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 22년만에 학교로 돌아왔다. 공부하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가장 힘든 것은 전공이 바뀌어 낯선 용어에 적응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벚꽃 잎이 날리는 봄의 캠퍼스는 아름답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공부하기가 힘들다고? 돌이켜 보면 어릴 때도 나는 그렇게 명민한 편은 아니었다. 어리거나 늙거나 공부는 역시 어렵다! 그런데 왜 하냐고? 이것은 왜 사냐고 묻는 것과 같다. 내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나는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다. 긴긴 시간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온 동력은 하나였다. “왜 사람들은 동물을 이렇게 대하는가? 그것이 옳지 않다면 어떻게 사람들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바꿀 수 있을까.” 인문학은 나의 사고를 합리적으로 만들어주었고, 과학은 나의 생각을 더욱 깊게 만들어 줄 것이다.
한 시간이라도 수업을 빠지면 다음 시간에 못 알아듣는 용어가 나오니 어쩔 수 없이 예습·복습도 해야 한다. 상황이 이러니 저녁에 여유있게 누군가를 만나 술을 마시며 세상 일을 논할 여유가 없어졌다. 그 오래전 나쁜 세상을 향해 돌을 던지던 선배들이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만 들고파던 학생들(이른바 도서관파)을 욕하기도 했는데, 지금 내 꼴이 딱 그건가 싶다. 아직도 세상은 모순투성이고 할 일이 많지만 나는 도서관에, 교실에, 연구실에 틀어박힌다.
공부하며 졸다가 나를 깨우는 고양이 니체를 생각한다.
이 긴긴 사설을 늘어놓는 이유는 ‘지금 내 옆에 가장 가까이 있는 유일한 친구가 고양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다.
일상에 지쳐 맥주 한 잔을 하고 싶어도 막상 혼술이 된다. 나와 술상을 마주하는 것은 고양이다. 니체는 나와 함께 영화를 보고 나와 함께 술자리에 앉아있고 나와 함께 모든 시간을 함께 한다. 컴퓨터 자판 위에서 방해하다가 내가 상대해주지 않으면 창가로 간다. 날씨가 따뜻해져 이중창 중 하나를 열어주었고 캣타워를 창가에 놔뒀다. 내가 공부하는 동안 간혹 니체는 창밖을 구경한다. 지나가는 고양이와 참새, 까치에 반응한다. 아 그래 넌 고양이였지. 천부적인 사냥꾼.
“속상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어요”라고 말하자 누군가 장난처럼 조언한다. “고양이하고 하세요.” 그래서 니체와 나누는 대화를 적어보고자 한다. 니체가 아닌 독자들이 읽겠지만. 사람과의 소통은 언어라는 도구로 이루어지는만큼 그 언어는 감정선을 타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인류를 위한 따뜻한 과학연구는 결과적인 평가일 수 있지만 그 과정은 너무도 외롭고 힘겨운 길이다. 그런 점에서 고양이는 나를 다그치지도 책망하지도 평가하지도 않는다. 얼마나 좋은 친구인가.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자리를 빼앗을까 겁이 나는가. 반려동물이 자신의 자리를 차지할까봐 경계하는가. 그렇다면 사랑하는 가족에게 친구에게 잘하자. 니체를 사랑하는 만큼 나는 인간과의 소통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가족의 소중함도.
때때로 내가 하는 일을 방해하는 듯 하지만, 늘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며 나를 기다려주는 고양이 니체.
나: 니체, 널 두고 장기간 나가있어서 미안해.
니체: 괜찮아. 근데 다녀오면 꼭 놀아줘.
나: 니체, 매일 바쁘기만 해서 미안해.
니체: 괜찮아. 집사가 자판을 사랑하는건 알아. 근데 나를 더 사랑하는 것도 알아. 난 그냥 심술 부리는거야. 알면서 내 성격.
나: 니체, 근데 나 화장실 갈 때 꼭 따라와서 무릎 위에 앉아야 해? 민망한데.
니체: 괜찮아, 똥은 나도 싸잖아. 집사가 꼭 치워주지 매일. 한시라도 떨어져 있기 싫어서 그래.
북치고 장구치고. 사랑은 그런거 아닐까. 혼자 착각하고 혼자 생각하고. 그래도 따뜻한 것.
나: 니체, 근데 이렇게 공부만 하는게 뭔가 걸려. 할 일이 많은데 말야.
니체: 집사, 넌 너 자신을 위해서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잖아. 늘 그랬잖아. 배운 것을 세상을 위해 써야 한다고. 쓰임이 생길 때가 있을 거야.
우리가 동물을 위해 무엇을 한다는 것 역시 착각일 수 있다. 동물들이 우리를 살게 한다. 인간이 동물을 착취해 온 역사는 결국 인간에 의해 바뀔 것이다.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때는 바로 자신들이 착취해온 대상을 위해 기꺼이 노력할 때다. 나는 진정으로 인간다운 인간이고 싶다.
전채은 동물보호단체 동물을위한행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