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고양이 기자 ‘만세’의 오노미치 여행기
“고양이마을에 고양이가 없어?” 성미 급한 ‘사람 친구들’ 안절부절 “만나게 해주세요” 소원 비니 그들이 나타나 지그시 바라본다
사람과 고양이, 빈집에 터를 잡고 공존하며 변화를 일구는 마을 쇠락했지만 단정한 매력 넘친다
‘애니멀피플’의 동물 명예기자 고양이 ‘만세’가 고양이들의 도시로 유명한 일본 오노미치시 방문기를 썼습니다. 실제로는 그의 반려인이 다녀왔지만, 고양이의 시선으로 본 고양이와 인간이 공존하는 작은 도시 여행기를 전합니다.
그곳에 가면 고양이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고 했다. 나의 길고양이 친구들은 자동차 엔진 열기에 겨우 몸을 녹이며 혹한기를 보내고 있는 이 계절, 고양이들의 천국이라는 그곳은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일본 히로시마현 동남부에 있는 작은 항구도시, 오노미치. 지난 12월4일, 사람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고양이들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오노미치로 떠났다.
오노미치는 히로시마에서 80㎞ 정도 떨어진 작은 도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습을 피해 가 일본의 옛 풍경을 품은 오래된 절과 낮은 지붕의 집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 정취 어린 동네는 고양이가 많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히로시마 관광청은 고양이의 관점에서 오노미치를 여행하는 ‘캣스트리트뷰’ 누리집(홈페이지)을 제작해 지역여행 정보를 전하기도 했다.
오노미치시 센코지산 관광안내소 앞에 도착한 나는 얼른 고양이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차에서 가장 먼저 뛰어내렸다. 하지만 머리를 360도를 돌려봐도 고양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는 조급하지 않은 법이지만, 함께한 사람 일행들은 당장 주차장 앞 관광안내소로 달려갔다. “여기서 고양이를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사실인가요? 고양이는 어디에 있죠?” 나이 지긋한 안내인이 질문다운 질문을 하라는 듯 응답했다. “천지에 고양이가 돌아다니는데 무슨 말씀이지요?” 안내인은 긴 팔을 들어 사방 천지를 휘저으며 가서 찾아보라고 했다.
지난 12월4일 찾은 일본 오노미치시 ‘네코노호소미치’(고양이들의 좁은 골목)에서 만난 한 고양이가 동네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동훈(피스윈즈재팬) 제공
고양이들을 주제로 작업하는 미술가 소노야마
일단 오노미치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센코지산 전망대에 올랐다. 강처럼 잔잔한 세토내해를 끼고 작은 배가 들어찬 항구가 내려다보였다. 전망대 옆으로는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오노미치 시립미술관이 있었다. 2017년 3월 이곳 오노미치 시립미술관 공식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고양이를 주제로 한 ‘마네키네코’전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난입하려 해 경비원과 여러 차례 대치했다고 한다. 미술관 쪽은 당시 트위터에 “고양이 전시인지라 고양이의 출입을 허락하고 싶었지만, 작품 보존을 위해 정중히 돌려보냈습니다”라고 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가 방문한 날은 휴관일이라 전시를 관람하려는 고양이들이 미술관 근처를 어슬렁거리지 않았다.
전망대 뒤쪽으로 난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면 지은 지 1천년이 넘었다는 오래된 절인 센코지(천광사)가 있다. 절에는 염주 한 알이 성인 남자 주먹만큼 큰 거대한 염주가 기다랗게 걸려 있는데, 그 염주를 돌리며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염주를 돌리며 소원을 빌었다. “고양이 만나게 해주세요.”
소원이 이뤄진 걸까. 절 바로 아래 센코지 공원으로 내려가자, 과연 고양이 여러 마리가 공원을 뒹굴거리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고양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고양이들은 사람 사이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고 자유롭게 여기저기 퍼져 나무를 타거나 바위에 걸터앉아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치현 도요타시에서 여행을 온 히라마쓰라는 성을 쓰는 한 40대 여성은 “여행 가이드북을 보니 워낙에 고양이가 많다고 해서 왔다. 고양이와 사람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이런 도시가 있다니 반갑고 기쁘다”고 말했다.
센코지 공원에서 만난 검은 고양이. 방해받기 싫다는 듯 벼랑의 바위에 앉아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만세 기자
12월4일 방문한 일본 히로시마현 오노미치시에 있는 ‘고양이들의 좁은 골목’을 가리키는 안내문. 만세 기자
센코지 공원에서 산 아랫마을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고양이가 있는 좁은 골목이라는 뜻의 ‘네코노호소미치’가 나온다. 이곳에는 고양이가 먼저 있고 사람이 있었다. 고양이가 많이 모여 산다는 소문이 나면서 고양이를 주제로 한 카페, 공방, 소품가게, 개인 미술관 같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골목 곳곳에 동그란 돌에 고양이 얼굴을 그려 넣은 오브제가 놓여 있었다. 그 ‘고양이돌’을 따라가다 보니 프랑스어로 고양이라는 뜻인 ‘르샤’라는 이름의 작은 소품가게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노란 불빛이 은은하게 밝혀진 가게는 동화에 나오는 통나무집 같았다. 진열대 위에는 고양이 얼굴이 새겨진 배지, 엽서, 고양이 발 모양 실내화 등 세상의 고양이 물건이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었다. 가게는 소노야마 혣지라는 미술가가 운영하는 곳으로 우리가 골목에서 만난 고양이돌 작품들이 그의 손을 거친 것이었다. 일종의 ‘마네키네코’(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의미의 고양이상)로 돌에 다양한 표정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오노미치에 고양이가 깃든 이유는 바다를 끼고 있는데다 주민 인심이 좋아 먹이를 구하기 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이유로 고양이가 넘실댄다. ‘르샤’에서 일하는 히야시야 기코는 “도시화하지 못한 오래된 동네에서 사람이 많이 떠나 고양이들이 빈집에 터를 잡으면서 고양이가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 한편 “쇠락한 듯하지만 단정한, 특유의 분위기 덕분인지 최근엔 폐가를 개조해 카페를 차리거나 오래된 공간을 되살리려는 젊은 세대들이 깃들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고양이들은 도시의 변화에 적응하며 사람과 공존하고 있었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그때는 활력 넘치는 작은 도시의 ‘힙한’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새로운 기대를 안고 우리는 오노미치의 고양이들에게 안녕을 전하고 도시를 떠나왔다.
오노미치(일본)/만세 기자 mans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