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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올무도 총탄도 이겨낸 떠돌이개 ‘비지’의 모정

등록 2021-01-25 11:25수정 2021-01-25 15:36

[애니멀피플] 통신원 칼럼
영하 20도 혹한에 길거리서 새끼 4마리 낳은 비지
살아있는 게 신기한 어미 개의 나이는 고작 두 살
영하 20도 혹한에 길거리에서 출산을 한 비지와 새끼들. 마치 잘 뽑아놓은 떡같은 비지의 건강하고 귀여운 아기강아지들!
영하 20도 혹한에 길거리에서 출산을 한 비지와 새끼들. 마치 잘 뽑아놓은 떡같은 비지의 건강하고 귀여운 아기강아지들!

비지는 두 살 된 떠돌이개였다. 유기견인지, 동네에 풀어키우다 결국 유실된 개인지, 떠돌이개가 낳은 새끼인지, 그 출신은 알 수 없다. 어쨌든 비지는 살아 남았고, 어쩌다 임신을 했고, 하필 영하 20도로 떨어지는 최악의 혹한 속에서 출산을 했다.

아마 비지는 숨을 곳도 마땅히 찾지 못하고, 땅이 얼어버려 땅굴을 팔 수 없었던 것 같다. 비지는 결국 찬바람이 그대로 들이치는 하늘 아래 몸을 풀고 나뭇잎이 썩으며 내는 지열에 몸을 지탱해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온기 하나 없는 덤불 위 출산
떠돌이개가 낳은 새끼의 생존율은 현저히 떨어진다. 먹을 것도 없고 사람에게 배척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지네 가족이 발견될 시기에는 기온이 연일 영하로 떨어지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이 반복되고 있었다. 새끼들이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 해도, 떠돌이개로서 살아가기에 이 사회는 안전하지 않다. 1월 19일 카라 활동가들은 그 누구도 지켜주는 이 없던 비지와 새끼들을 구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갔다.

도로 옆 덤불 위에 몸을 푼 비지는 영하 20도의 날씨에도 체온으로 새끼들을 지켜냈다.
도로 옆 덤불 위에 몸을 푼 비지는 영하 20도의 날씨에도 체온으로 새끼들을 지켜냈다.

커다란 트럭들이 오가는 찻길 바로 옆 덤불 위, 비지는 오직 자신의 온기로 눈도 못 뜬 새끼들을 지키고 있었다. 활동가들이 다가가자 비지는 자리를 피했다. 경계심 강한 비지까지 구조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하고, 그 위에 이불을 깔고 새끼들을 뉘었다. 비지는 멀리서 안절부절못하며 그 장면을 바라봤다.

활동가들이 자리를 피하자, 비지는 신중하게 포획틀 주변을 기웃거렸다. 멀리 떨어졌다가 다시 다가오기를 반복하다, 새끼들을 꺼내고 싶어 이불보를 물어 포획틀 밖으로 이불을 꺼내려 했다. 야속하게도 여러 개 깔아놓은 이불만 나오고 새끼들은 포획틀 안에서 끙끙거렸다. 비지는 낯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결국에는 포획틀 안으로 들어갔다. 포획틀이 탕, 하고 닫히자 비지는 깜짝 놀라면서도 새끼들 곁으로 달려갔다.

비지를 유인하기 위해 새끼들을 포획틀 안에 넣어두었다.
비지를 유인하기 위해 새끼들을 포획틀 안에 넣어두었다.

포획틀에서 낯선 활동가를 살피면서도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는 비지.
포획틀에서 낯선 활동가를 살피면서도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는 비지.

비지와 새끼들은 따뜻한 곳에서 하룻밤 몸을 녹이고, 다음 날 병원 진료를 받았다. 비지의 한쪽 앞다리에는 올무의 흔적인지 무언가에 오랫동안 묶여 깊게 패인 채 아문 상처가 발견되었다. 병원에서는 비지의 다리가 ‘괴사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올무 상처, 부러진 앞니…살아있는 게 대견하다

앞니도 성하지 못했다. 앞니 하나가 완전히 부러져 있었는데, 상처가 있는 다리와 같은 방향의 이빨이 부러진 것으로 보아 다리를 파고드는 올무나 매듭을 이빨로 뜯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 비지는 이빨을 잃고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각도의 엑스레이 촬영 결과 미지의 앞다리 안쪽에 길이 1.5㎝의 금속성 물질이 발견됐다. 총탄이라기엔 날렵하지 않은 이상한 모양이지만, 인근에 파편 조각도 관찰되며 이 크기와 형태, 재질은 총탄으로밖에 추정되지 않는다.

비지의 부러진 앞니. 아마 올무 등을 뜯어내다 앞니가 부러졌을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 정체를 알 수 없는 1.5cm 금속성 물질. 비지의 육아가 끝나고 제거 수술을 할 예정이다.
비지의 부러진 앞니. 아마 올무 등을 뜯어내다 앞니가 부러졌을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 정체를 알 수 없는 1.5cm 금속성 물질. 비지의 육아가 끝나고 제거 수술을 할 예정이다.

다리의 상처, 부러진 앞니, 총알로 추정되는 물질, 그리고 혹한 속의 출산까지…. 2년 남짓한 짧은 삶에서 비지가 어떻게 살았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버려진 개에게 밥 그릇 하나 내어주는 것도 어려운 현실에서 비지는 쫓기고 도망다니며 기어코 살아남았을 것이다. 어지간한 개라면 이미 죽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저 비지가 이 자리에 살아 있음이 대견하다.

손가락이 떨어져라 추운 한 겨울에도 비지는 새끼들만큼은 솜털 하나 다치지 않도록 보살폈다. 따뜻한 방에서도 사람을 불편해해 벽을 바라보는 비지와 달리, 새끼들은 처음 누워보는 포근한 이불을 파고 들며 잠들기 바쁘다. 이 애들은 나중에 엄동설한에 체온만으로 저들을 지켰던 어미의 사랑을 기억할까? 아마도 까맣게 잊고 철없이 순진한 강아지로 자라날 것이다. 다만 그 사랑으로 살아남은 아이들의 생은 내내 아프지 않기를 빈다.

비지의 사랑으로 살아남은 아이들의 생은 내내 아프지 않기를 빈다.
비지의 사랑으로 살아남은 아이들의 생은 내내 아프지 않기를 빈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에도 따뜻한 난방에 녹아 눈이 감기는 비지와 조그만 떡 같은 비지의 건강하고 귀여운 아기강아지들.
사람에 대한 경계심에도 따뜻한 난방에 녹아 눈이 감기는 비지와 조그만 떡 같은 비지의 건강하고 귀여운 아기강아지들.

‘들개’ 내쫓던 인간이 책임질 때

이제는 버려진 개들을 ‘들개’라 구분지으며 배척하고, ‘들개는 죽여야 한다’며 손가락질 해왔던 인간들이 책임을 질 시간이다. 비지는 활동가들과 후원자들의 인연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비지가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고 평생을 함께할 가족을 만날 때까지, 그 과정은 그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과 시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따뜻한 손길 끝에 비지 또한 반려견으로서의 안온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글 김나연, 사진 최민경 한소이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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