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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연’ 깊은 관음사…스님이 고양이 50마리 거둔 사연

등록 2020-11-11 12:59수정 2021-05-03 15:09

[애니멀피플]
7년전 유기된 흰 고양이 시작으로 동물 늘어나
8일 버동수 진료 봉사…‘동물보호’ 현수막 게시
7년 전 버려진 고양이를 거두면서 시작된 스님의 동물보호로 관음사는 50여 마리 길고양이가 찾는 급식소가 됐다. 프로젝트 제공
7년 전 버려진 고양이를 거두면서 시작된 스님의 동물보호로 관음사는 50여 마리 길고양이가 찾는 급식소가 됐다. 프로젝트 제공

지난 일요일 만추의 단풍이 감싼 산사 마당에 차량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관음사는 작은 마을의 끝자락에 있었다. 마을의 마지막 집인 절 마당에는 ‘치즈냥이’ 한 마리가 볕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고양이 50마리가 지내는 절이라는 소식을 듣고 왔지만, 어쩐 일인지 경내는 한산했다. 절을 찾은 20여 명 손님들의 정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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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고양이 수십 마리가 생기게 된 사연

11월8일 오전 10시 경기도 관음사에 동물의료 봉사단체인 ‘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이하 버동수) 수의사들이 도착했다. 이날 관음사 동물들은 단체 진료를 받기로 했다. 평소 스님과 어린 고양이들이 함께 지내던 요사채에 간이 진료실이 꾸려졌다. 테이블이 수술대로 변신했고, 알록달록한 단청 기둥 사이사이에 링거가 달렸다. 진료를 위해 수술대에 오른 고양이들은 두어 마리를 제외하곤 모두 흰 고양이었다. 유난히 흰 고양이가 많은 사연은 무엇일까.

시작은 7년 전이었다. 2013년 관음사 주변에 긴 털이 매력적인 터키시앙고라 한 마리가 나타났다. 평소 동물을 아끼던 혜영 스님은 갈 곳 없이 떠도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돌보기 시작했다. 흰 고양이는 긴 털도 관리가 되어 있었고, 사람도 잘 따랐다. 유기묘가 분명했다.

스님은 고양이에게 ‘줄리’라는 이름을 붙여줬고, 동네 고양이와 어울리던 줄리에게 새끼 ‘마리’가 생겼다. 밥 먹으로 오는 동네 고양이, 산에서 내려오는 길고양이, 새로 태어난 새끼들로 식구는 순식간에 불어났다. 성묘들은 중성화 수술을 시켰지만 두 달에 한번씩 임신이 가능한 고양이의 생태 탓에 흰 고양이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7년 전 유기된 터키시 앙고라 탓인지 관음사에는 흰 고양이들이 유독 많았다. 관음사 프로젝트 제공
7년 전 유기된 터키시 앙고라 탓인지 관음사에는 흰 고양이들이 유독 많았다. 관음사 프로젝트 제공

‘묘연’이 깊은 탓인지 스님 곁으로 고양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시내 마트에 들렀던 날, 박스 안에 버려진 고양이 2마리가 눈에 띄었다. 스님은 “비 오는 날 처량하게 버려진 생명들을 못 본 척 할 수 없어” 고양이들을 절로 데리고 왔다. 근처 시내 아파트에 살던 한 신도는 평소 돌봐주던 길고양이를 부탁했다. “장바구니에 고양이 세 마리를 담아 데리고 왔더라고요. 동네 사람들이 고양이를 못살게 굴어 그냥 둘 수 없다고….”

스님이 고양이를 돌본다는 소문이 돌자, 절 앞에 동물을 유기하는 사람까지 생겼다. 작년 설에는 박스에 고양이 4마리가 버려져 있었다. 스님은 이번에도 잘 돌봐달라는 메모까지 붙여서 두고 간 생명들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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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 없으면 인간도 없다”

스님은 버려진 동물들을 거둬 여건이 닿는 대로 중성화를 시켰다. 자비와 시 예산으로 20여 마리 고양이를 중성화했지만, 개체 수가 불어나는 건 한 순간이었다. 새로 태어난 새끼들, 막 출산을 마친 어미묘, 어려서 아직 중성화 수술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이 금세 자라나 다시 가족을 불렸기 때문이다.

이웃 주민과의 마찰도 시작됐다. 고양이 뿐 아니라 개에게도 적대적이었던 한 동네 주민이 동물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절 마당, 주변에서 자유롭게 지내던 고양이들이 한 두 마리씩 사라졌다. 혜영 스님은 “한 때 50여 마리가 밥을 먹으러 오곤 했는데 최근 20마리 정도가 눈에 띄지 않게 됐다”고 전했다.

혜영스님은 “동물이 없으면 인간도 없다”며 “동물 보살피는 일을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이해하려고 노력이라도 해보라”고 말했다.
혜영스님은 “동물이 없으면 인간도 없다”며 “동물 보살피는 일을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이해하려고 노력이라도 해보라”고 말했다.

