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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개똥 냄새를 맡다 눈물이 났습니다

등록 2020-01-16 10:56수정 2020-01-16 14:15

[애니멀피플] 애린원 포천 쉼터에서의 하루
‘유기견들의 지옥’ 애린원 철거 뒤 100일…봉사자들 발길 끊겨
추위에 내몰린 1600마리의 진짜 쉼터를 찾아주는 일, 불가능할까
1월9일 경기도 포천시 비글구조네트워크 포천 쉼터 견사의 개들. 사진 이정연 기자
1월9일 경기도 포천시 비글구조네트워크 포천 쉼터 견사의 개들. 사진 이정연 기자

‘경기도 포천: 최고 기온 3℃/최저 기온 -4℃.’

지난 9일 아침 7시,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들어 오늘 행선지의 날씨를 확인했다. 겨울날 아침 온수매트를 깔아놓은 침대 위를 벗어나기는 어렵지만, 이날만은 재빨리 일어났다. 전날 밤잠을 설쳤지만 미적댈 핑계는 되지 못했다. 영하 기온에 산 중턱 어딘가에 차려진 쉼터에서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며 잠이 들었을 개들을 떠올리니 더욱 그랬다.

이날 나는 ‘기자’로 그곳을 찾은 게 아니었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 한 명으로 개 보호소에 자원봉사를 하러 갔다. 그리고 그곳을 다녀온 뒤 기사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명이라도, 단 한 명이라도 그곳을 더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봉사활동을 하느라 보호소 실상에 관한 탄탄한 취재는 하지 못했다. 그러나 단단한 마음을 얻고 왔다. 꾸준히 이곳을 찾겠다는 마음을 말이다.

경기도 포천시 어느 산 중턱에 1600마리 개들의 보금자리가 있다. 옛 애린원 자리와 그 인근에 마련한 임시 쉼터다. 비글구조네트워크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생명존중실천협의회(생존사)는 지난해 9월 말 결국 옛 애린원을 철거했다. 보호소였지만, 보호의 기능은 완전히 상실한 ‘개들의 지옥’으로 여겨지던 곳이었다.

비글구조네트워크 포천 쉼터에는 옛 애린원에서 구조한 1600여 마리 개들이 있다.
비글구조네트워크 포천 쉼터에는 옛 애린원에서 구조한 1600여 마리 개들이 있다.

심각하게 오염된 뜬장(배설물이 쌓이지 않게 바닥을 띄워 설치한 견사)에서 제대로 된 사료와 물조차 공급받지 못하며 지내던 옛 애린원의 개들은 생존사와 후원자들이 마련한 말끔한 ‘비글구조네트워크 포천 쉼터’로 옮겨 생활하게 됐다. 그러나 여기서 그칠 수 없었다. 개들의 안전한 생존을 이어가는 활동을 지속해야 했다. 옛 애린원 철거 뒤 100여일이 흘렀다. 여전히 개들은 임시 쉼터에서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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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신청자 0명

포천 임시 쉼터 봉사활동은 미안함을 덜어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2020년을 맞아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다 동물권과 관련한 행동을 실천할 것을 스스로 약속했다. 에스엔에스(SNS)에서 안타까운 동물의 사연을 접하고 눈물을 흘리곤 한다. 2016년 9월부터 나의 고양이 하모와 함께 살면서 더욱 심해진 증상이다.

동물을 유기하고, 학대하는 인간을 혐오하기는 참 쉽다. 몇 마디 말이면 된다. 그런데 유기되고 학대당한 동물을 아끼기는 참 어려웠다. 가끔 긴급한 모금에 동참하면서 스스로 위안했지만 부인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을 미뤄두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난 1월2일 단숨에 마음을 먹고 ‘비글구조네트워크 애린원’ 온라인 카페로 가 봉사활동을 신청했다. 1월 봉사활동 신청자 현황을 보는 순간, 숨이 잠깐 막혔다. 옛 애린원의 실상에 관한 기사가 여럿 나왔고, 관심이 적지 않다고 여겼는데 1월 임시 쉼터 봉사자는 아주 드문드문 있었다. 둘째 주 이후로는 봉사활동 신청자가 ‘0’명이었다.

