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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3마리가 금세 35마리로…‘애니멀호딩’은 사랑이 아니다

등록 2018-10-11 10:59수정 2018-10-11 11:17

[애니멀피플]
노부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변 냄새…
구조해도 고양이는 아프고, 봉사자도 피부병 옮아
지난달 21일부터 동물보호법 개정돼 애니멀호더 처벌 가능
구조된 고양이.
구조된 고양이.
한 노부부가 삼사십 마리쯤은 되는 고양이들을 기르고 있다는 제보가 왔다. 애니멀호더인데 고양이들을 감당할 수가 없어 다 버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한창 고양이들이 발정이 난 후라 새끼들도 무척 많고, 아파 보이는 녀석들도 많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제보를 받고 찾아간 노부부의 집은 아파트 8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부터 미묘하게 고양이 특유의 배변 냄새가 난다 싶더니, 8층에 도착하자 역겨운 비린내가 확 끼쳤다.

“와줘서 고마워요, 고마워. 우린 그냥 우리 애들 좀 누가 데려가 줬으면 좋겠어요….”

노부부는 어려움을 토로하며 활동가들을 맞이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빼곡하게 벽에 쌓인 가구와 잡다한 식기와 도자기가 보였고, 고양이들이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다가 후다닥 도망가는 게 보였다. 부부는 신발을 신고 집 안으로 들어오라는 안내와 함께 음료를 건넸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쩍쩍 거리는 소리가 발뒤꿈치로 따라왔다. 아직 덜 마른 소변이 겹겹이 쌓인 흔적이었다. 고양이들은 따로 화장실 없이 소파, 이불, 바닥 등에 대소변을 보고 있었다. 손톱에 뜯기고 할퀴어진 가구들도 성하지는 못했다.

“고양이 전용 모래를 놓으시면 애들이 거기에 알아서 볼일을 봐요. 그럼 냄새가 덜 나는데요.”

“아녜요, 우리 애들은 알아서 욕조에다 잘 눠요.”

노부부에게는 결코 꺾을 수 없는 몇 가지 고집이 있었다. 대표적인 두 가지는 집 안 물건들은 절대 버리지 않는다는 것과 고양이들의 중성화 수술은 하지 않는 것이었다. 삼 년 전에 데려온 수컷 한 마리와 암컷 두 마리가 지금의 대가족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왜 이 지경이 될 때까지 한 마리도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

처음 구조하러 갔을 때 집안 모습.
처음 구조하러 갔을 때 집안 모습.

처음 구조하러 갔을 때 집안 모습.
처음 구조하러 갔을 때 집안 모습.
현장답사 당시의 고양이 상태.
현장답사 당시의 고양이 상태.
노부부에게는 새끼가 태어날 때 간간이 바구니에 담아 시장에 나가서 새끼들을 분양하는 게 이 상황을 타개할 최선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는 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노부부는 고양이들을 더는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고양이들을 모두 길거리에 내보내겠다’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집 안에 방치된 고양이들

집안 상태도 상태였지만 무엇보다도 고양이들의 건강이 걱정이었다. 성묘와 자묘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고양이가 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피부병과 곰팡이, 귀 진드기의 흔적이 역력했다. 개중에는 털이 반지르르하니 깨끗한 녀석들도 있었다. 이 환경에서 살아남은 만큼 강한 항체를 가졌겠다 싶었다.

고양이들 상태가 너무 좋지 못했다. 사료가 충분치 않아 고양이들은 야위어 있었고, 새끼들은 낯선 사람의 등장에도 힘이 없어 멀리 도망치지를 못했다. 눈곱이 잔뜩 껴 눈도 못 뜨거나 이미 일어나지 못하는 녀석도 몇몇 보였다.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구조가 시급했고, 곧 카라와 한국고양이보호협회가 고양이들의 구조작업을 진행하게 됐다. 쌓여있는 갖가지 가구와 물건을 치우면서 스물아홉 마리 고양이를 잡는 데는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그러고도 아주 깊숙한 곳에 있는 고양이는 찾지 못해 며칠 뒤에 세 마리를 추가로 더 잡아왔다.

좁고 더러운 집에서 고양이들을 데리고 나올 수 있어 한 숨 돌렸다 싶었건만, 큰 고비가 찾아왔다. 병원에 간 고양이들이 바로 범백혈구 감소증(이하 범백)을 진단받은 것이다. 전염성도 높고, 치사율도 50%가 넘는 무서운 질병이다. 치료비가 많이 드는 병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열악한 환경에서 버텨온 생명을 돈을 이유로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적극적인 치료를 진행하기로 했다.

고양이들은 혈청을 맞으며 투병을 시작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부터 한 마리씩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줄초상이 이어졌다. 병원에서 태어난 세 마리 새끼까지, 총 열 일곱 마리의 고양이들이 눈을 감았다. 입원 후 49일이 되는 날 살아남은 열여덟 마리 고양이들이 퇴원했다. 다만 적극적인 치료의 결과, 몇 천만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청구서를 받아야 했다. 병원 원장 선생님이 딱한 사정에 공감해 할인하고 또 할인해서 겨우 지불할 만한 금액으로 경감했지만 치료비는 이천만원을 훌쩍 넘겼다.

집기들로 꽉 찬 집 안 곳곳에 고양이 배설물이 묻어있었다.
집기들로 꽉 찬 집 안 곳곳에 고양이 배설물이 묻어있었다.

