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한때 ‘개고기 운명’이었던 개들, 펄쩍 뛰며 좋아한다 식용견은 반려견과 다르다? 만나면 그런 말 못한다
개들은 사람을 보고 짖기는 했지만 물거나 공격하지는 않았다. 백신 접종을 하러 온 수의사도 같은 말을 했다.
부산 구포 개시장에 가면 케이지에 갇힌 개를 볼 수 있다.
지난 14일 설날을 앞둔 부산 구포시장 입구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과일이나 채소, 고기 따위가 담긴 비닐봉지를 잔뜩 든 사람들의 발걸음은 누가 재촉한 것 마냥 빨랐다. 다만 그 발걸음이 뚝 끊기는 골목이 있다. ‘개시장’이 자리한 골목이다.
이 골목에는 닭과 토끼, 개를 뜬장에 진열해놓고 그 자리에서 도살하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개시장은 구포시장 입구와 달리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사람이 별로 없고, 뜬장의 개들은 자신의 운명을 아는 듯 체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깨갱, 깨갱, 하고 개가 고통에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구포 개시장은 성남시의 ‘모란 개시장’과 더불어 개고기 유통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다. 모란장에서는 살아있는 개를 진열하는 모습이 거의 사라졌지만, 구포시장은 아직이다. 구포에서는 도사 믹스견이나 누렁이 등이 버젓이 진열되어 도축되고 거래된다.
“개고기 만드는 개들은 식용견이 따로 있습니다. 일반 애완견과는 달라요.”
‘개고기’에 대한 논쟁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주장 중 하나는 ‘식용을 위한 개는 따로 있다’다. 그들은 흔히 송아지만 한 몸체를 가진 ‘도사 믹스견’을 가리키며 말한다. 그리고 법으로 개를 도살 가능한 가축으로 지정해 적합한 사육환경을 제공하고 위생적으로 먹자고 이야기한다.
식용견이 따로 있다니. 조금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것만큼 빤한 거짓말도 없다. 개농장을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개농장에서 온 개와 한 번이라도 만나 본 사람이라면 식용견과 반려견이 따로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이었던 10일 경기 시흥의 한 개농장. 우리는 국제 동물보호단체인 ‘휴메인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이하 HSI)의 개농장 폐쇄 준비를 위한 현장에서 100여 마리의 개들을 만났다. HSI는 개농장을 폐쇄하면서 농장주의 전업을 지원하고 구조한 개들을 해외로 입양 보내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 날은 해외로 가기 전 최소한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한편 필요한 백신을 맞추고 개들의 개체정보를 기록하는 날이었다.
이상한 개농장이었다. 낡은 판자와 네트망으로 얼기설기 지은 작은 ‘개집’들이 한 채씩 늘어서 있었고, 개집들 사이사이에는 1m쯤 되는 목줄에 묶인 개들이 땅을 밟고 있었다. 사실 ‘개집’이라고 부르기에는 한없이 부족했다. 바닥이 뜬장으로 되어 있고 천장은 아주 낮은 데다가, 그렇다고 넓은 것도 아니어서 개들은 앉지도, 서지도, 웅크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연신 불편한 듯 발을 옮기고 있었다. 뜬장 바로 아래로 쌓이는 배설물과 털에 개들이 여름에 얼마나 악취로 고생했을까 싶었다.
“여기는 도사견의 비율이 낮네요.”
개농장을 많이 다닌 활동가와 함께 둘러본 개농장에는 도사 믹스견이나 누렁이뿐 아니라 삽사리를 닮은 개들, 사모예드 믹스로 추정되는 개들, 그레이트 피레니즈 등이 있었다. 개들의 얼굴과 꼬리에는 경계심, 반가움, 호기심, 두려움, 그런 가지각색의 감정이 묻어났다. 사람을 좋아하는 개들은 차렷 자세로 앉아 연신 앞발을 동동 굴렀다. 이는 개들의 행동 언어에서 상대방으로부터 애정 어린 관심을 끌기 위한 뜻이라고 한다.
