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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식용견’에서 ‘실습견’으로…수의대 개는 어떻게 사나

등록 2018-04-02 05:01수정 2018-04-02 10:12

[애니멀피플] 어느 수의대 졸업생의 양심선언
애니멀피플에 보내온 13쪽 편지
“시장에서 사와 열악한 환경서 사육
다른 개 보는 앞에서 마취하고
체급 다른 개끼리 강제 교미도”

교수들 ‘시각 차이'라면서도
“잡종견 견줘 실험견 비싸서
잘 해주고 싶어도 재원 부족”
제보자는 이 사진 속 개들이 ㄱ대학 수의대 방사선 실습에 사용되는 실습견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15일 애니멀피플이 확인한 곳과 같은 곳으로 보인다. 종이에 인쇄된 사진을 스캔했다. 제보자 제공
제보자는 이 사진 속 개들이 ㄱ대학 수의대 방사선 실습에 사용되는 실습견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15일 애니멀피플이 확인한 곳과 같은 곳으로 보인다. 종이에 인쇄된 사진을 스캔했다. 제보자 제공
“뜬장, 유기견, 정신적·신체적 학대. 무엇이 연상되나. 개 시장? 아니, 수의과대학이다.”

지난 3월9일 ‘애니멀피플’ 앞으로 익명의 우편 제보가 들어왔다. 지방의 한 국립대인 ㄱ대 수의대가 개 시장 등 출처가 불분명한 개를 실습견으로 이용하며 동물을 학대했다는 주장이었다. 실습견들의 사진과 사육 위치가 적힌 지도도 함께 인쇄돼 있었다.

15일 ‘애니멀피플’은 ㄱ대 수의대를 찾았다. 건물 지하에 4마리의 실습견이 짖고 있었고, 창문을 통해 지하실의 내부가 보였다. 옆 건물에서도 개들이 요란하게 짖었고 악취가 났다. 옆 건물은 창문이 높아 안을 볼 수는 없었다. 제보자가 알려준 대로였다.

‘분만 실습’에 이용당하는 개

전체 13쪽에 이르는 제보는 상세했다. 수의해부학, 수의산과학, 수의영상의학, 내과와 외과 등 수업에서 이용하는 실습견의 출처, 사육 환경, 관리 문제 등을 ‘고발’했다.

“해부학 실습은 개 시장에서 사 온 여러 마리 잡종견으로 한다. 방사선 실습에 이용되는 개 4마리 중 2마리는 비글, 2마리는 잡종견이다. 산과(교미~분만) 실습에 개장수로부터 산 암컷 유기견을 이용한다. 개들은 뜬장과 비위생적 환경에서 사육된다. 해부학 시간 개들은 해부실 앞에 묶인 채 방혈 차례를 기다린다. 방혈이란 심장 마취로 의식을 잃게 한 뒤 경정맥을 절단해 체외로 혈액이 빠져나오게 해 폐사에 이르게 하는 방법으로, 장기를 잘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실시한다.

그런데 이때 마취하는 모습을 다른 개들이 바로 옆에서 지켜본다. 방혈 중에 마취가 풀려 고통을 호소하는 개도 있었다. 산과 실습견들은 발정유도제를 맞고 체급이 다른 개들끼리의 강제 교미로 1년에 한 번씩 새끼를 낳는다. 노화나 건강 이상으로 수태 능력이 떨어질 때까지 새끼를 낳는다. 새끼들은 생후 2개월께 어미와 헤어져 분양된다. 내과와 외과도 유사하거나 더 심하다.”

