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사연 많은 귀여운 환자들을 돌보고 있습니다’는 수의사 김야옹씨가 자신이 돌봐온 동물친구들의 사연을 따뜻한 시선으로 되새긴 에세이다. 뜻밖 제공
수의사가 아니라 캣대디 같다. 동네 배수로에 갇힌 새끼 고양이를 구조하고, 도로에 뛰어든 치와와를 구하려다 어깨를 다치고, 동물 환자들의 사연을 듣다가도 남몰래 눈물을 찔끔 흘린다. 죽음이 코앞인, 버려지고 아픈 동물들을 치료하겠다고 나섰다가 아내인 ‘김 부장’에게 여러 번 이혼 통보를 받는다.
새 책 <사연 많은 귀여운 환자들을 돌보고 있습니다>는 서울 시내 작은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 김야옹(필명)이 자신이 돌봤던 동물들의 사연을 따뜻한 시선으로 되새긴 책이다. 수의사라고 하면 어쩐지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 얼굴이 떠오르지만, 책에서 그려지는 김야옹 수의사의 모습은 어딘지 좌충우돌 엉뚱발랄이다.
그의 환자들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사연으로 병원을 찾는다. 그 때문일까. ‘수의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이 언제였느냐’ 한 수의사 준비생의 질문에 “고양이의 항문에 손가락을 넣었을 때”라는 답을 내놓는다.
사연은 이랬다. 카페 마당 고양이로 살던 ‘미루’가 어느날 골반 뼈가 으스러지는 사고를 당하고, 변을 볼 수 없는 상태로 병원에 찾아왔다. 골절된 뼈가 안으로 밀려들어가 변이 지나갈 공간이 없는 상태였고, 섣부른 치료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는 상황, 김야옹 선생은 마지막으로 촉진이라도 해보기로 했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항문에 손을 넣었을 때 장을 누르던 뼈에 미세한 틈이 생겼고 미루의 항문에서는 드디어 무른 변이 흘러나왔다.
고양이에게 치명적인 ‘범백’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봉순이. 봉순이는 이후 새 가정을 만나 ‘오드리’라는 멋진 새 이름을 얻었다. 뜻밖 제공
보호자의 무관심 속에 두 다리가 썩은 채 방치되었던 에리얼. 에리얼은 두 다리를 절단하는 큰 수술을 받았지만 다시 두 다리로 걷는 기적을 보여줬다. 뜻밖 제공
“그러니까 여러분도 꼭 수의사가 되셔서, 눈칫밥을 먹고 살다 길로 쫓겨날 상황에 처한 아기 고양이가 죽어가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수술은 못 해주더라도…해 줄 게 없더라도…데려다가 진짜 해줄 게 없는지 확인하면서 손이라도 한번 잡아주세요. 그리고 항문에 손가락을 꼭 넣어주세요.” 똥을 못 싸서 죽을 뻔했던 미루는 조금씩 정상적으로 변을 보기 시작했고, 보호자를 만나 포동포동 살이 쪘다는 후문이다.
책은 김야옹 선생이 돌봐온 사연 많은 환자들의 ‘기적’을 차근히 되짚는다. 새 주인에게 입양되자마자 거리에 버려져 안락사 위기에 처했던 쫑이, 심각한 안검결손 질환으로 태어난 봄이, 범백에 걸려 거리를 떠돌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부잣집 막내딸이 된 봉순이, 무관심 속에 다리가 썩어간 채 방치되었던 에리얼까지. 삶보다 죽음이 가까워 보였던 동물들이 사람들의 관심으로 행복과 안정을 찾는 과정은 그 자체로 ‘낭만닥터 김사부’ 못지않은 메디컬 드라마가 된다.
30대 늦은 나이에 수의사가 된 김야옹 수의사는 “수의사가 된 지금도 나는 간절히 수의사가 되고 싶다”고 적었다. “할 일도 많고 볼 책도 많아서 언제나 허덕이는 일상이지만, 소중한 것들을 간직하고 부족한 것들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그런 수의사가 되기를 여전히 바란다”는 의미다. 작고 평범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그의 마음은 책의 마지막 문장과 같다. “내일은 또 어떤 고양이가 우리를 찾아올까요?”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