지난 10일 방문한 경기도 시흥시의 한 개농장, 개들은 싸우지 못하도록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쇠줄로 묶여 있었다.
이 농장에는 도사견보다 일반 개들이 많았다.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에서 ‘상근이’로 유명해진 그레이트 피레니즈 종도 갇혀있었다.
그레이트 피레니즈를 실물로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개는 조심스럽게 얼굴을 무릎 사이로 묻었다. 내 바지에 허연 침을 흠뻑 묻히고서야 만족한 피레니즈의 옆에는 얼굴을 물려 다친 개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높이를 맞추고 천천히 주먹을 내밀자, 개는 냄새를 킁킁 맡더니 최선을 다해 주먹을 핥았다. 고향 집에 있는 내 반려견과 똑같은 방식으로의 애정 표현이었다. 반대편에 있는 어미개 한 마리는 내 시선이 제 새끼에게 닿을 때마다 꼬리를 내리며 이빨을 드러냈다.
“그냥 귀여워서 봤어, 안 건드릴게.”
진심으로 말했지만 어미는 새끼들의 목덜미를 물고 개집으로 쑥 집어넣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는 신경 안 쓰는 척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었다.
“비율로 보면 도사견들은 백 마리 중에 한 마리가 사나워요. 남은 아흔아홉 마리는 순하고요.”
백신 접종을 한 수의사의 말 그대로였다. 철장으로 손 등을 갖다대자, 개들은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더니 손등을 핥았다. 혹은 두려움에 멀찍이 떨어져서 시선을 피했다. 몸집이 사람만 한 어느 도사 믹스견은 나는 아는 척도 안 하면서, 동행한 다른 활동가만 보면 꼬리를 흔들고 꼬리를 흔들다 못해 온몸을 펄쩍거리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반가워! 놀아줘!’ 그렇게 외치는 듯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HSI 활동가들은 백신 접종과 개체 카드를 작성한 후 개집 안에 짚단을 깔았다. 짚단은 좋은 자재다. 이것저것 장점이 있는데, 무엇보다 뜬장 사이로 발이 빠지는 것을 막아주고, 추위를 막고 온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개들은 짚단을 낯설어했지만, 이내 그 위에 똬리를 틀고 누워서는 집단을 씹으며 연신 장난을 쳤다. 이빨을 갖다 댈 것이라고는 뜬장과 낡은 판자밖에 없던 개들의 삶에 바스락거리는 즐거운 장난감이 처음으로 등장한 셈이었다.
새끼를 낳은 어미개가 나무 우리 안에 있다.
김나라 휴메인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 캠페인 매니저가 농장에 있는 대형견을 안고 있다. HSI는 이 농장주가 폐업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개들은 3월 중에 외국으로 입양가게 된다.
한 번이라도 이 개들을 만난다면 ‘식용개가 따로 있다’는 말은 못 할 것이다. 한다면 잔인하고 비겁한 거짓말을 내뱉는 셈이 될 것이다. 식용견은 없다. 개는 그냥 개이며, 희로애락을 아는 생명일 뿐이다. 개식용을 합법화해서 개들에게 적절한 환경을 제공해 위생적으로 먹자는 주장 또한 ‘식용개는 따로 없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합리성을 잃는다. 개들에게 적절한 환경이란 한껏 뛰어놀 넓은 공간, 영양가가 고루 갖춰진 사료, 신선한 물, 에너지를 발산할 놀이, 좋아하는 가족의 품을 의미하니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위 ‘식용개’로 불리는 개들은 해외에서는 곧잘 반려견으로 입양되고 있다. 내가 방문한 농장의 개들도 캐나다와 미국으로 건너가 곧 가족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식용개가 따로 있다는 거짓말을 믿는가?
김나연 애니멀피플 통신원·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활동가, 사진 휴메인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