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 여기저기의 털이 벗겨져 있어, 한눈에 보기에도 피부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지난달 17일 사설 동물보호소 ‘달봉이네 보호소’의 소장님께 연락이 왔다. 근처 재개발지역 한가운데 버려진 푸들들을 그냥 둘 수 없어 데리고 오긴 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오셨다.
푸들 거의 모두가 피부병이 너무 심하다고 했다. 버려진 건 이십여 마리인데 본인이 갔을 때는 반절은 사라지고 여덟 마리밖에 없었다고도 덧붙였다. 이 아이들을 품자니 카라나 달봉이네나 이미 포화 상태라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버려진 것이 뻔한 개들을 시 보호소에 보내는 것은 열흘 뒤 죽으라는 것과 같았다. 카라 활동가들은 이들을 돕기로 하고, 즉시 달봉이네 보호소를 찾았다.
위험한 중장비가 오가던 길목에서 포획한 푸들은 스무여 마리 중 여덟 마리였다. 다른 푸들들은 어디로 갔을까?
푸들들이 버려진 재개발지역. 드넓은 땅에 폐쇄회로텔레비전 하나 없다.
첫인상은 끔찍했다. 개들은 앞다퉈 온몸을 긁고 있었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가장 상태가 심한 녀석은 푸들인지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푸들의 상징 중 하나인 곱슬거리는 털은 벗겨지거나, 뭉치거나, 각질이 잔뜩 끼어있거나 셋 중 하나였다. 그 자리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가위로 뭉친 털을 간신히 잘라주는 것이었다. 사람의 품에 파고들고 싶어 안간힘을 내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사람을 피하고 싶어 온몸을 낡은 개집 구석에 욱여넣는 녀석도 있었다.
여덟마리 푸들은 제각각 조금씩 다른 얼굴과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다만 수컷 한 마리를 제외한 일곱 마리 암컷 개들은 피부가 엉망이면서 배와 젖이 축 늘어졌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게다가 한눈에 보아도 배와 젖이 빵빵하게 불어 있는 푸들이 두 마리였다.
복수가 찬 걸까? 임신한 걸까? 이 개들은 애니멀호더에게서 유기된 걸까? 번식장에서 버려진 걸까? 재개발지역 한복판에 버려졌다던 나머지 개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 무엇도 단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카라는 개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처음 만난 사람의 품에도 안기고 싶어 안간힘이었던 푸들. 후에 한라라는 이름이 붙었다.
새끼를 잉태한 것과 동시에 배에 복수가 가득 차 있던 푸들.
새끼를 잉태한 것과 동시에 배에 복수가 가득 차 있던 푸들.
개들을 진찰한 수의사는 “카라가 구조한 역대 개 중 가장 순하다”고 말했다. 그리곤 개들의 몸에서 옴진드기가 발견됐다며 현미경으로 확대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다리 여섯 개 달린 기생충이 꾸물거리며 이동하고 있었다. 치료하기 힘든 기생충이란다. 발바닥 상태로 보아서 개들은 뜬장에서 지내던 것은 아니었다. 뜬장에서 지낼 경우에는 발바닥이 퉁퉁 붓고 염증과 진물의 흔적이 남게 된다. 하지만 개들의 발바닥은 흙먼지 때문에 조금 더러워진 정도였다. “애니멀호더들은 애들이 굶어 죽어도 방에 놔두지, 어디 버리진 않아요.”
결국 가정 번식을 하던 개들이라는 결론이 났다. 여덟 마리 중 일곱 마리가 불임 수술이 되지 않은 암컷이고, 소위 ‘순종’ 푸들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의 늘어진 뱃가죽과 젖이 그 증거였다.
카라는 개들의 치료를 진행하는 한편 사라진 열 몇 마리의 개들과 개들을 버린 사람을 찾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개들이 버려진 장소는 허허벌판 펼쳐진 재개발지역이었고, CCTV는 재개발지역 입구 세 곳 중 한 곳에만 설치되어 있었다. 그것도 쓰레기 유기를 단속하는 목적의 CCTV 한 대였다.
