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집이 완성된 후 엄마 고양이는 매일 밤 찾아왔다.(관련 칼럼
모든 건 고양이가 결정한다, 집사는 섬길 뿐) 실내에서 나와 공간을 공유하지 않을 뿐 사실상 친구나 가족이 된 느낌이었다. 우리는 매일 만났다. 엄마 고양이는 내가 없을 때도 밥을 먹곤 했지만, 내가 사무실 밖으로 나오면 그제서야 어딘가에서 나타나 밥을 먹는 일도 많았다. 나와 친해지고 싶은 것일까. 집사가 보는 앞에서 밥을 먹는 것이 마음이 편해서일까. 그러나 아직 이름은 짓지 못했다. 길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는 이유는 이름을 만들고 이름을 부르면 결국 마음 아픈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내가 손을 내밀면 손을 세게 치던 엄마 고양이는 어느 날부터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지방 출장을 갔다가 시간이 늦어서 그 곳에서 자고 아침에 사무실로 온 날이 있었다. 내가 문 앞으로 걸어 들어오자 저 멀리서 엄마 고양이가 달려왔다. ‘양양양’ 소리를 내면서. 마치 ‘어디갔다 이제왔어! 밤새 기다렸잖아’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이것은 감동이다. 우리는 어느새 연결되었다.
생각보다 더 빨리 가까워졌다. 어느 날부터인가 밥을 먹고 나서도 한참을 앉아있다 문쪽을 쳐다보는게 아닌가. 아, 문을 열어달란 뜻일까. 살짝 문을 열자 엄마 고양이가 안을 들여다봤다. 고양이 특유의 호기심, 자신에게 밥을 주는 집사에 대한 관심. 나는 엄마 고양이가 실내에 사는 집고양이의 삶을 선택한다면 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고양이는 밥을 먹고 나서 또 머뭇거렸고 내가 문을 열어주니 안으로 쏙 들어왔다. 기적처럼 나에게 다가온….
그런데, 안으로 쑥 들어온 고양이에 대한 니체의 반응은 어땠을까. 독자들이여,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악마냥’. 니체가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쳐대는 것이 아닌가. 결국 깜짝 놀란 고양이는 열린 문틈으로 냅다 도망을 가버렸다. 그런데. 엄마 고양이가 간 이후 니체의 반응은 더욱 놀라웠다. 하악대며 나에게 온갖 신경질을 내는 것이 아닌가. “왜 다른 고양이 들이는거야!”
화가 난 니체. 분노의 스크레칭을 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 나는 반성해야 한다. 어찌 감히 니체의 공간에 니체의 허락도 없이 다른 고양이를 들이겠는가. 니체에게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줘야 한다. 그리고 엄마 고양이가 실내 생활을 하는 집고양이로 잘 적응하리란 확신도 없다.
엄마 고양이가 니체와 친해지는 것보다 더 가장 급한 것은 엄마 고양이가 더 이상 길에서 아기를 낳지 않게 하는 일이다. 중성화 수술 예약을 하고 나는 그 밤 내내 기다렸다. 새벽이 되도록 엄마 고양이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아침이면 언제나처럼 자고 있겠지. 아침 6시쯤 나가보니 엄마 고양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케이지 안에 사료를 조금 넣어두니 엄마 고양이는 안으로 쏙 들어왔다. 나는 케이지를 들고 택시를 탔다. ‘고양이야, 이제 길거리에서 아기 낳지 말아라.’
고양이를 병원에 맡긴 뒤 서울역 인근에서 회의가 있어 갔다가 다시 병원으로 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었지만 엄마 고양이를 맡긴 입장에서 수의사 선생님에게 인사라도 하고 싶었다. 수의사도 결국 인간이다. 동물을 맡긴 사람이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면 신경도 더 많이 써주겠지 하는 마음뿐. 동물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깜빡 택시 안에서 잠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밤에 엄마 고양이를 기다리느라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아침에 씻지도 못하고 병원으로, 그리고 일 하러 쏘다니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은 힘들었다. 누군가가 내 삶에 영역에 들어온다는 것은 기쁨인 동시에 두려움이다. 때로 일상이 흐트러지고 가슴 졸일 일도 생긴다. 그러나 사랑은 늘 그렇게 다가오지 않나.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의 그림자로.
사무실 앞에 텅빈 고양이 집을 바라보았다. 엄마 고양이는 아직 병원에 입원 중이다. 쓸쓸하게 텅빈 집을 보면서도 나는 쓸쓸하지 않다. 엄마 고양이는 곧 돌아올거니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엄마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여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에밀리 디킨슨. 고독속에서 침잠하며 살았지만 누구보다 인간의 삶을 깊이 있게 성찰했던. 자그마한 체구에 조용하고 예쁜 엄마 고양이에게 적당한 이름이리라. 나는 고양이의 이름을 잘 짓고 싶다. 아름다운 이름에 아름다운 영혼이 깃들 것이라는 마음으로. 에밀리 곧 만나자. 널 지켜줄께.
전채은 동물을 위한 행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