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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내가 낸 돈만큼 건강할 줄 알았다

등록 2019-08-21 11:13수정 2019-09-06 18:15

[애니멀피플] 고양이 순살탱
2회. 교환 당한 고양이는 어디로 가나요?
순구는 첫날부터 많이 아팠다. 알고 보니 허피스와 칼리시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었고, 금방 지워진다던 앞발의 얼룩은 링웜이었다.
순구는 첫날부터 많이 아팠다. 알고 보니 허피스와 칼리시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었고, 금방 지워진다던 앞발의 얼룩은 링웜이었다.
워낙 커피를 좋아해서 언젠가 고양이를 데려오면 라떼나 치노라 부를 생각이었다. 근데 이 아이는 너무 대놓고 서양 고양이 같아서, 역설적으로 토속적인 이름을 주고 싶었다. 구름, 두부, 시루…. 여러 후보 중에 순구라는 이름이 마음에 와 닿았다. 내 방을 구석구석 탐색하던 순구는 그날 밤부터 설사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힘든지 눈도 새빨개졌다. 새벽 내내 걱정스럽게 지켜보다 아침이 되자마자 펫숍에 전화했더니 교환해주겠다고 했다.

‘교환해준다고?’ 그 말을 듣고 처음 생각했다. 동물을 물건처럼 사고팔고, 교환하고 환불하는 게 옳은 일인지. 물건을 샀는데 결함이 있다면 반품이나 환불을 해주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살아 있는 고양이는? 회색 고양이가 아니어서 살 생각도 없었지만, 이제 내 가족이 된 고양이의 생명의 무게가 하루 만에 다르게 느껴졌다.

펫숍 진열장보다 훨씬 넓은 내 방이 좋았는지, 낯가림도 없이 탐색하고 다니던 어린 순구.
펫숍 진열장보다 훨씬 넓은 내 방이 좋았는지, 낯가림도 없이 탐색하고 다니던 어린 순구.
“그럼 이 아이는 누가 데려가나요?”라고 물었더니 치료해서 좋은 곳에 간다고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보낼 수는 없었다. 치료해서 낫게 해주고 싶었다. 펫숍에서 일단 사흘치 약을 받아와서 먹였지만 낫지 않아 집 근처 병원으로 데려갔다.

의사는 “허피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다”며 너무 작고 약해서 오래 살지 못할 거라 했다. 건강한 고양이라면 가볍게 앓고 끝날 수도 있지만 면역력이 약한 새끼 고양이는 2차 감염으로 이어지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살리고 싶어서 멀지만 평판이 좋은 다른 병원을 찾아갔다. 순구는 허피스 바이러스뿐 아니라 복막염이 발병하면 죽는다는 칼리시 바이러스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곧 사라질 거라던 앞발 얼룩은 곰팡이성 피부병의 일종인 링웜이었다. 꾸준히 약을 발라줬지만 링웜은 꼬리까지 번졌고 급기야 면역력이 좋지 않은 내게도 옮고 말았다. 가렵다고 긁으면 다른 부위에도 옮는다고 해서 꾹 참고 약을 바르며 견뎠다.

내 손을 물며 장난치길 좋아했던 순구. 자주 아팠지만 엉뚱한 행동으로 날 웃게 했다.
내 손을 물며 장난치길 좋아했던 순구. 자주 아팠지만 엉뚱한 행동으로 날 웃게 했다.
순구는 코가 납작하고 콧구멍도 유난히 작아서 실내가 건조하거나 감기에 걸리면 힘들어했다. 그런 순구 때문에, 살면서 한 번도 챙겨본 적 없던 실내 습도와 온도까지 신경 쓰기 시작했다. 엄마는 순구를 애지중지 보살피는 내게 “제 몸도 부실한 게, 어디서 더 부실한 걸 데려와서 허리가 휘네”라며 혀를 찼다.

