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박현철의 아직 안 키우냥
27. 산책, 집사가 더 좋아하는
고양이 집사에게 산책은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것이다. 평생을 집 안에서만 지내야 하는 고양이의 운명을 생각하면, 자주 데리고 나가 바깥 세상 구경을 시켜줘야할 것 같은 의무감이 밀려든다. 그런데 또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넓은 운동장에 풀어놓으면 여기저기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개와 달리 고양이는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두리번거리기만 한다. 보들이도 그렇고, 전혀 안 그럴 것 같은 라미도 그렇다.
그런데 좀 이기적으로 생각하면 의외로 답이 쉽게 나온다. 고양이와의 산책은(‘집사와의 산책’이 아니다) 집사에겐 재미있는 일이다. 고양이를 가방에 태우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하면 늘 걷던 길도 달리 보인다. 길 가던 아이들도 먼저 다가와 나를(물론 고양이를) 쳐다본다. “아이고야, 고양이를 이리 델고 나오는 건 또 첨 보네”하고 어르신들이 다가오기도 한다. 동네 주민들과 더 가까워지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나 역시 평소엔 별 관심도 없던 산책 나온 강아지들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고, “저 댕댕이 언니 좀 봐라, 라미야”라며 먼저 말도 걸게 된다.
라미가 혼자 있을 땐 주말마다 산책을 했었다. 물론 강아지들이 하는 그런 산책이 아닌 산책용 가방에 라미를 태우고 진짜 산책은 집사가 하는 식이었다. 생후 2~3개월일 때라 세상 모든 게 신기한 라미는 여기저기 눈길을 주느라 바빴다. 시원한 바람이 신기한지 코를 벌름거리기도 했다. 그때 그 산책들에 라미가 얼마나 만족했는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집사는 아주 좋았다.
라미의 산책은 한 달만에 끝났다. 보들이가 왔기 때문이다. 둘을 함께 데리고 나갈 순 없었다. 가슴줄을 채워도 행여 일어날지 모를 돌발 상황이 걱정됐다.
지난 여름 라미와 보들이네에 새 집사가 들어오면서 ‘운반책’이 확보됐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한창인 시월의 어느 주말, 보들이는 새 집사에, 라미는 헌 집사에 실려 산책을 나갔다.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가슴줄을 채웠고 그 가슴줄을 가방에 묶었다.
가끔 옥상에 올라간 걸 제외하면 라미나 보들이가 집 밖으로 나간 건 지난해 12월 종합백신을 맞으러 갈 때 이후 거의 10개월 만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아 달아나려 하거나 큰 소리로 울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예상과 달리 둘은 차분했다. 보들이는 가방에 얼굴을 파묻고 조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보들이야 뭐 별 걱정도 하지 않았다. 우려했던 라미도 땅바닥이 신기해서 한번 뛰어내리고, 인사하러 달려온 강아지에게 두어번 으르렁거린 걸 빼면, 그날의 산책은 성공적이었다.
‘이렇게 좋은 산책을 뭐하다 이제야 나왔을까’ 싶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인 집사의 생각일 뿐이다. 고양이들이 스스로 걷지도 않을 뿐더러 직접 걸으면서 산책하는 게 고양이에게 좋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마음 같아선 울타리가 둘러진 마당도 있고 나무도 있는 집에서, ‘전력질주’도 하고 나무타기도 하면서 살면 참 좋겠지만… 이번 생에선 불가능하겠지.
다시 ‘풀리지 않는 숙제’를 고민 중이다. 동시에 내 손은 오랫동안 벼르고 벼르던 고양이 산책용 ‘우주선 가방’ 결제 버튼 주위를 맴돌고 있다.
박현철 서대문 박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