지난 3월9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애니멀피플팀으로 온 우편 제보. 사진 포함 총 13쪽 분량이었다. 보낸 이는 ‘JEBOJA’였고 우편인이 찍힌 곳은 서울시 명동에 있는 ‘서울 중앙’ 우체국이었다. 제보자의 신원을 알 수 있는 단서는 없었지만, 제보 내용을 볼 때 ㄱ대학 졸업생으로 추정된다. 최우리 기자
지난 3월9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애니멀피플팀으로 온 우편 제보. 사진 포함 총 13쪽 분량이었다. 보낸 이는 ‘JEBOJA’였고 우편인이 찍힌 곳은 서울시 명동에 있는 ‘서울 중앙’ 우체국이었다. 제보자의 신원을 알 수 있는 단서는 없었지만, 제보 내용을 볼 때 ㄱ대학 졸업생으로 추정된다. 최우리 기자

만약 제보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

대학에서 동물실험을 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면, 정부에 등록된 실험동물 공급 업체에서 개를 구매해 사용하는 것이 ‘권장’된다. 하지만 실험동물과 관련된 두 개의 법, 동물보호법과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실험동물법)에서는 대학교 같은 교육기관의 실험동물 이용을 규제할 조항이 없다. 동물보호법에서 금지하는 유기동물만 아니라면, 개 시장에서 개를 사서 실험을 해도 처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생명을 대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대학의 윤리적 책임은 물을 수 있다.

단, 개가 보는 앞에서 다른 개를 ‘죽이는 행위’는 동물보호법 위반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지난해 11월 개고기용으로 팔려온 개들을 한 공간에서 전기도살하던 60대 남성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바 있다. 실험의 당위성, 윤리성 등을 검증하는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의 승인 없이 진행했다면 역시 위법이다.

“우리도 바뀌길 바란다”

ㄱ대 수의대 교수들은 제보 내용에 대해 “시각의 차이, 부정적·악의적 표현”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들은 학교 쪽을 통한 서면 답변과 27일 ‘애니멀피플’과의 통화에서 제보의 상당 부분을 인정했다. 동물을 이용한 실습과 실험에 대해 최종 승인권을 가진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통과하지 않은 채 이뤄진 실습도 한 건 있었다.

교수들은 잡종견이나 식용견이었던 개 등 출처가 불분명한 개들로 실습해왔다고 인정했다. 수의해부학 담당 ㅇ 교수는 동물 약품 업체에서 약품과 잡종견 8마리를 함께 구매했다고 했다. 한 마리에 20만원. 업체가 구한 개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샀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수의산과학 ㄱ 교수도 “개 몸무게 1㎏당 1만~1만5천원의 가격을 주고 샀다. 유기견이 아닌 식육견을 구조한 개들로, 실습 후 온라인 카페에 올려 일반 가정에 분양했다”고 말했다. 수의영상의학 ㅇ 교수는 “비글 믹스 2마리는 다른 대학 교수님을 통해 다른 기관에서 실험한 개를 받았다. (이전에 실험했어도) 방사선 실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해부를 위한 방혈 전 심장 마취를 할 때 다른 개들이 보고 있었다는 주장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 ㅇ 교수는 “마취는 의식을 잃게 하는 것일 뿐 죽이는 것과 다르다. (같은 공간에 있었다고 해도) 개들은 서로 거리를 두고 있었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제보자는 이 사진 속 개들이 ㄱ대학 내과 실험용 비글이라고 소개했다. 청소하기 전이라 비글의 똥이 케이지 안에 있다. 제보자 제공
제보자는 이 사진 속 개들이 ㄱ대학 내과 실험용 비글이라고 소개했다. 청소하기 전이라 비글의 똥이 케이지 안에 있다. 제보자 제공
제보자는 개들이 좁은 케이지 안에 있어야 하며 사료그릇이나 물그릇을 엎으면 굶어야 했다고 했다. 담당 교수는 “케이지는 개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편이고 높이도 상당하다”고 했다. 제보자 제공
제보자는 개들이 좁은 케이지 안에 있어야 하며 사료그릇이나 물그릇을 엎으면 굶어야 했다고 했다. 담당 교수는 “케이지는 개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편이고 높이도 상당하다”고 했다. 제보자 제공
뜬장에서 사육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부정했다. 하지만 수의산과학 ㄱ 교수는 “개농장의 뜬장은 1m 정도 떠 있고 2층도 쌓아 올리고 철망 구멍도 크다. 하지만 우리는 5㎝ 정도 떠 있고 바닥에 똥오줌이 떨어지지 않게 청소도 잘한다. 바닥 면적 30%는 판을 덧대 쉴 수 있도록 해뒀다”고 설명했다. 바닥으로부터 ‘떠 있는’ 점에서 뜬장과 다르지 않았다. 강제 교미 의혹에 대해 “발정이 오지 않는 경우가 있어 경구 발정유도제를 먹이고 발정이 오면 체급이 달라도 (교미를) 허락한다”고 수업 내용을 설명했다.