더욱 지체할 수 없었다. 상주하는 임시 쉼터 관계자가 있다지만 1600여 마리가 개를 돌보기 위해선 봉사활동은 꼭 필요하다.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렇게 5명이 1월9일 목요일 포천에서 만나기로 했다.

눈을 맞춘 봉사자에게 손을 달라고 발을 내밀던 강아지. 사진 이정연 기자
눈을 맞춘 봉사자에게 손을 달라고 발을 내밀던 강아지. 사진 이정연 기자

9일 오전 11시 방진복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작업용 장갑을 끼고 옛 애린원 임시 쉼터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준비는 마쳤는데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랐다. 관계자에게 문의해야 하나 우왕좌왕하는데, 다행히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해봤던 친구가 여러 안내를 도맡아 해주었다.

우리가 할 일은 견사 청소와 사료와 물 주기였다. 빗자루와 쓰레받기, 쓰레기봉투와 생수통 그리고 몇몇 개들에게라도 먹이려 삶아간 달걀까지 챙겨 견사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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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의 ‘오늘’만 생각하기로

“물이 얼었네. 밤에 얼마나 추운 거니….”

철제 견사를 비닐로 둘러쳤으나, 산속의 추위는 채 막지 못했다. 첫 번째 견사에 들어가자마자 얼음이 낀 물통에 눈길이 갔다. 그 순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옛 애린원 시절보다는 훨씬 포근해졌다지만 여전히 추위와 싸워야 하는 개들의 삶을 살피다 보면 눈물이 자꾸 후두두 떨어지려 했다.

‘나는 여기 울러 온 게 아니다. 아이들 잠자리 깨끗하고 포근하게 만들어주는 게 오늘 내가 할 일이다.’ 수없이 이 말을 되뇌었다.

견사 바닥에 깔린 톱밥 위 여기저기 개들의 대소변이 있었다. 마스크를 썼지만 그 냄새를 막지 못했다. 빗자루로 대소변 묻은 톱밥을 쓸어 쓰레받기로 긁어모아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자처한 일이었다.

견사에는 체구에 따라 적게는 3마리, 많게는 예닐곱 마리의 개들이 있었다. 사람의 손길을 여전히 무서워하는 개들은 봉사자들이 들어가자마자 꼬리를 말아 내리고 몸을 떨었다. 사람의 손길이 그리운 개들은 봉사자들이 들어가자마자 왜 이제 왔냐는 듯, 반갑게 손을 핥았다. 그 개들의 눈을 보기 어려웠다. 겨우 한 달에 한 번 정도 올 뿐인 나에게 너무 많은 사랑을 주지 않길 바랐다.

사람에게 큰 관심을 보이던 강아지들. 비글구조네트워크 포천 쉼터의 개들은 임시보호와 입양 문의도 받고 있다. 사진 이정연 기자
사람에게 큰 관심을 보이던 강아지들. 비글구조네트워크 포천 쉼터의 개들은 임시보호와 입양 문의도 받고 있다. 사진 이정연 기자

미안한 마음을 덜려고 했는데, 그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그때 간식으로 가져온 계란을 나눠주던 친구가 말했다. “이 아이들의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만 생각하기로 하자.” 그 말을 듣고서야 밀려오는 무거운 마음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100여 마리 개들의 보금자리 청소를 이어갔다.

겨우 100여 마리가 머무르는 견사를 치웠다. 전부 1600여 마리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수는 조금씩 늘고 있다. 강아지들이 태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견사 청소를 마치고 잠시 짬을 내 병동으로 갔다. 아픈 개들과 갓 태어난 새끼들과 어미 개들이 머무르는 곳이다. 병동에는 난로가 있어 훨씬 포근했다.

