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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누렁이의 눈물’ 짜내는 반려견 복제에 세금 써야 하나

등록 2018-03-26 06:00수정 2018-03-27 15:17

[애니멀피플] 동물의 친구들
“국가가 동물보호 정책 시행”
대통령의 개헌안과 동떨어진
농촌진흥청 반려견 복제 사업

개농장 개 무차별 난자 채취하는
복제 연구에 정부 지원 안된다
서울대 수의대에서 동물실험에 이용되는 개들. 개농장에서 공급된 개들은 난자를 채취당한다.  카라 제공
서울대 수의대에서 동물실험에 이용되는 개들. 개농장에서 공급된 개들은 난자를 채취당한다. 카라 제공

남이와 파랑이를 케이지에서 꺼내 놓자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마치 뱃멀미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네 다리를 벌려 몸을 낮게 지탱하면서 한 발도 내딛지 못했다. 개들의 몸에는 오랫동안 자라나 갑옷처럼 딱딱하게 뭉쳐버린 털이 얼굴과 온몸 그리고 항문을 뒤덮고 있었다. 파릇한 녹음이 자라나고 봄의 온기가 가득했던 2015년 봄 이른바 ‘순종’ 몰티즈 파랑이와 남이는 동료 11마리와 함께 평생 처음으로 번식장 케이지를 벗어났다.

남이와 파랑이가 구조된 번식장의 모든 개들이 열악한 환경에 있었다. 그중에서도 남이와 파랑이는 제일 구석진 곳 좁은 케이지에 갇혀 있었다. 최소 1년 이상 극단적인 방치 상태로 있었던 이 두 마리 개에 대해 농장주는 자기 개가 아니라고 말했었다. 남이와 파랑이는 임신이 잘 안되거나 새끼를 못 낳는 ‘상품성 없는’ 개들일 거라는 합리적인 추측이 제기됐다. 함께 구조된 다른 개들과 달리 이 개들은 새끼를 낳은 흔적이 없었다.

번식장 기계로 살던 두 마리 개는 입양을 갔다. 한 가정의 동물 가족으로 살아가며 올해로 세번째 봄을 맞았다. 올봄에는 동물들에게 좋은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반려동물 번식업 허가제가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있다. 공무원들이 동물학대를 조사 처벌하고 실태를 감시할 수 있도록 동물경찰제도도 도입하겠다고 한다. 동물학대자에 대한 벌칙도 대폭 강화되었다. 이제 막 시작되는 번식업 허가제와 동물경찰제 둘 다 이후 우리 사회에 많은 도전 과제를 안겨줄 것이다. 특히 번식업자들은 사활을 건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얼마 전 번식업자 여럿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모두가 걱정이 많았고 정부를 향해 거친 항의의 고성을 내질렀다. 그래도 통과의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신은 결백하니 농장에 한번 방문해 달라는 업자도 있었다. 모두가 더는 시민들이 이전처럼 동물들을 함부로 다루게 놔두지 않을 것이며 변해야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듯했다.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긴 하지만 동물은 여전히 ‘물건’으로 취급되며, 관련 법이 있어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 동물을 보호해야 하는 동물단체로서는 매일이 답답하고 가슴 아프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돌이키기 힘들 만큼 악화된 공장식 축산과 최악의 동물학대 집합소가 된 이른바 대규모 ‘식용개’ 농장 문제로 어느 나라보다 큰 해결과제를 안고 있다. 이 두 난제는 각각 동물 보호·복지에 관한 한 3무(무책임·무능력·무위)로 일관한 정부 방치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때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는 동물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동물보호 의무 규정을 신설한 헌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누구는 소식을 듣고 울었다고 하고, 또 다른 이는 가만히 있어도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고 했다. 지난해 초부터 제안서를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닌 기억이 나 나도 조금 눈물이 났다. 그만큼 기쁜 일이다.

번식장에서 구조된 몰티즈 파랑이. 갑옷처럼 딱딱하게 뭉쳐버린 털이 얼굴과 온몸 그리고 항문을 뒤덮고 있었다.  카라 제공
번식장에서 구조된 몰티즈 파랑이. 갑옷처럼 딱딱하게 뭉쳐버린 털이 얼굴과 온몸 그리고 항문을 뒤덮고 있었다. 카라 제공
그러나 대통령이 국가의 동물보호 의무를 천명하고 국민이 환호하는 가운데 돌연 재를 뿌리는 집단이 있다. 농촌진흥청은 올해 들어 ‘반려동물산업 활성화 핵심기반기술 개발사업’을 위해 연구단장을 공모했다. 5개년 연구에 연간 지원 예산만 총 43억5000만원이란다. 한데 공고된 2대 연구영역 중 하나가 ‘반려견 복제생산기술 효율화 플랫폼 구축’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되어 박근혜 정부로 이어진 이 사업은 특정 연구자 몰아주기처럼 보인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개 복제를 농촌진흥청은 아예 반려동물산업 연구라며 몰두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연구’ 사업의 단장으로 이병천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선정했다는 소식이다. 시쳇말로 정말 실화일까? 이병천 교수는 그러지 않아도 불쌍한 개농장의 누렁이들을 뜬장(바닥이 뚫려 있는 철제 사육박스)에 감금한 뒤 난자를 채취·이용하고 임신한 개까지 도로 개농장으로 보내 도살되게 했다. 남이와 파랑이를 학대한 번식업자를 압도하는 비윤리적인 행위다. 연구윤리가 결여된 ‘연구자’에게 서울대는 전혀 제재를 가하지 않았고, 농촌진흥청은 막대한 예산을 덥석 안겼다. 법은 항상 약하고 어렵고 착한 사람들에게 더 무섭게 적용된다. 문제는 언제나 돈을 좇아 사업 기회를 찾으며 법망을 피해 가는 방법을 잘 아는 영악한 사람들이다.

현장에서 동물복지 농장을 하려는 농장주, 비록 대척점에 있지만 변화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번식업자들을 만난다. 국가가 지원하지 못하는 행정, 법이 자라지 못하는 지점에서 멈출 수밖에 없는 가난하고 무력한 이들은 단 몇천만원의 지원이라도 감지덕지다. 비윤리적인 복제 행위를 오랜 기간 해온 연구팀에 지원할 돈이 있다면 이분들에게 나눠서 지원하는 게 낫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은 약하고 어렵고 착한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국가는 동물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조항이 고압적이고 퇴행적인 농촌진흥청의 어리석은 연구를 돌이키는 큰 울림이 되기를 바란다.

전진경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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