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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이기적인 남편, 고양이 니체에 빠져든 이유

등록 2018-11-20 14:20수정 2018-11-20 14:27

[애니멀피플] 전채은의 내 사랑 프리드리히 니체
동물을 들이지 않는 동물권 활동가의 반려묘
착하고 얌전하지 않아도 니체라서 괜찮아
어느날 학교에서 사무실로 오니 에밀리 집에서 까만 고양이 하나가 튀어나왔다. 이런! 에밀리 집을 다른 고양이가 뺏은거 아닌가 걱정을 하는데… 에밀리가 뒤이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에밀리에게 지어준 겨울집은 본 집이 하나 있고 에밀리가 나와 잠시 쉴 공간, 두 개로 나뉘어져 있다. 그 공간으로 다른 고양이가 스며 들어온거다. 외모상으로 수컷 고양이였다. 중성화 수술을 미리 시켜준 것이 다행이지.

수술을 하고 돌아온 날, 아파 기운이 없을 줄 알았는데 웬걸. 에밀리는 이동장에서 나오자마자 계단을 쏜살같이 내려가 길바닥에서 한번 뒹굴고 곧장 마실을 나갔다. 에밀리는 건강하다.

에밀리는 내가 문 밖으로 나오면 그제서야 밥을 먹는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분명히 눈에 잠이 잔뜩 들어섰는데도 꼭 내 앞에서만 밥을 먹는다. 마치 ‘내가 밥을 먹을 때 집사가 행복해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간혹 밥을 먹다말고 내 발 옆에 머무르기도 하지만 절대 손을 허락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손을 내밀면 앞발킥을 날린다. 이것이 나와 에밀리가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거리다. 그나저나 이쯤 되면 니체의 항의가 빗발칠 때가 되었다. “집사, 이건 에밀리 디킨슨의 칼럼이 아니고 프리드리히 니체의 칼럼이다냥.”

아마 이 일을 하면서 나처럼 집에 동물을 적게 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두 마리 이상 들여본 적이 없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욕을 많이 먹었다. 정말로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맞냐는 거다. 불쌍하고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 너무 냉정한거 아니냐는 것. 그런데 내 경험상 초반에 열정을 쏟아붓는 사람치고 오래 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불쌍한 동물을 구조하고 집에 들이고 그러다 보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동물을 케어하는데 쓰게 된다.

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한 마디로 주제파악을 잘한다는 것이다. 나는 몸을 쓰며 노동하는데 매우 취약하다. 나는 문제를 분석하는데 뛰어나다. 몸보다는 머리 쓰는 것을 더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편이다. 욕은 먹었지만 내가 잘 하는 일을 잘 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임시보호도 잘 안맡는 편이다. 임시보호하면 결국 그 동물을 입양하게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결국 니체는 굉장히 특별한 케이스다. 이것이 운명적 만남이 아니고 무엇이랴.

동물의 표정이 그 동물의 성격 모두를 말해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니체가 가진 어떤 유전자가 니체의 눈을 쪽 찢어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우연히 일어난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니체의 표정은 결코 착하고 얌전한 고양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니체는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성격도 소심하면서 집사에 대한 소유욕이 강하며 매우 이기적이다. 나는 니체에게 꼼짝 못하고 꽉 잡혀 사는 마누라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니체를 신랑, 남편이라고 소개한다. 물론 많은 남성들은 속으로 ‘에효 불쌍해라, 맘에 맞는 남자를 만나지 못해 고양이를 끼고 사는 외로운 여성’이라고 동정할거다. 물론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무서워서겠지만.

‘상남자’ 매력 뿜뿜, 고양이 니체.
‘상남자’ 매력 뿜뿜, 고양이 니체.
출산율이 낮다고 다들 걱정이란다. 애 낳으면 돈 준다 집 준다 정책은 화려하다. 그러나 결혼 역시 사회적 제도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늘어나면 결혼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여성 역시 늘어난다. 서구 유럽에서 출산율을 늘이는데 성공한 것은 정부가 여성들에게 애를 많이 낳으라고 홍보해서가 아니다. 성평등 정책의 결과다.

예전에 아는 형사에게 들은 이야기다. 실종된 여성들 대부분 어디선가 암매장당해있을 거라고. 그들 중 다수는 애인이나 남편이 범인일 거라고. 불평등한 제도와 문화는 단순히 적은 월급과 부당한 대우, 성희롱적 발언에 그치지 않는다. 여성들의 목숨까지도 위험하게 만든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제기한 여성의 독립성은 아직도 실현되지 않았다. 여성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주체적 삶을 살아가야 한다. 남성에게 의지하지 말고 외로운 삶을 감내해야 한다. 우리는 남성 중심의 사회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낳아주지 않을 것이다. 출산율을 높이고 싶다면 여성을 삶의 주체로 대우해라. 이 간단한 상식이 왜 실현되지 않냐 하면 실지로 실현되는 것을 겁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페미니즘의 구호는 많지만 나는 그 핵심에 ‘나는 너희와 자지 않아’가 있다고 생각한다. 군대도 남자만 가라고 하고 데이트 비용을 다 남자에게 떠넘기고 결혼할 때도 집을 남자가 해야 하고…등등. 남성들의 불만은 늘 여성들에게 향한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데이트 비용을 같이 내고 집도 같이 사려고 저축하는 여성들도 많은데, 남성들이 이기적인 여성을 찾아다닌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여성들이 많아서 문제인 것이 아니라 그런 여성들을 찾아 전체를 욕하는 근거로 삼는다는 데 있다. 이것은 매우 의도적이다. 우리가 너희를 만나지 않는 것은 너희가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너희가 매력이 없기 때문인데.

어쩌랴. 너희보다는 고양이가 더 매력적인데. 적어도 고양이보다 나은 점이 있어야 만날거 아닌가 말이지.

전채은 동물을위한행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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