카라는 경찰에게 수사를 의뢰하고, 유기범을 찾는 현수막을 게재할 수 있는지 문의한 상태다. 동시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반나절을 돌아다니며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탐문했지만, 유기범이나 근처 개 번식장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사실상 유기한 이를 찾더라도 강력한 처벌은 불가능하다. 현행 동물보호법 제 8조 4항에서는 소유자의 동물 유기를 금지하지만, 처벌은 100만원이하의 과태료 부과에 그친다.
카라는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고 함께 현장을 답사했다. 담당 형사가 배정되어 사건을 조사 중이다.
주민을 상대로 푸들들의 행방과 주변 번식장에 물어봤지만, 새끼들이 도로로 나갔다는 소식밖에 들을 수 없었다.
“어린 새끼들도 있었어. 게네는 사람 뒤에 쫄랑쫄랑 쫓아가고, 저기 도로까지 나가더구먼. 게넨 예뻐서 아마 누가 데려갔을 거야.”
버려진 스무 마리 개들을 본 지역 주민은 새끼들도 꽤 섞여 있었다고 말했다. 찾을 수 없는 나머지 개들이 혹시나 드넓은 재개발지역의 수풀 사이에서 숨을 거두었을까 싶었지만, 현재로써는 사람들이 데려갔을 거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개들은 품지 못할 새끼를 잉태하고, 출산하고, 떠나보내는 과정을 숱하게 겪어왔을 것이다. 사람을 무서워하는 몇 마리 푸들을 보며 강제로 교미하는 과정에서 큰 트라우마를 가지게 됐을 수도 있겠다고 짐작해본다.
이들은 ‘인형같이 귀여운 푸들’을 생산하기 위한 삶을 살았을 것이며, 그 새끼들은 가정 분양으로 속여서, 혹은 펫샵에 전시되어 누군가의 집으로 가게 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생명이라기보다는 상품이었고, 새끼들의 탄생은 곧 생산이었고, 재개발지역에 버려진 것은 곧 폐기를 의미했다.
치료를 시작한 이후 개들의 피부와 건강상태는 점차 좋아지고 있다. 아직 각질이 많고, 가려운지 몸을 많이 긁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낫다. 임신 중인 두 마리의 개는 약욕으로 피부 치료 중이다. 이 개들은 출산을 한 후에야 공격적으로 피부 치료를 할 수 있다. 개들은 적어도 배 속에 5마리 이상의 새끼들을 잉태하고 있는데, 출산한 뒤 몸을 회복한 뒤에 중성화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추후 여덟 마리 개들과 그 새끼들은 입양 프로젝트 등을 통해 입양을 가게 된다.
가장 상태가 심했던 푸들, 소리. 뱃가죽과 젖이 다 늘어져 있음은 물론이고, 옴진드기로 인해 크게 고통받았다.
임신했을 경우 진드기 치료가 불가했다. 다행히 소리의 뱃속에는 새 생명이 없었다.
치료 후 일주일이 된 소리의 모습. 털을 모두 말끔히 민 소리의 얼굴에서 피딱지가 많이 가셨다.
태어난 한라의 아이. 일곱 마리 중 여섯 마리는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한 마리만 살아남아 인공 수유 중이다.
동물생산업이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뀌었다. 가정 분양도 금지되었다. 품종견을 생산하는 ‘강아지 공장’이 줄어들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 뒤에는 또 많은 품종견들이 인형 내다 버리듯 버려질 것이라는 불행한 예견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마치 이 푸들들처럼.
카라가 구조한 푸들들은 다행스럽게도 안정된 미래를 그릴 수 있다. 그러나 버려지고서 누군가의 손길을 받지 못한 채 죽어갈 수 있는 많은 품종견들은 어찌하면 좋을까. 길거리를 떠돌던 녀석들을 누군가 귀엽고 불쌍하다며 덥석 키우게 되었다가 감당이 되지 않는다며 다시 길거리로 내보내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쉽게 상상이 가능한 유기가 다시 발생하기 전, 우리가 모두 함께 대책을 세워야 할 과업이 생긴 듯하다.
글·사진/김나연 통신원·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