에서 구조된 원숭이 14마리를 제외한 동물 대부분은 시간 차는 있더라도 모두 새로운 가족을 찾는다.
베를린 티어하임의 회원은 15만명에 이른다. 임세연 객원기자
티어하임에서 일하는 모이에르는 “가족 단위에서는 원숭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찾을 수 없고 동물원 또한 보살필 공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원숭이를 제외한 모든 동물은 나이와 종류를 불문하고 짧게는 며칠 만에도 새로운 가족을 찾는다"라고 말했다. 티어하임은 입양을 위해 찾은 가족과 연인, 봉사자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했다.
베를린 티어하임은 약 8백만 유로(약 99억원)가 연간 운영비가 필요한데, 대부분은 기부금과 회비로 충당된다. 회원이 15만명에 이르기 때문에 후원금만으로 운영이 가능하다. 독일 동물보호단체 중 가장 많은 회원 수를 자랑하며 유럽 내에서도 잘 관리된 동물보호소로 인정받고 있다.
베를린 티어하임은 동물 보호·복지 증진에 앞장서고 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출연을 통해 동물보호의 필요성을 알리고 동물복지 관련 현안에 목소리를 낸다. 티어하임에서는 주말마다 투어가 있다. 이메일을 통해 신청 가능하며 두 명의 가이드가 티어하임 곳곳을 돌며 설명해준다. ‘동물수업’(Tierischen Klassenzimmer)이라는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이 수업에서는 동물복지에 관해 배우며 동물을 체험할 수도 있다.
개·고양이 팔지 않는 이유
독일에는 개나 고양이 등 사람들이 많이 키우는 반려동물을 판매하는 가게가 없다. 티어하임에서 입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문 브리더와 개인 브리더에게 입양하기도 하지만 한국처럼 크게 상업화되어 있지 않다. 전문 브리더에게 입양하면 2000유로에 달하는 큰 비용이 들며, 개인 브리더에게 입양하는 건 신뢰하기 힘들어 보편적이지 않다고 한다.
슈투트가르트 티어하임의 티나 그로스는 “독일에선 동물을 입양할 수 있는 곳이 한정돼 있다. 비싼 값을 주지 않고 입양할 수 있고, 해당 동물에 관한 정보를 자세히 얻기 때문에 티어하임에서 입양하는 게 일반적이다”고 말했다.
독일 티어하임이 동물복지의 상징으로 떠오른 이유는 동물보호소를 중요하게 여기는 시민의식 때문이다. 티어하임 시설이 낙후될 경우 시의 자문위원회와 면담을 통해 수리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요구하고, 대개는 수용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티어하임이 뮌헨을 대표하는 시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길트너는 “만약 시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언론에 이를 알린다. 시민들은 이에 분노한다. 170억 유로가 교육에 쓰이는데 동물보호소에 고작 200만 유로조차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가 1000만을 넘었다. 여전히 서울 충무로 애견거리엔 사각형 유리에 똑같이 생긴 강아지들이 갇혀 진열돼있다. 연간 버려지는 유기견은 9만 마리로 추정된다. 그 중 35%만이 새로운 가족을 찾는다. 동물보호단체나 일부 사설 보호소가 아닌 지자체 보호소로 간다면 약 10~20일 이내에 안락사 된다. 반려동물 수요는 늘어나고, 강아지들은 생산된다. 쉽게 구매할수록 버려지는 동물도 늘어난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글·사진 임세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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