구조된 고양이.
구조된 고양이.
구조 직후 고양이들.
구조 직후 고양이들.
병원비는 둘째 치더라도, 범백 치료를 끝낸 고양이들의 상태도 그렇게 좋지는 못했다. 새로운 환경에 위축되어 하악질을 하고 솜방망이를 날리기 바빴다. 털도 듬성듬성 푸석푸석했다. 곰팡이 자국에 얼굴이 얼룩덜룩한 성묘들도 몇몇 있었다. 사람을 좋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반듯한 몰골도 아니었다. 범백에서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범백 바이러스는 배출할 수도 있는 상태였다. 이대로는 입양을 갈 수가 없었다. 막막했다. 그래도 기적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고양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두 가지였다. 범백, 곰팡이 피부병, 귀 진드기, 이 3종 질병 세트를 극복하는 것과 입양이 가능하도록 사람에 대한 친화성을 기르는 것. 우리는 복층방을 임대해 고양이들을 데리고 갔다. 처음 며칠은 크롬케이지에 넣어 밥을 먹는지 안 먹는지, 배변 활동은 잘하는지 아닌지 등을 확인했다. 그리고 밥을 잘 먹고 배변 활동에 문제가 없는, 사람 손을 타는 고양이들부터 한 마리씩 풀어주기 시작했다.

일부는 무지개 다리를 건너가

감사하게도 많은 시민이 고양이들의 사연을 듣고 각종 후원물품을 보냈다. 사료, 모래, 간식, 영양제, 간식, 캣타워, 스크래쳐 등등…. 고양이들이 입양을 가서도 당분간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을 정도의 양이었다. 임시보호처(임보처)를 청소하고 고양이들과 놀아주기 위한 자원봉사자분들도 많았다. 고양이들은 덕분에 생전 처음으로 깨끗하고 넓은 집에서 사람들의 다정하고 세심한 손길을 받았고, 맛있는 것도 먹었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던 고양이들은 활동가들과 봉사자들의 정성 속에 토실하게 살쪄갔다.

고양이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활동가들과 봉사자들이 곰팡이 피부병(링웜)에 감염되어 무척 고생을 많이 했다. 곰팡이는 활동가 열댓 명과 봉사자 절반에게 번졌다. 곰팡이가 활동가와 봉사자들의 반려동물에게까지 번지는 불상사까지 일어났다. 비위생적인 집에서 오래 방치됐던 고양이들에게서 유래한 피부병은 그렇게나 강력했다.

고양이들은 임보처에서 한 번씩 허피스(고양이 감기)를 앓았다. 환절기의 영향에 밀집 사육이 지속되고 있는 탓이었다. 나름대로 넓은 복층을 구했고 하루 두번씩 청소하고 소독했지만, 사실 많은 개체 수가 한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고양이들에게는 스트레스였다. 어린 고양이들을 위주로 입원시키고, 퇴원시키고, 다시 입원시키고 퇴원을 시키는 과정 끝에 이제 다시 안정기가 찾아왔다.

구조된 고양이.
구조된 고양이.

구조된 후 돌봄방에 모인 고양이들.
구조된 후 돌봄방에 모인 고양이들.
영양상태가 좋아졌다.
영양상태가 좋아졌다.
어린 고양이들은 요새 사람 무릎을 많이 찾는다. 봉사자들이 최선을 다해서 화장실 치우고, 캔 따고, 간식 먹이고, 지칠 때까지 장난감을 흔들어준 덕분이다. 냉장고 뒤에 쭈그려 애써 시선을 피하던 성묘들도 이제 익숙한 사람이 오면 제법 가까이 와서 용기 내서 손등을 핥아주기도 한다. 같은 공간에서 고양이의 시간에 맞춰 가만히 기다려준 사람들이나 끊임없이 말을 걸어주고 장난감으로 유혹하는 사람들 덕분이다.

한편, 엉망이었던 노부부의 집은 카라와 고보협이 함께 청소하기 위해 노부부를 설득하는 중이다. 처음에는 완강히 집 청소를 거부했던 노부부도 끈질긴 설득으로 이제는 태도가 꽤 협조적으로 바뀌었다. 청소를 한 번 진행한 후에도 노부부가 다시 고양이를 데려와 호더가 되지 않도록 꾸준한 모니터링으로 관리할 예정이다.

중성화수술 접근성 높았다면…

사실 사건이 이렇게까지 커지고 복잡해진 것은 노부부의 탓만이 아니다. 캘리포니아의 경우에는 모든 반려동물 중성화 수술을 한 달간 무료로 시행하기도 했다. 반려동물의 가정번식을 지양하고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이 우리 사회에도 있었더라면, 동물의 중성화 수술에 대한 사회적인 접근성이 좀 더 높았더라면 고양이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기 전에 문제를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달 21일부터 시행된 동물보호법 개정안으로 애니멀호더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반가운 일이지만, 당장 그것으로 애니멀호더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아주 근본적으로 애니멀호더의 발생을 규제할 수 있는 법과 문화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번식업과 판매업을 강력하게 규제하고 반려동물의 삶이 건강한지를 사회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얼마 전에는 아기고양이 ’츄’와 ’레오’의 입양이 확정되었다.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넌 남매들이 땅에 남은 가족들은 남은 생을 잘 살다 오라고 응원해준 덕분인 것 같다.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성급하게 떠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에게 다시 한 번 애도를 표한다. 다른 고양이들도 어서 좋은 가족을 만나고, 우리 모두 잘살고,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마련하고, 나중에 무지개다리 너머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김나연 애니멀피플 통신원·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 사진 동물권행동 카라·한국고양이보호협회

구조 당시 ‘팅커벨’ 모습.
구조 당시 ‘팅커벨’ 모습.

건강해진 ‘팅커벨’.
건강해진 ‘팅커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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