ㄱ대 교수들은 동물을 살리고 싶어 들어온 학생들이 올바른 환경에서 수의학을 배울 수 있도록 법적, 윤리적 문제 없이 실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실습견 복지를 위해 산책이나 실습견 건강검진, 청소 등은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국가나 대학 본부의 ‘지원 부족’이라는 것이다.

수의해부학 ㅇ 교수는 “1년 동안 한 과목의 예산이 200만~300만원이다. 정식 공급업체를 통해 100만원대 비글 1~2마리를 구해봤자 60명 대상 수업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영상의학 ㅇ 교수는 “일본은 실습견사와 실습견만 관리하는 직원이 따로 있다. 바닥은 난방이 들어오고 개들 목욕도 자주 시켜준다. 한국은 사료비, 목줄, 간식 등 대기도 빠듯하다”고 했다.

‘살아 있는 동물로만 실습해야 하냐’는 질문에 교수들은 “임상 경험이 중요하다. 모형은 고정돼 있기 때문에 생체를 봐야만 더 잘 알 수 있다”, “학생들도 생체로 실습하길 원한다”, “외국과 달리 사체 기증자가 적다” 등의 이유를 들었다.

글·영상/최우리 기자 ecowoori@hani. co.kr

다른 대학도 ‘출처 불분명’ 잡종견으로 실험

수의대 실험견 실태를 제보한 ㄱ대학 졸업생으로 추정되는 이는 “전국 대부분의 수의대에서 이러한 동물학대”가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실은 ‘애니멀피플’이 지난 1월 전국 국립 수의대 9곳에 정보공개청구를 요청해 받은 ‘2015~2017년 수의과대학에서 실시한 개 실험’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 대학 역시 개 시장에서 구매한 걸로 보인다.

ㅈ대학교는 2015년과 2017년에 한 차례씩 재래시장에서 구매한 잡종견으로 실험했다. 이 대학 관계자는 “순종은 가격이 비싸니까 오일장에서 파는 잡종견을 사용한다. 몸에 튜브를 꽂는 실험이나 보조식품 섭취 시 건강 상태 변화 등 간단한 실험이었다”고 대답했다.

ㅊ대학교는 수의해부학 실습 목적으로 잡종견을 사용했다. 대학 쪽은 2015년 잡종견 7마리와 닭, 돼지 등을 214만원에 구입하고, 2017년 잡종견 10마리를 닭, 돼지 등과 함께 299만원에 구매했다고 밝혔다. 두 번 다 ‘전문공급업체’로부터 샀다고 답했다. 주로 비글을 생산하는 ‘전문공급업체’에서 잡종견을 취급하냐는 질문에 이 학교 관계자는 “공급업체가 어떤 곳인지는 교수가 밝히기 꺼렸다”고 했다. 한 마리당 60만~150만원 하는 비글 가격을 고려할 때 시장에서 개를 샀을 가능성이 있다.

수의대 학생 모임인 전국수의학도협의회(전수협)에 각 대학의 사정이 어떠한지 질의서를 보냈다. 전수협은 답변서에서 “학내 구성원 모두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고 학교의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 생명 존중의 교육이 이뤄지길 바란다”며 구체적 답변은 피했다. 지난달 23일 전수협 관계자는 “(예민한 문제라) 포괄적 답변을 한 점 양해해달라”고 했다.

오는 6월부터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되면, 정식 공급업체에서 공급받지 않은 동물로 실험했을 때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실험동물법 적용 대상에서 교육기관(대학)은 빠져 있다. 동물보호법에도 실험동물 반입에 관한 규정이 없어, 현재로선 수의대의 자의적인 실습견 이용을 규제하기 힘든 상태다. 동물단체들은 실험동물법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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