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장에서 지내는 개들. 사람에 대한 호의와 반가움을 감추지 않았다.
참 이상한 모양새의 개농장이었다. 어디서 주워왔는지 온갖 고물을 구해와 길을 만들어놓고, 온갖 집기류를 가져와 돌담길을 장식해 놓고 있었다. 길 곳곳마다 어렵지 않게 녹슨 칼이나 가위도 볼 수 있었다. 높고 넓은 원두막에는 미러볼이 두어 개 달려 반짝거렸고, 그 아래로는 역시 별의별 고물이 집결해 있었다. 기가 막히게도 어디서 성능 좋은 스피커를 구해왔는지 라디오 방송이 그 언덕배기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출처는 모르지만 상당히 다양한 곳에서 종류를 가리지 않고 집어온 고물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개들도 그 고물들과 비슷하게 취급되고 있었다. 벌교 개농장에는 몹시 다양한 견종의 개들이 모여 있었다. 예닐곱은 족히 되어 보이는 성견부터 매우 어린 강아지까지, 그리고 무척이나 순둥한 소형견부터 세상에 이렇게 사나울 수 있을까 싶은 진돗개까지. 뜬장 하나에 대형견은 한 마리씩, 소형견은 세네 마리씩 놓여 있었는데, 나름대로 비슷하게 생긴 애들끼리 나란히 놓여 있거나 한 철장 안에 넣어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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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처럼 개들을 ‘수집’했던 그곳
개농장은 환경보전 지역에서 불법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여느 개농장이 그렇듯 개들은 음식물쓰레기를 먹으며 도살장으로 팔려가거나 그곳에서 죽임을 맞이했다. 자원활동가의 끈질긴 민원 제기에 의해 폐쇄 명령을 받게 되었고 개농장주는 개들의 소유권을 포기했지만, 개들은 어디로도 갈 데가 없었다. 60여 마리, 한 개인이나 시민단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숫자였다.
벌교 개농장의 전경. 개농장은 현재 모두 철거되었다.
뜬장 옆에는 수많은 목줄과 쇠사슬이 놓여 있었다. 얼마나 많은 개들이 여길 지나갔을까.
한 단체로서는 어렵지만, 투명성과 정직함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여러 단체가 함께 한다면 감당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지난 3월 여러 논의 끝에 개들을 살리기 위해 다섯 단체가 모였다. ‘나비야 사랑해’는 해외 입양 연계를, ‘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은 국내 입양지원을, ‘동물권행동 카라’와 ‘동물자유연대’는 활동 기간 동안 아이들이 의탁할 장소에 대한 위탁비 지급과 홍보를, ‘비글구조네트워크’는 개체 관리를 맡기로 했다. 각 단체의 강점을 고려해 나눈 역할이었고, 치료와 보호, 입양에 이르기까지 각 역량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오직 개들을 위해서, 그리고 모범적인 구조와 협업 사례를 제안하기 위해서.
뜬장 옆에는 수많은 목줄과 쇠사슬이 놓여 있었다. 얼마나 많은 개들이 여길 지나갔을까.
뜬장 아래에서는 구더기가 들끓고, 휘어진 야구 배트가 여기저기 널려있고, 작동하지 않는 냉동고에는 썩어 비틀어지는 개 머리가 보관되고 있는 그곳. 벌교 개농장에서의 구조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 와중에 ‘동물단체에서 개농장 개들 데려간다’는 소식을 들은 이웃들이 개농장에 반려견을 데려다 놓기도 했다. 반려견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가 반, 그리고 촌부의 투박한 연민이 반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개농장에 버려진 개들까지 합쳐 모두 65마리. 아침부터 진행된 구조는 점심때쯤 끝이 났고, 개들은 400km를 달려 안전한 위탁보호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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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람이 좋으니? 눈물이 났다
위탁보호소에 온 개들은 맨땅을 밟고 신이 났는지 엉덩이춤을 췄지만, 새로운 환경이 낯선 많은 개들은 사람의 접근에 구석으로 몸을 숨기려 애를 썼다. 개체 관리 카드의 ‘사람과의 친화도’를 기록하는 칸에는 대부분 ‘사람에게 경계심이 있다’는 문구가 쓰였다. 치료도 하고, 중성화 수술도 하고, 접종도 맞추고, 입양도 보내려면 확실히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게 서로에게 이롭지만…. 개농장에서 온 개들에게 많은 걸 바랄 수는 없었다. 학대의 산물인 것을.
