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도살장 구조견 설악이와 보호자 이예민씨
진도믹스견 ‘설악’이는 지난해 천안시 한 도살장에서 구조됐다. 지난주 ‘개도살 식용금지’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설악이와 반려인 이예민씨를 29일 경기 하남시 반려견 동반카페에서 만났다.
죽은 줄 알았던 개…두 달 만에 살아나다 설악이는 큰 개였다. 몸무게가 27㎏ 나 나간다고 했다. 하는 짓은 영락없는 2살짜리 강아지였다. 테이블 밑까지 쫓아와 신발 냄새를 탐하고, 다른 개와 카페를 찾은 낯선 반려인에게 다가가 간식을 얻어먹었다. 조금 소심한 것 같으면서도 덩치가 맞는 골든 리트리버나 성격 활발한 보더콜리와 금방 친구를 먹고 카페 안을 누비고 다녔다. 설악이가 조금 달라 보이는 점은 왼쪽 귀가 반쯤 잘려있다는 것. 그리고 오른발 발가락이 하나 없다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왼쪽 앞다리는 아직도 수술 상처 때문에 털이 듬성듬성했다.
2019년 8월 구조 당시 설악이 모습(왼쪽)과 현재 모습.
“더이상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서” 반려 결심 설악이가 두 달 간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임시보호자로 만난 것이 현재 반려인 이예민씨다. 예민씨도 처음에는 임시보호만 할 생각이었다. 대형견의 국내 입양이 어려운 터라, 설악이도 3주간의 임시보호를 마치면 해외 입양이 추진될 예정이었다. 예민씨와 가족의 마음이 바뀐 것은 임시보호 기간 3주가 채 지나기도 전이었다. “집에 와서 처음 이틀간은 화장실 구석에 처박혀서 나오지 않았어요. 세면대 밑에서 물만 먹고 숨고, 밥만 먹고 숨고.” 사흘째 되던 날 예민씨는 억지로 개를 안아서 침대 빈 곳에 뉘였다. 가만히 앉아있던 설악이가 침대에 내려와 화장실에 갔다가, 침대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이번엔 밥이나 물을 마시고도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그 뒤 일주일간은 침대에서만 생활했다. 어느 순간 혀를 빼물고 대자로 누워자는 설악이를 발견하고 예민씨는 평생 반려를 결심하게 됐다. “더 이상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 그 생각이 컸어요. 나도 가족이 되어줄 수 있는데, 시간 낭비하지 말자.”
다섯 번의 다리 수술을 견뎌낸 설악이는 1년여 만에 마음껏 뛰놀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회복됐다. 이예민씨 제공
칭찬 많이 받은 행진날…“그렇게 신난 모습 처음” 반려인 이예민씨는 설악이가 ‘낙천적인 성격’이라고 했다. “겁이 많지만 성격 자체가 좋아요. 말썽부려서 혼나도 5초 멈칫.” 설악산처럼 크고 튼튼하라고 이름 붙인 덕일까 난생처음 참여해본 기자회견에서도 설악이는 ‘스타 기질’을 발휘했다. 낯선 장소와 사람들에 처음엔 긴장했지만, 청와대로 행진을 시작하자 누구보다 먼저 꼬리를 높이 세우고 앞장섰다. “예뻐해 주고 칭찬해주니까 신이 났었나 봐요. 설악이가 너무 빨라서 뒤에선 참가자들이 못 쫓아올 정도였어요.” 물론 철저한 연습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예민씨는 설악이의 스트레스를 고려해 기자회견에 앞서 이틀에 한 번씩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연습 산책을 했다. 이렇게까지 해서 기자회견에 참여한 이유가 뭘까.
22일 낮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동물단체들이 ‘개도살 식용금지’ 집회를 열고 청와대에 공개서한을 전달했다. 동물해방물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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