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데려와 사료를 개어 먹이니 조금씩 활기를 찾았다. 만수. 널 ‘만수’라고 불러도 될까?
지난 1월27일. 전국적으로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쳤습니다. 제가 머물던 충남 서산의 최저기온이 무려 영하 16도, 밖에 나가는 것조차 두려웠습니다.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도 자연스레 몸이 한껏 웅크려지는 날씨였죠.
그렇게 추웠던 겨울의 한가운데, 처량하리만큼 황량한 농경지에 위치한 쓰레기 더미에서 털 끝마다 고드름이 달린 강아지를 만났습니다. 아무런 미동도 없는 녀석. ‘생명이 다했구나’ 생각했죠.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며 녀석을 들어올렸습니다. 힘없이 축 늘어지는 팔과 다리… 이미 폐사했다고 여기기엔 너무나 부드러웠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미세하게 떨리는 눈썹. 녀석은 아스라이 숨을 쉬며 처절하게 삶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천수만 평야 한 가운데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된 개
급하게 녀석을 데리고 차에 올라탔습니다. 히터를 최대한 틀고, 온몸을 주물렀습니다. 기생충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자동차 시트와 제 손도 더러워졌죠. 하지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녀석이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으니, 저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풀리는 긴장에 한숨을 몰아쉬며 그때야 녀석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얼굴, 생식기, 항문, 발 주변의 털은 어지럽게 엉킨 상태였고, 그 끝에는 고드름이 달려 있었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정상적인 활동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였죠. 그때야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고작 2~3㎏밖에 나가지 않을 몸무게의 작은 체구를 지닌 개가 도대체 왜 이 넓고 황량한 농경지에, 그것도 쓰레기더미에, 털끝에 고드름이 달릴 정도로 추운 날씨에 쓰러져 있었던 걸까? 이곳은 녀석을 포식할 수 있는 야생동물도 많이 서식하는 곳인데…
본의 아니게 집을 뛰쳐나와 길을 잃었든, 누군가 의도적으로 인적 드문 농경지에 내려두고 뒤돌아 떠났든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녀석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다는 것, 사람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이 중요했죠. 그렇게 저는 만수의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온몸으로 맞선 시련에 의한 외상과 마음의 상처를 부족하나마 직접 보듬어주기로 마음먹었죠. 충남 서산에 있는 천수만 농경지에서 발견했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부족함 없이 풍족하게 잘 살라는 의미에서 ‘만수'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미용하고 났더니 작은 몰티즈
이튿날, 녀석을 데리고 미용실로 향했습니다. 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엉킨 털을 시원하게 밀어냈습니다. 그리고 그때야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죠. 만수는 고작 3㎏ 밖에 나가지 않는, 작은 ‘몰티즈'였습니다. 미용을 마친 만수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나이는 몇 살인지, 언제부터 길거리 생활을 시작했는지, 그동안 생긴 이상은 없는지 살피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수의 나이는 10살 내외, 개의 기준으로 보면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길거리 생활은 한 지는 좀 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피부병도 조금 있고, 치아와 발바닥의 상태가 좋지 못했거든요. 그래도 걱정한 만큼 심각한 외상은 없는 상태였죠.
엉킨 털을 밀어내고, 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겨우 목숨을 지켜낸 작은 생명에게, 하늘은 참으로 가혹했습니다. 보다 정밀한 건강 상태를 살피는 과정에서 만수가 ‘심장사상충'에 감염된 상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죠. 이 연약한 생명에게 무슨 시련이 이렇게 계속해서 닥치는지 많은 것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무심하게 나타난 빨간 두 줄, 만수는 심장사상충에 감염되었다.
만수의 심장사상충은 약 2~3기까지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개복 수술이 필요할 정도는 아니지만, 치료가 쉬운 수준 역시 아니었죠. 보통의 사상충 치료는 두 달 정도가 소요됩니다. 처방된 약을 먹고, 중간중간 기생충 구제 주사를 맞아 치료하죠. 하지만 만수는 나이도 있고, 심장의 비대화가 진행 중이라 급한 치료는 자칫 쇼크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그래서 만수의 치료는 총 넉 달 정도가 소요될 예정입니다. 하루에도 두 번씩 약을 챙겨 먹고, 약 세 번의 고통스러운 주사를 참아내야 합니다.
노령견인 만수는 앞니가 몇 개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혀를 내밀고 있는 답니다. 우리 만수 참 귀엽죠?
이 모든 과정이 노령견인 만수에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만수를 보듬어야 하는 저에게도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임이 확실하죠. 하지만 만수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저도 결코 만수를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만수와 저에게는 한 가지 목표가 더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만수와 같이 추운 겨울 유기되는 불쌍한 동물이 생겨나지 않도록, 부족하지만 누구나 유기동물에게 도움의 손길을 얼마든지 내밀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것 말이죠.
“만수야 준비됐지?”
우리 만수는, 우리 만수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글·사진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