“어떡해! 이 아가들 좀 봐!”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는 시고르자브종(시골 잡종을 변형한 말) 강아지들이 여기저기 “깽깽”대고 있었다. 새끼를 보호하느라 한껏 예민해진 어미 개들은 낯선 봉사자들을 향해 짖었지만, 내심 좀 반가운지 꼬리를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흔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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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에게도 기회가 왔으면

나도 한마리의 강아지에게 마음을 완전히 빼앗겼다. 조용히 낑낑대던 하얀색 강아지는 내가 눈을 맞추자, 손을 달라고 발을 내밀었다. 손을 내주니 신이 나서 손가락을 핥고, 깨물었다. “이 아이들만이라도 어서 입양을 가야 할 텐데….” 친구들은 웃으면서도 한숨 쉬었다. 쉼터의 개체 수를 조금이라도 줄여나가야, 남은 아이들이 보다 나은 삶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1인 가구라 개를 입양하거나 임시보호할 여건이 되지 않는 사실이 한탄스러웠다.

사람과 함께 있는 걸 좋아하는 레니. 사진 이정연 기자
사람과 함께 있는 걸 좋아하는 레니. 사진 이정연 기자

병동에서 나와 한 친구가 마음을 빼앗겼다는 개에게로 갔다. ‘레니’다. 레니는 아주 큰 몸집을 가진 개다. 흔히들 ‘대형견’이라고 이르는 개다. 레니는 몸집이 커 견사에 혼자 머무른다. 순하디 순한 레니의 나이는 알 수 없다. 그런데 많이 지쳐 보인다. 몸집은 크지만 살집은 없다. 사랑 받아 포동포동 살집이 오른 레니를 상상했다. 그런 기회를 얻기란 분명히 힘들 테지만,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란 없다.

5시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왔다. 온몸을 깨끗하게 씻어야 했다. 신발에 묻은 대소변까지 말끔하게 닦아 말렸다. 곤한 몸을 침대에 뉘였다. 내게서 맡은 적 없는 이상한 냄새가 풍겼는지 평소 곁에 바짝 다가와 놀아줄 것을 재촉하던 하모는 멀찍이 앉았다.

그러다 스탠드 조명의 전원까지 끄자 고양이 하모가 가슴께로 올라와 앉았다. 하모는 내 손가락 끝에서 나는 냄새를 자꾸 맡았다. 서너번은 넘게 박박 씻었는데 어림없었나 보다. 손가락 냄새를 맡았다. 개똥 냄새가 났다. 그제야 하루 동안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견사 속에서 몸을 꽁꽁 말아 서로 기대어 추위를 이겨내고 있을 개들이 떠올랐다. “하모야, 하모야 쉼터 댕댕이들(개를 친근하게 이르는 말)은 어떡하지?” 영문을 모르는 하모는 짧게 “냥! 냥!”하고 소리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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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쉼터 아닌 진짜 쉼터로

봉사 후기를 쓰고 있는 14일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1600여 마리 개들이 옛 애린원 자리의 ‘임시 쉼터’에서 ‘진짜 쉼터’로 옮겨가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비글구조네트워크는 14일 “포천 임시 쉼터를 충북 보은군에 마련한 부지로 옮긴다”고 발표했다. 이곳은 보호소로 운영되던 곳으로, 개들이 모두 실내 견사에 머무를 수 있다고 비글구조네트워크는 밝혔다.

그러나 포천 임시 쉼터에서 보은 쉼터로 일시에 이사하는 건 아니다.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포천 쉼터의 봉사자는 절실하다. 당장 2월 봉사활동을 신청하련다. 보은 쉼터로 봉사활동 가는 날까지 말이다.

*봉사활동 문의 및 신청 온라인 카페 ▶▶비글구조네트워크(애린원 구조)

*비글구조네트워크 포천 쉼터(옛 애린원) 입양 홍보 인스타그램 계정 ▶▶@aerin_adopt

포천/글·사진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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