스님은 고양이 개체수가 늘자 이웃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절 한켠에 직접 야외묘사를 지어 고양이들을 보호했다. 관음사 프로젝트 제공
스님은 고양이 개체수가 늘자 이웃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절 한켠에 직접 야외묘사를 지어 고양이들을 보호했다. 관음사 프로젝트 제공

스님은 고양이 보호를 위해 지난 봄 신도 2명과 절 한켠에 직접 묘사를 지어, 밖에서 지내던 아이들을 실내로 들였다. 출산을 했거나 어린 개체들은 직접 요사채에서 돌봤다. 사찰 안에 일종의 보호소가 차려진 것이다. 절 살림 꾸리며 동물들을 돌보기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스님은 “동물이 없으면 인간도 없다. 인간으로 태어나 더불어 사는 것이 동물에 대한 의무이고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관음사의 어려운 사정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0월 초순쯤이다. 평소 근처를 산행하던 개인 동물 활동가가 관음사 고양이들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스님 캣맘’을 돕기 위해 캣맘들이 뭉쳤기 때문이다. 수원 재개발지역 길고양이 구조활동을 폈던 ‘콩이바바’, 길고양이 임보·입양 활동을 해 온 ‘모찌이모’, 길에서 구조한 고양이 16마리 고양이와의 일상을 유튜브 채널로 소개해온 ‘달밤캣’이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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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사 아이들’ 지키기…진료 봉사 첫 단추

9월 말 처음 관음사를 찾은 모찌이모는 “스님이 밥도 챙겨주시고 매일 청소도 하셨지만, 허피스를 앓고 있는 등 건강 관리가 좋지 못한 아이들도 꽤 눈에 띄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아무리 중성화에 힘쓰더라도 외부 도움의 손길이 있지 않은 한 임신과 출산이 계속되며 개체가 불어날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수년간 길고양이를 돌보며 가정 입양을 보내온 이들은 각각 역할을 분담해 관음사 고양이 돕기에 나섰다. 고양이 치료와 임보, 입양은 모찌 이모(@mozzi0425)가 맡고 협력단체와 지자체 문의, 홍보 등은 콩이바바(@kong2baba)가, 고양이 치료와 입양에 쓰일 비용 마련을 위한 후원물품 판매는 달밤캣(@kim_yu315)이 전담했다. ‘관음사 마을 유기동물을 위한 프로젝트’(이하 관음사 프로젝트)가 꾸려졌다.

스님이 동물을 보살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기도 늘어났다. 관음사 프로젝트 제공
스님이 동물을 보살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기도 늘어났다. 관음사 프로젝트 제공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한달, 고양이 13마리는 새 반려인을 찾았거나 임보 가정에서 보호 중이다. 현재 관음사 절 주변, 야외묘사와 견사에서 지내고 있는 동물은 고양이 30여 마리와 개 9마리다. 활동가들은 적절한 고양이 보호와 추후 입양 등을 위해 치료와 진료가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콩이바바 활동가는 “평소 유기동물 진료에 도움을 주던 동물병원 원장님이 ‘버동수’에 관음사 프로젝트 봉사를 제안해주셨다. 코로나 시국이지만 다행히 봉사가 결정돼 멀리까지 와주셨다”고 말했다.

이날 진료봉사에 앞서 활동가들은 전날부터 절에서 1박2일 템플스테이를 하며 고양이들을 포획했다. 전날 새벽까지 이어진 포획 작전으로 고양이 12마리가 진료대기 명단에 오를 수 있었다.

8일 관음사를 찾은 ‘버동수’ 수의사들이 동물 진료에 앞서 간이 진료실을 준비하고 있다. 버동수 제공
8일 관음사를 찾은 ‘버동수’ 수의사들이 동물 진료에 앞서 간이 진료실을 준비하고 있다. 버동수 제공

8일 오전 10시에 시작된 버동수 봉사는 오후 2시가 되어서야 마무리됐다. 버동수는 “동물들의 상태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었다. 다만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많았고, 중성화가 안되어 있는 개체들은 수술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수의사 20여명이 참가한 이날 버동수의 의료봉사로 개·고양이 14마리가 중성화 수술을 받았고, 18마리가 호흡기 질환 및 귀 진드기 치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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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대는 범죄” 현수막으로 알려

대체로 순조로운 이날 행사에 어려움이 하나 있었다. 중성화를 하기로 했던 개들의 경계가 심해 9마리 중 3마리만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개들이 낯선 사람을 심하게 경계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혜영 스님은 “개들이 짖는다고 이웃 주민에게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고양이가 죽었으니 가져가란 연락을 받은 적도 있다. 말 못하는 동물이 그렇게 죽은 것도 마음이 아프고, 내가 잘 돌보지 못한 것 같아 자책이 든다”고 했다.

활동가들은 앞으로도 길고양이 인식개선과 동물학대 재발방지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활동가들은 앞으로도 길고양이 인식개선과 동물학대 재발방지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활동가들은 길고양이 인식 개선과 함께 동물학대 재발방지 활동을 적극 펼칠 예정이다. 이날 의료봉사가 끝난 뒤 활동가들은 절 주변과 동네 곳곳에 ‘동물학대 방지’ 현수막을 내걸었다. 경기도청 동물보호과와 해당 지자체에 관음사 사정을 알리고, 주민교육 및 길고양이 급식소 설치 등을 요청해 둔 상태다.

콩이바바 활동가는 “학대범이 특정되지만 증거자료 부족으로 고발 조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절 주변에 CCTV를 설치할 예정이고,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회’ 소속 권유림 변호사에게 법적 자문을 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관음사 고양이들은 새 집사를 모집 중이다. 중성화 수술, 치료를 마친 고양이들은 가정입양을 위해 임보, 입양홍보에 들어간다. 자세한 프로필은 모찌이모달밤캣의 SNS 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사진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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