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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음식 앞에서 털 뿜뿜…추석이니까 괜찮아

등록 2018-10-01 13:00수정 2018-10-01 16:21

[애니멀피플] 히끄의 탐라생활기
“나도 명절 음식 먹고 싶다”고 말하는 듯한 히끄의 표정.
“나도 명절 음식 먹고 싶다”고 말하는 듯한 히끄의 표정.
설날과 더불어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을 히끄와 함께 보냈다. 히끄는 환절기 때 털이 많이 빠져서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방에 가둬놨더니, 꺼내달라고 한참을 야옹거렸다. 맛있는 냄새가 나서 궁금한데 문은 안 열리니깐 잔뜩 화를 낸다. “그래, 털이 무슨 대수냐. 너도 가족이니까 함께 즐기자”며 꺼내줬다.

주방이 좁아서 전은 내가 전담해서 부치고, 동네 친구인 한카피님이 거실에서 꼬치전을 만들었다. 그 옆에서 히끄는 잘하고 있나 감시하는 척 음식을 호시탐탐 노렸다. 별 소득이 없는지 거실과 주방을 왔다 갔다 하며 존재감과 털을 내뿜었다. 한 핏줄을 나눈 혈육이 뭐가 중요할까? 매일 보는 이들이야말로 가족보다 더 가족 같다고 느꼈다.

이 자세 무엇? 마주 앉아 있자니 고향 가서 큰아버지 말씀을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자세 무엇? 마주 앉아 있자니 고향 가서 큰아버지 말씀을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제주에 정착한 후로는 명절 때 부모님을 뵈러 가지 않는다. 명목상의 이유는 연휴에 놀러 오는 사람이 많아서 운영하는 민박을 쉴 수 없다는 것이고, 실질적인 이유는 명절이라고 왁자지껄한 것보다 조용히 보내는 게 더 좋아서이다. 불편한 질문 없이, 헛소리를 듣지 않아도 명절을 보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없어도 언니와 오빠, 4명의 조카가 있어서 부모님은 적적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30년 넘게 명절 때마다 기름진 음식을 먹었던 입맛과 곳곳에서 풍겨오는 전 부치는 냄새의 유혹을 참을 수 없어 동네 친구들과 함께 명절 음식을 준비해 먹으며 즐긴다. 음식은 많이 하지 않고 딱 명절 기간에만 먹을 정도로 적당히 한다.

이런 과정이 번거롭거나 귀찮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함께 장을 보고, 함께 전을 부치고, 함께 한 상에서 먹고, 함께 정리하기 때문이다. 부모님 댁에 가기 싫은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엄마와 내가 음식 준비를 하면 아빠와 오빠는 누워서 텔레비전만 본다. 그런데 손이 없나, 발이 없나, 음식까지 대령해야 하는 게 싫었다. 전에는 엄마 혼자 준비하기 힘드니까 결혼한 언니를 대신해 가야만 했다.

상 차리고, 치우는 걸 하루에 몇 번씩 반복하는데, 상을 받는 사람 중 여자는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지금까지 아이러니하다. 심지어 남자들은 안방에서, 여자들은 주방에서 따로 밥을 먹고, 상에 놓인 반찬 구성도 확연하게 달랐다. 편안한 건 하나도 없고, 보고 있으면 힘든 게 많아서 발길을 끊었다.

히끄가 창가에서 길고양이 ‘고등고등’이 마당에서 밥을 먹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히끄가 창가에서 길고양이 ‘고등고등’이 마당에서 밥을 먹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이웃들과 한바탕 음식을 나눠 먹고 배가 불러서 히끄와 함께 누웠다. 부드러운 털을 만지자 히끄 털에서 기름 냄새가 난다. 어쩐지 하루 종일 그루밍을 열심히 하더라. 냄새를 없애려고 했는지, 기름 맛을 보기 위해 했는지 너만 알겠지.

누워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오는 길고양이 중 한 마리인 ‘고등고등’이 와 있었다. 사료를 부어주고 옆에서 한참을 지켜봤다. 추석인데 혼자 밥 먹는 게 쓸쓸해 보여서 오늘만이라도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평소에는 조용한 마을이 귀향객들로 인해 떠들썩해서 더 외로워 보였는지도 모른다.

글·사진 이신아 히끄아부지·<히끄네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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