뜬장에서 지내는 개들. 사람에 대한 호의와 반가움을 감추지 않았다.
한때 누군가의 반려견이었으나 옷까지 입은 채 개농장에 버려진 푸들.
하지만 고맙게도, 시간이 흐르며 위탁보호소에 있는 시간이 지나며 슬슬 사람과 친해지는 개들이 생기고 있다. 물론 보호소에 적응하며 다시 사람을 강력히 경계하는 개들도 생겼지만 많은 개들이 사람에게 꼬리를 흔들며 먼저 다가오기도 하고 손길을 갈구하고 있다. 지난 3월 말에 ‘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에서 자원봉사로 중성화 수술을 해 주셨는데, 개들은 수술 직후 몸이 아픈데도 우리에게 몸을 기대거나 최선을 다해 우리를 구석구석 핥으려 노력하기도 했다. 뜬장에 있을 때부터 사람을 좋아해 방방 뛰던 개가 비척비척 걸어와 발치에 쓰러질 때는 거의 울 뻔했다. 우리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동장에 실려 안전한 곳으로의 이동을 준비하는 개들
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에서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다.
너무 예쁜 개들이었다. 눈은 똘망하고, 호기심과 호의로 가득 차 있고, 바깥세상을 몹시 궁금해하는, 하루빨리 가족을 만났으면 하는 그런 개들. 나는 이 애들이 대체 어디서 왔을지 너무나 궁금하다. 누가 키우다 버렸기에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건지, 혹은 어쩌다가 이렇게 사람을 싫어하도록 두려워야 했고 아파야만 했을지. 개들을 보면 뜬장 아래에서 봤던 녹슨 칼과 휘어진 야구 배트가 생각난다. 그래서 몇몇 개들이 사납게 짖거나 웅크린 채 눈치만 봐도 부채감과 죄의식 외의 감정은 고개를 들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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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마리의 새 생명이 찾아왔다
솔직히 말해 이들을 위한 모금은 잘 안 되고 있고, 그래서 각 단체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야근을 자청하며 개들의 치료와 입양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모두가 참여하는 협업의 사례를 만들기 위해 수의료단체나 동물 약품 제조사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개농장에서 임신한 채 구조되어 어렵게 출산했던 어린 강아지들을 위한 입양파티도 진행한다. 65마리를 구조했는데, 새끼들이 19마리나 태어나 총 84마리의 개들을 보호하고 입양 보내게 됐다. 부담은 늘었지만, 이들이 뜬장 위에서 태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한다. 뜬장 아래로 떨어져 대소변에 질식한 새끼의 사체를 우리는 너무 많이 봤다.
편평한 바닥, 깨끗한 위탁보호소에 도착하고 신난 황구
카라 사무실에서 보호하고 있는 ‘꼬마’는 6마리 새끼를 출산했다.
화려한 구조가 끝나면 동물들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밀려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게 동물들이 평생 보호소에서 관리받지 못하며 갇혀 지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오랜 인내와 끈기가 요구되는 치료와 돌봄, 관리와 입양 추진 업무가 주어졌다. 뜬장 위에서부터 사람을 보면 춤을 췄던 바둑이도, 운동장으로 나와 뛰는 걸 망설였던 작은 아이도, 사람의 손길에 얼음처럼 굳어버리는 아이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가족이 되어 하루하루 이름이 불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덧.
혹시 반려견 입양을 고민하거나 그 절차가 궁금하다면 이번 주 입양파티에 참여해 보는 건 어떨까. 생후 n주차 강아지들 19마리와 유순한 개린이들이 여러분을 반갑게 맞아줄 것이다.
글·사진 김나연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