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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가정폭력으로 흩어진 가족…개들은 갈 곳이 없다

등록 2018-05-23 13:59수정 2018-05-23 16:47

[애니멀피플]
남편은 애들뿐 아니라 개들도 때렸다
개와 함께 갈 수 있는 쉼터는 없었다
가정이 사라지면 개들도 집을 잃는다
보스턴테리어 카이가 사진을 찍고 있다.
보스턴테리어 카이가 사진을 찍고 있다.

닥스훈트 라이가 사진을 찍고 있다.
닥스훈트 라이가 사진을 찍고 있다.
ㄱ씨에게 연락이 온 건 지난 3월이었다. 그녀는 초등학교도 다니지 않는 어린 두 자녀, 그리고 반려견들이 함께 지낼 곳을 찾고 있었다. 새로운 주거지를 찾는 이유는 가정폭력이었다. 남편은 매일같이 술을 마시며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다. 그의 폭력은 어린 자녀들에게까지, 그리고 개들에게까지 향했다. 남편은 개들을 위협하거나 우발적으로 유기하기도 했다.

그런 나날이 이어진 끝에, 그녀는 자녀들과 반려견들의 안전을 위해서 이 상황을 끝내는 것이 바르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남편을 경찰에 신고했고, 임시거처로 이동했다. 하지만 남편은 가족들을 바로 찾아내 행패를 부리며 위협했다. 더 안전한 곳이 절실한 순간이 이어졌다. 그 순간 속에서 카이와 라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짖거나, 낑낑거리는 것밖에는.

뉴스나 신문에서 가정폭력에 대한 기사를 많이 접할 수 있다. 우리가 채 몰랐을 뿐, 일가족을 모두 죽음으로까지 몰아가는 불행의 저편에서는 말 못하는 동물들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ㄱ씨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녀는 두 아이, 두 반려견과 함께 입소할 수 있는 쉼터를 찾고자 했다. 하지만 전국의 그 어떤 쉼터도 반려동물과의 동반입소는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반려견을 입양이 보장되지 않는 유기동물센터로 보내 안락사를 기다리게 하거나 길거리에 버릴 수는 없었다. 그녀는 최대한 지인들에게 반려견을 입양 보내고자 노력했고, 일부 반려견은 입양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카이와 라이에게는 소식이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으로 연락해 본 것이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였다.

개인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학대와 폭력으로 인한 피해 가정 내 반려동물에 대한 보호장치의 제도적 한계와도 이어지는 부분이었다. 사실 가정폭력뿐만 아니다. 홀몸 노인이 노쇠하여 더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을 때의 반려동물도 오갈 데 없는 처지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 외에도 어쩔 수 없이 가족이 사라지는 많은 상황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 거부할 수 없는 가족의 해체를 동물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에게 의존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이제는 너를 보살필 수 없다고, 이제는 알아서 잘 살아야 하니 잘 해보라고 말할 수가 없는데….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가 카이와 라이를 보호하고 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가 카이와 라이를 보호하고 있다.
우리는 그녀가 겪은 일을 학대와 폭력으로 인한 피해 가정 내 반려동물에 대한 보호장치의 제도적 한계와 이어지는 것이라 판단했다. 통계자료만 없다뿐이지 가정폭력으로 참 많은 동물이 생사를 알 길 없는 보호소로 들어가거나 버려졌을 것이었고, 누군가 공론화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오갈 데 없는 동물들이 보호받지 못할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먼 길을 달려서 만난 씨의 곁에는 곧 다른 가족에게 갈 강아지 한 마리와 보스턴테리어 카이, 닥스훈트 라이가 있었다.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개들은 제 반려인의 곁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하다는 듯 쾌활하고 안정된 모습이었다. ㄱ씨가 카라에 두 마리의 개를 인수한다는 동의 서약서를 작성하는 동안에도 개들은 처음 만나는 활동가들에게도 가끔 관심을 건네면서 곁을 파고들거나 눈으로 좇았다.

반려인과 유대를 강하게 형성하고 있는 만큼 카라 센터로 데려가는 것이 걱정도 됐다. 하지만 카이와 라이는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이동장 안에서 사고 한 번 안 치고 얌전히 있었다. 센터로 온 후에도 새로운 환경, 낯선 사람들과 지내기가 쉽지 않을 텐데도 서로를 의지하며 잘 지내고 있다. 한껏 호기심으로 무장하고서 산책을 하고, 사교성 좋게 사람과 동물들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조금 낭만적으로 상상해 보자면, 카이와 라이가 잘 지내고 있는 건 어쩌면 같은 땅, 같은 하늘 아래에서 힘내어 다시 제자리를 찾고자 하는 씨를 이해해서가 아닐까. 어쩌면 씨와 두 자녀가 개들에게 가서 잘 살라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끝없이 이야기했을지도 모르겠다.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카이와 라이는 가족이 겪고 있는 비극을 알았을 것이다. 가족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울거나 아프지 않았으면 좋을 것이라 바랐을 것이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가 카이와 라이를 보호하고 있다. 입양문의는 카라로 하면 된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가 카이와 라이를 보호하고 있다. 입양문의는 카라로 하면 된다.
ㄱ씨와 자녀는 자립을 위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다만 씨의 자녀들은 개들을 보낸 뒤에도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고 한다. 피가 섞이지 않았을 뿐이지 형제와 다름없었을 개들을 떠나보내야만 했으니 얼마나 야속하고 무력했을까.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자녀와 반려견들을 지키고자 했던 보호자의 가슴에도 어린 자녀 앞에서 내색할 수 없을 뿐 이별의 생채기가 났을 것이다.

가족에게 닥친 이 어려운 시기에 만약 개들과 함께 입소할 수 있는 쉼터가 있었다면 겪지 않아도 될 아픔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 동물가족까지 폭력의 대상으로 여겨 보호하는데까지 합의하지도 배려의 수준이 이르지도 못했다. 그들이 입은 상처가 완벽히 회복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카이와 라이가 좋은 집에 입양 가서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 한 줌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가족이었던 반려견들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을 힘으로 삼아 차근차근 한 걸음씩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가정폭력으로 인해 동물들의 안위가 위협받지 않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초안을 그리면서 카이와 라이에게 평생 가족을 찾아주는 일이 주어졌다. 중성화 수술도 시켰고, 균형 잡힌 식단을 제공하고, 산책을 나서며 몸과 마음을 건강히 유지하는 것이 그 첫번째다. 카이와 라이는 오늘도 점심시간에 활동가들과 함께 산책을 나선다. 꼬리를 흔들고, 반짝거리는 눈으로 주변 세상을 쫓으면서. 그 눈 끝에 닿는 것이 동물병원 한 쪽, 산책을 시켜주는 활동가들, 쉴 새 없이 들락날락하는 많은 동물들이 아니라 이제는 헤어지지 않아도 괜찮을 가족이기를 빈다.

■입양문의: 카라 www.ekara.org

글/김나연 애니멀피플 통신원·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활동가, 사진/김용욱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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