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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키선수가 묻는다 “개 식용이 한국 문화 맞나”

등록 2018-02-24 08:51수정 2018-02-25 16:57

[애니멀피플] 거스 켄워시 개농장 방문 현장
평창올림픽 출전한 미국 스키 스타
강아지 입양하려고 식용견 농장 갔다
외신 기자들도 동행해 밀착 취재
오리엔탈리즘-민족주의 갇힌 논쟁
한국 사회 스스로 답해야 할 때 아닐까
미국 스키 선수 거스 켄워시가 한국의 개농장을 찾았다. 켄워시는 품에 안고 있는 강아지(사진)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스키 선수 거스 켄워시가 한국의 개농장을 찾았다. 켄워시는 품에 안고 있는 강아지(사진)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23일 이른 아침 경기도 시흥시의 개농장에 슬픈 눈을 한 미국인이 찾아왔다. 그곳은 국제동물보호단체의 도움으로 폐업을 결정했다. 3월 중에 약 100마리의 개 전부를 캐나다와 미국으로 입양보내기로 예정돼있다. ‘애니멀피플’이 지난 9일 만나 농장주를 인터뷰한 곳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개농장주는 왜 폐업 결심했나’)

슬픈 눈의 미국인은 지난해 이 단체와 함께 홍보영상을 촬영하면서 ‘한국의 개 식용’에 대해 알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올겨울 한국에 온 김에 개농장의 개 한 마리를 입양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농장을 찾았다. 그는 이번 평창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경기에서 12위를 하고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이 종목 은메달을 목에 건 미국의 유명 스키 선수 거스 켄워시(27)이다. 개를 사랑하는 스포츠스타로 유명하다. 농장에는 그의 애인인 매튜 월커스가 함께 왔다.

한 달 전쯤 태어난 믹스견 새끼들이 농장 안을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새끼 강아지들을 품에 안은 거스의 모습을 촬영하는 여러 카메라가 그를 에워쌌다. 이날 농장에 온 미국 매체 ‘월스트리트저널’과 ‘에이피 통신’도 거스 켄워시가 개농장의 개를 입양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켄워시는 개농장을 둘러보며 다양한 표정을 지었다. 새끼 강아지를 바라볼 때는 편안하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고, 뜬장에 갇혀 큰 소리로 짖고 있는 여러 개들을 보면서는 얼굴에 슬픔이 가득했다. 뜬장 안으로 손을 뻗어 개들을 만지기도 했다. 농장에 처음 들어설 때 개들이 사는 환경을 본 켄워시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도사견이 대표적인 식용견이라고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매우 착해보인다. 왜 이 개들이 식용견이냐”고 물었다.

농장을 둘러보는 외국인들은 개 짖는 소리에 잠시 놀란 것 같았지만 이내 여유를 찾았다. 반면 농장주인 김아무개(72)씨는 초조해했다. 말이 통하는 기자에게 “(방송이 나가면) 외국인들이 한국을 깔볼까 봐 걱정돼서 그렇지”라고 말했다.

외부의 시선으로 우리의 모습을 평가받고 싶지 않다는 것일까. 김씨 스스로 개농장이 외국에 소개되는 것이 유쾌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지난 21일 경기를 마친 네덜란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얀 블록하위센이 “한국의 개들을 잘 대해달라”라고 말한 것을 두고 많은 한국인이 분노한 것도 한국의 문화를 서양의 기준으로 판단하려 한다는 불쾌함에서 촉발됐다.

거스 켄워시는 뜬장에 갇힌 도사견에게 손을 뻗어 만졌다. 개농장 개들은 덩치는 크지만 좁은 공간에만 살아서인지 공격성은 별로 없다.
거스 켄워시는 뜬장에 갇힌 도사견에게 손을 뻗어 만졌다. 개농장 개들은 덩치는 크지만 좁은 공간에만 살아서인지 공격성은 별로 없다.

외신과 인터뷰 중인 거스 켄워시.
외신과 인터뷰 중인 거스 켄워시.
외국 기자들이 한국 개 식용 문화에 대해 어떤 취재를 하고 어떤 기사를 쓸 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에이피와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들은 모두 회사의 원칙 때문에 다른 언론과 인터뷰를 할 수 없다고 ‘쿨하게’ 말했다. 어깨너머로 기자들이 미국 스키선수와 농장 관계자들에게 하는 질문을 들을 수 있었다.

에이피의 남자 기자는 농장의 폐업을 도운 동물보호단체 활동가에게 이 농장의 개들이 왜 한국에서 입양처를 찾지 않고 외국까지 보내야 하는지를 질문했다. 또 농장주인에게는 한국 정부가 농장 운영에 대해 제재를 한 적이 없는지도 물었다. 취재대로라면 그는 개 식용을 둘러싼 한국의 복잡한 상황을 파악했을 것이다.

개농장 개들이 한국이 아닌 외국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땅의 식용견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또 다수가 아파트에 살고 소형견이 인기인 국내에서는 대형견을 입양하려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동물복지와 관련한 법이 허술하고 정부가 이 산업에 개입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생명보다는 고기로서의 가치가 중요한’ 상업적이고 비인도적인 개 농장 운영이 수십년동안 지속됐다. 더불어 개 식용 문화도 유지되고 있다.

외국 기자는 한국인들이 한국의 개 식용을 ‘전통 혹은 문화가 아니라 학대이며 악습’이라고 비판해 온 일부 외국인(주로 서양)들에게 불쾌해하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켄워시에게 “개 식용을 한국과 서양의 문화 차이로도 볼 수 있는데, 굳이 개 식용 반대 발언을 하느냐”고 질문했다. 그는 “한국인에게 당장 개를 먹지 말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 개를 키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좋지 않은) 환경에서 개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두고 문화라고 볼 수는 없다”고 답했다.

개 식용을 삶의 한 형태로 인정할 수 없는 이유가 ‘인도적이지 않은’ 동물학대 요소가 있어서라면, 소나 돼지, 닭을 먹는 것은 어떨까. 이들 가축도 열악한 환경의 ‘가축공장’에서 상업적으로 키워지고 도축된다. 전 세계가 같다. 한국의 개 식용은 무엇이 그렇게 다르기에 불편하다는 걸까.

켄워시는 “전 세계적으로 다른 가축들이 그렇게 희생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소, 돼지, 닭을 먹고 있다. 그래서 이들 가축을 빼놓고 식생활을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개는 먹는 사람이 적으니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지 않나. 10가지가 잘못됐을 때 그중 1가지라도 해결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 답했다.

개라도 먹지 말자는 켄워시의 의견에 동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개를 먹는다는 것이 한국의 전통이자 문화이니 비판하지 말아 달라고 말을 하려면, 개 식용이 한국이 보존할 전통인지 문화인지부터 사회적 합의를 봐야 한다.

개 식용은 전통과 문화일까. 동물학대일까.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사회가 먼저 답을 해보는 건 어떨까. 켄워시는 “한국의 젊은 사람들은 개를 많이 먹지 않는 것으로 들었다. (현재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강아지 새끼 한 마리를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한때 고기로 처해질 운명의 생명 하나가 새 삶을 얻게 됐다

글·사진/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외신과 인터뷰 중인 거스 켄워시와 애인 매튜 월커스. 거스 켄워시는 몇해 전 커밍아웃했다.
외신과 인터뷰 중인 거스 켄워시와 애인 매튜 월커스. 거스 켄워시는 몇해 전 커밍아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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