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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핫플’ 캣닙밭엔 초록이 넘실넘실

등록 2019-09-28 11:16수정 2019-09-30 09:40

[애니멀피플]
고양이 집사에서 캣닙 농부가 된 청년들
고양이 집사에서 캣닙 농부가 된 두 사람. 왼쪽부터 이성연, 권순영 대표.
고양이 집사에서 캣닙 농부가 된 두 사람. 왼쪽부터 이성연, 권순영 대표.
건네받은 명함에 ‘캣닙 만드는 농부’라고 쓰여 있었다. 그루밍컴퍼니 이성연(30)·권순영(30) 대표는 충남 청양에서 캣닙 농사를 짓는다. 각각 5년 차, 3년 차 농부인 두 사람은 아직도 자신이 농부라는 사실이 때때로 어색하다. 둘은 19살 때부터 배를 탄 항해사였다. 커다란 배에 기름 등을 싣고 유럽이라도 간다고 하면 3개월씩 바다에 떠 있어야 했다. 20대 중반까지 망망대해를 누비다 어떻게 캣닙 농사를 짓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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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양이에게 좋은 걸 주자”는 마음

“배를 타는 것은 외로운 일”이었다는 둘은 육지로 돌아와 각각 귀농과 취업을 택했다. 고향이 충남 청양인 이성연씨는 처음에는 마늘 농사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생전 처음 하는 농사였지만 주변 친척들의 도움으로 고추, 감자 등 영역을 넓혀가던 중이었다. 캣닙을 길러보자는 생각은 먼저 고양이 집사가 된 권순영씨의 제안이었다.

권씨는 “고양이를 기르면서 캣닙을 처음 알게 됐는데, 색이 다 거무튀튀하고 어디서 어떻게 생산된 건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며 사업을 시작한 배경을 설명했다. “우리 애에게 좋은 걸 주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다는 캣닙 농사는 순식간에 1천평 규모까지 확장했다가 지금은 시장 상황에 맞춰 500평 규모로 짓는다.

개박하라고도 불리는 캣닙은 고양이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능이 있다. 실내 생활을 주로 하는 집고양이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효과도 있다. 캣닙을 좋아하는 고양이들은 황홀한 표정으로 뒹굴뒹굴하며 때때로 침을 흘리기도 한다. 캣닙에 있는 '네페탈락톤'이라는 성분 때문인데, 중독성이나 유해성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관련기사 ‘고양이는 왜 캣닙에 취할까’)

캣닙을 좋아하는 고양이들은 이 식물의 가루 앞에서 어쩔 줄 모르며 뒹군다. 게티이미지뱅크
캣닙을 좋아하는 고양이들은 이 식물의 가루 앞에서 어쩔 줄 모르며 뒹군다. 게티이미지뱅크

시중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캣닙은 미국이나 중국에서 수입된다. 국내에 캣닙 농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소규모이거나 자급하기 위해 기르는 수준이다. “농사도 정보가 필요한데,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이성연씨가 답답함을 호소했다. 씨앗을 구해 어렵게 모종을 길러 밭에 심어 기르기 시작하니 그나마 알아보는 이들이 있었다. 동네 어르신들은 두 사람에게 개박하라는 이름처럼, 농촌에서 별 볼 일 없는 작물로 취급됐지만 말려서 차로도 우려먹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런저런 정보를 모아 기르다 보니 얼렁뚱땅 무농약 농법이 되었다. 캣닙을 뿌려주면 핥거나 가루를 집어 먹기도 하는 고양이들 때문에 애초에 제초제나 농약을 쓸 생각이 없기도 했지만, 다행히 캣닙은 벌레가 잘 꼬이는 작물이 아니었다. 캣닙은 씨앗을 발아시킬 때와 모종을 밭에 옮겼을 때 생존율이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한번 군집을 이루면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푸르게 자랐다.

노지에 500평 규모의 캣닙밭이다보니 지역 고양이들의 ‘핫플’이 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었는데, 다행히 캣닙밭을 영역으로 삼은 고양이는 한 마리 밖에 없다고 한다. 농촌의 고양이들도 먹을 것을 찾아 사람이 많이 모인 읍내로 나가 살기 때문에 지역 들고양이 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고.

그루밍컴퍼니의 캣닙은 봄, 여름에 모종을 심고 여름과 가을에 수확한다. 수확한 당일 세척하고 대형 식품 건조기에서 말린 다음 분쇄까지 마쳐야 제품이 완성된다. 캣닙은 사람이 먹는 식물이 아니므로 관리와 유통에 있어 식품위생법 등의 제재를 받지 않지만, 모든 과정을 사람이 먹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한다.

이성연씨가 캣닙 모종에 물을 주고 있다. 제초제를 쓰는 대신 잡초를 수없이 뽑는 작업을 반복하며 캣닙을 기른다. 그루밍컴퍼니 제공
이성연씨가 캣닙 모종에 물을 주고 있다. 제초제를 쓰는 대신 잡초를 수없이 뽑는 작업을 반복하며 캣닙을 기른다. 그루밍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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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닙과 함께 스며든 고양이

캣닙 농사를 지은 덕분인지 한 번도 고양이를 길러본 적 없는 이성연씨에게도 운명처럼 고양이가 깃들었다. 첫 수확도 하지 않았던 사업 초창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 아래에서 발견된 고양이 ‘공이’와 밭 근처 창고에서 다른 고양이들에게 쫓겨 애처롭게 울고 있던 ‘반이’는 이제, 생산된 캣닙을 가장 먼저 확인하는 사업 동료이자 가족이 됐다.

캣닙 농사 3년 차, 여전히 수익은 두 사람이 충분히 월급을 가져갈 만큼도 나지 않아서 각자 고추와 감자를 기르거나 본업을 유지해야만 하지만 이 일을 놓을 생각은 없다. 코끝에 캣닙 가루를 묻힌 고양이들 사진이 후기로 올라오면 다른 일에서 얻지 못하는, 간질거리는 마음을 얻는다. 벤치마킹하는 업체가 생기는 등 작은 시장을 개척하는 즐거움도 있다.

좀 더 사업을 확장하면 농가 소득에 기여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주변 어르신들이 기르기 쉽냐고, 잘 팔리냐고 물으시곤 해요. 기르기 쉬운 작물이니까 나중에는 지역 농가들과 농사를 나눠 짓고 싶어요.” 언젠가 고양이들이 농촌 풍경의 한쪽을 바꿀 수 있을까.

청양/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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