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본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사랑한다고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 얼마나 힘든가.
고양이 털에 알레르기가 있는 바람에 하루에 두 번 청소를 해야 하고, 때때로 털도 제거해야 하고, 귀찮은 일이 이만저만 아닌데
한참 바쁠 때 고양이가 찰싹 달라붙어서 온몸에 털을 발라놓으면 나도 모르게 신경질을 내게 된다. 물론 귀찮아하다가도 금세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잘해주긴 하지만. 동물이든 사람이든 한 공간을 함께 쓰게 되면 이런저런 힘든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동물도 이런데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 역시 얼마나 힘든 일인가.
대한민국에서 성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듣게 되는 이야기들. ‘결혼 안 하세요?’ ‘결혼 언제 해요?’ ‘결혼하셨어요?’ 모두 ‘인간은 태어나 결혼을 통해 짝을 만나고 남녀가 함께 살면서 아이를 낳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며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라는 전제가 있기에 가능한 질문이다. 간혹 비혼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 해도 ‘특별한 케이스’로 본다. 정상이 있으면 이상이 있고 중심이 있으면 부차가 있으며 기준이 생기면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생긴다. 물론 윤리에 있어 모든 측면에서 상대주의를 인정할 수는 없다. 인간으로서 누구나 지켜야 하는 준칙. 칸트의 정언명령 같은 것은 아직도 유효하다.
고양이 ‘니체’가 의자를 물어 뜯고 있다. 함께 산다는 것은 이렇게 만만치가 않다.
그러나 성적 자기결정권과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문제, 결혼이라는 제도를 자신의 삶에서 받아들이는 문제는 다르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단지 그 사람이 동성을 사랑하고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차별받을 이유는 없다. ‘나는 동성애를 반대합니다.’ 얼마나 바보 같은 발언인가. 이렇게 반문해보자. 당신이 동성애자를 싫어하든 말든 어차피 세상에 그들은 존재한다. 존재를 말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당신의 발언은 그들에게 억압이 될 수 있다.
‘남자를 싫어하는 거야?’ ‘상처받은 거야?’ ‘얼마나 외로우면 고양이랑…’ 이런 걱정 섞인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언젠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하겠지. 단 지금은 하고 싶지 않을 뿐이고 솔직히 남자와 사는 것보다 고양이와 사는 삶이 더 매력적인데 어쩌랴.
이런 발언은 한국의 다수 남자들은 불편하게 할지 모르겠지만
해야겠다. 남자의 유용성이 점차 떨어지는 시대. 인공지능 로봇과 반려동물이 여러분들의 자리를 빼앗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제발 어깨에 힘 좀 빼고 경쟁력을 갖추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받고 싶으면 사랑받을 행동을 하란 말이다!
다양성에 대한 인정은 차별과 억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해방해 줄 중요한 지점이다. 다양한 다른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서 우리가 모두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삶은 시작과 동시에 불행과 고난을 수반한다. 우리는 살면서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면 그냥 인정하자. 적어도 불필요한 고통과 폭력을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과학을 공부한다. 동물의 신체와 생리, 의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동물의 몸과 인간의 몸에 공통점이 많다는 것이다. 인간도 동물에서 왔고 결국 동물이다. 잘난 척 좀 그만하고 나와 다른 존재들을 살피고 살자.
글·그림·사진 전채은 동물을 위한 행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