툭하면 아픈 순구가 하루빨리 어른이 되길 빌었다. 덩치 큰 아저씨 고양이가 되어도 지금처럼 아니 그보다 더 사랑해주겠다고 다짐했다. 돌이켜보면 그런 마음이 둘째 살구나 셋째 탱구를 데려올 때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성묘의 듬직함을 알게 되면서 더는 어린 고양이만 찾지 않게 되었으니까.

순구의 뭉툭한 꼬리는 스코티시폴드 특유의 유전병 증상 중 하나라고 했다.
순구의 뭉툭한 꼬리는 스코티시폴드 특유의 유전병 증상 중 하나라고 했다.
순구를 데려오기 전까지는 생명을 돈 주고 사는 행위가 옳은지 고찰해본 적이 없었다. 주변에 널린 게 펫숍이니 거기서 동물을 사는 것이 통상적인 방법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낸 돈만큼 고양이가 건강할 거라는 믿음은 착각이었다. 대부분의 펫숍에서는 더 큰 이익을 남기기 위해 최소한의 관리만 하고, 심한 곳에서는 그조차 하지 않는 걸 나중에 알았다.

몸집이 작고 어려 보여야 잘 팔리니 성장기에 필요한 양보다 사료를 적게 주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순구를 키우며 뒤늦게 안 사실 때문에 둘째와 셋째는 보호소에서 데려왔고 지금은 “사지 말고 입양하자” 말하지만, 누군가 펫숍에서 동물을 사 왔다고 말해도 쉽게 비난할 수 없었다. 그건 예전의 내 모습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그저 내 경험을 이야기해준다. 사람들이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길 바라며.

치료 때문에 여러 동물병원을 다니다 순구의 뭉툭한 꼬리가 스코티시폴드 특유의 유전병 증상 중 하나라는 말을 들었다. 스코티시폴드는 말 그대로 귀가 ‘접힌(fold)’ 기형적인 고양이가 태어나며 시작된 종이다. 기형 유전자를 보유한 스코티시폴드끼리 교배하면 장애가 더 심해지기 때문에 주로 브리티시 숏헤어와 교배한다는 것까지가 내가 아는 지식의 전부였다.

듬직한 아저씨가 된 순구. 작고 어리지 않아도 내겐 누구보다 귀엽고 소중한 첫 고양이다.
듬직한 아저씨가 된 순구. 작고 어리지 않아도 내겐 누구보다 귀엽고 소중한 첫 고양이다.
순구가 있던 펫숍에선 “이 고양이는 브리티시 숏헤어와 교배해서 태어났어요”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어떤 의사 선생님은 순구의 눌린 코가 같은 종끼리 교배했을 때 자주 보이는 증상이라며, 뭉툭한 꼬리도 연골이 없어 자연스럽게 움직이지 못하는 거라고 설명해주셨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만 언젠가 유전병이 발병한다면, 꼬리 근처 다리부터 점차 불편해지다 결국 마비되어 걷지 못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성묘가 되기 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관절약을 먹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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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도 계속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일을 겪고 보니 누군가 순구의 품종을 물어보면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그냥 “스코티시폴드에요”라고 말하고 끝내기엔 뭔가 잘못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무심코 찍어 올린 순구의 귀여운 모습이 자칫하면 “스코티시폴드는 이렇게 귀여운 고양이랍니다”라고 은연중에 홍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생각하니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스코티시폴드의 유전병에 관해 설명하는 글을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렸다. 인간의 이기심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아이들이, 입양 후 아프다는 이유로 버림받는 일이 줄어들길 바랐다.

돈을 받고 고양이를 파는 사람들은 어떤 스코티시폴드에겐 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땐 큰 책임과 수발이 필요하다는 점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니 나라도 계속 말해야 할 것 같았다. 한 사람이라도 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강아지 공장, 고양이 공장에서 어린 동물들을 상품처럼 양산하고 판매하는 수요가 줄지 않을까.

글·사진 김주란, 인스타그램 @soongu_sal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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