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애린원 포천 쉼터에서의 하루
‘유기견들의 지옥’ 애린원 철거 뒤 100일…봉사자들 발길 끊겨
추위에 내몰린 1600마리의 진짜 쉼터를 찾아주는 일, 불가능할까
‘유기견들의 지옥’ 애린원 철거 뒤 100일…봉사자들 발길 끊겨
추위에 내몰린 1600마리의 진짜 쉼터를 찾아주는 일, 불가능할까
1월9일 경기도 포천시 비글구조네트워크 포천 쉼터 견사의 개들. 사진 이정연 기자
비글구조네트워크 포천 쉼터에는 옛 애린원에서 구조한 1600여 마리 개들이 있다.
봉사 신청자 0명 포천 임시 쉼터 봉사활동은 미안함을 덜어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2020년을 맞아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다 동물권과 관련한 행동을 실천할 것을 스스로 약속했다. 에스엔에스(SNS)에서 안타까운 동물의 사연을 접하고 눈물을 흘리곤 한다. 2016년 9월부터 나의 고양이 하모와 함께 살면서 더욱 심해진 증상이다. 동물을 유기하고, 학대하는 인간을 혐오하기는 참 쉽다. 몇 마디 말이면 된다. 그런데 유기되고 학대당한 동물을 아끼기는 참 어려웠다. 가끔 긴급한 모금에 동참하면서 스스로 위안했지만 부인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을 미뤄두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난 1월2일 단숨에 마음을 먹고 ‘비글구조네트워크 애린원’ 온라인 카페로 가 봉사활동을 신청했다. 1월 봉사활동 신청자 현황을 보는 순간, 숨이 잠깐 막혔다. 옛 애린원의 실상에 관한 기사가 여럿 나왔고, 관심이 적지 않다고 여겼는데 1월 임시 쉼터 봉사자는 아주 드문드문 있었다. 둘째 주 이후로는 봉사활동 신청자가 ‘0’명이었다. 더욱 지체할 수 없었다. 상주하는 임시 쉼터 관계자가 있다지만 1600여 마리가 개를 돌보기 위해선 봉사활동은 꼭 필요하다.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렇게 5명이 1월9일 목요일 포천에서 만나기로 했다.
눈을 맞춘 봉사자에게 손을 달라고 발을 내밀던 강아지. 사진 이정연 기자
개들의 ‘오늘’만 생각하기로 “물이 얼었네. 밤에 얼마나 추운 거니….” 철제 견사를 비닐로 둘러쳤으나, 산속의 추위는 채 막지 못했다. 첫 번째 견사에 들어가자마자 얼음이 낀 물통에 눈길이 갔다. 그 순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옛 애린원 시절보다는 훨씬 포근해졌다지만 여전히 추위와 싸워야 하는 개들의 삶을 살피다 보면 눈물이 자꾸 후두두 떨어지려 했다. ‘나는 여기 울러 온 게 아니다. 아이들 잠자리 깨끗하고 포근하게 만들어주는 게 오늘 내가 할 일이다.’ 수없이 이 말을 되뇌었다. 견사 바닥에 깔린 톱밥 위 여기저기 개들의 대소변이 있었다. 마스크를 썼지만 그 냄새를 막지 못했다. 빗자루로 대소변 묻은 톱밥을 쓸어 쓰레받기로 긁어모아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자처한 일이었다. 견사에는 체구에 따라 적게는 3마리, 많게는 예닐곱 마리의 개들이 있었다. 사람의 손길을 여전히 무서워하는 개들은 봉사자들이 들어가자마자 꼬리를 말아 내리고 몸을 떨었다. 사람의 손길이 그리운 개들은 봉사자들이 들어가자마자 왜 이제 왔냐는 듯, 반갑게 손을 핥았다. 그 개들의 눈을 보기 어려웠다. 겨우 한 달에 한 번 정도 올 뿐인 나에게 너무 많은 사랑을 주지 않길 바랐다.
사람에게 큰 관심을 보이던 강아지들. 비글구조네트워크 포천 쉼터의 개들은 임시보호와 입양 문의도 받고 있다. 사진 이정연 기자
‘레니’에게도 기회가 왔으면 나도 한마리의 강아지에게 마음을 완전히 빼앗겼다. 조용히 낑낑대던 하얀색 강아지는 내가 눈을 맞추자, 손을 달라고 발을 내밀었다. 손을 내주니 신이 나서 손가락을 핥고, 깨물었다. “이 아이들만이라도 어서 입양을 가야 할 텐데….” 친구들은 웃으면서도 한숨 쉬었다. 쉼터의 개체 수를 조금이라도 줄여나가야, 남은 아이들이 보다 나은 삶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1인 가구라 개를 입양하거나 임시보호할 여건이 되지 않는 사실이 한탄스러웠다.
사람과 함께 있는 걸 좋아하는 레니. 사진 이정연 기자
임시 쉼터 아닌 진짜 쉼터로 봉사 후기를 쓰고 있는 14일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1600여 마리 개들이 옛 애린원 자리의 ‘임시 쉼터’에서 ‘진짜 쉼터’로 옮겨가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비글구조네트워크는 14일 “포천 임시 쉼터를 충북 보은군에 마련한 부지로 옮긴다”고 발표했다. 이곳은 보호소로 운영되던 곳으로, 개들이 모두 실내 견사에 머무를 수 있다고 비글구조네트워크는 밝혔다. 그러나 포천 임시 쉼터에서 보은 쉼터로 일시에 이사하는 건 아니다.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포천 쉼터의 봉사자는 절실하다. 당장 2월 봉사활동을 신청하련다. 보은 쉼터로 봉사활동 가는 날까지 말이다. *봉사활동 문의 및 신청 온라인 카페 ▶▶비글구조네트워크(애린원 구조) *비글구조네트워크 포천 쉼터(옛 애린원) 입양 홍보 인스타그램 계정 ▶▶@aerin_adopt 포천/글·사진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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