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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7년 재개발도 이겨낸 길고양이를 누가 죽였나

등록 2021-01-29 13:53수정 2021-02-01 19:10

[애니멀피플] 기고/좋은냥이 콩이바바 활동가
재개발 지역에서 이주해 영리하게 살아가던 ‘비쥬’
턱뼈 박살난 채 발견…학대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수원시 조원동 재개발 지역에서 살던 7살 고양이 ‘비쥬’가 지난 1월20일 사체로 발견됐다. 당시 비쥬의 턱뼈는 부서져  있었고, 두 발도 꺾인채 발견됐다.
수원시 조원동 재개발 지역에서 살던 7살 고양이 ‘비쥬’가 지난 1월20일 사체로 발견됐다. 당시 비쥬의 턱뼈는 부서져  있었고, 두 발도 꺾인채 발견됐다.

편집자주

경기도 수원시 조원동에서 2016년부터 재개발 지역 동네 고양이 이주, 방사, 입양 활동을 벌여온 ‘좋은냥이 좋은사람들’ 콩이바바(활동명, @kong2baba) 활동가가 기고문을 보내왔습니다. 최근 사체로 발견된 길고양이 ‘비쥬’의 죽음과 같은 장소에서 반복되고 있는 동물학대, 유기에 대한 공공기관의 입장을 묻습니다.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월 20일 새벽의 일입니다. 수원시 경기도교육복지종합센터  야외 주자창 한 구석에 낯익은 고양이 한 마리가 미동도 없이 누워있었습니다. 이곳은 평소 고양이들이 자주 지나다니며 밥을 먹던 장소입니다. 마치 누군가에게 전시라도 하듯 아무렇게나 던져진 고양이는 이미 싸늘하게 식은 사체였습니다.

불길한 느낌에 조심스레 다가가서 보니 다름 아닌 ‘비쥬’였습니다. 비쥬는 제가 7년 동안 사료를 챙겼던 동네고양이 입니다. 비쥬의 상태는 한눈에 봐도 끔찍했습니다. 두 발이 위로 꺾인 채 올려져 있었고, 하악골은 박살나 있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의 고통을 말해주듯 감지 못한 두 눈은 먼 허공을 힘없이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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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교통사고이길 바랐지만…

저는 곧바로 비쥬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사체 검사를 수의사 선생님에게 의뢰했습니다. 차라리 교통사고였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학대 사망보다는 그 편이 덜 고통스러웠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통사고의 흔적은 없었고, 결국 학대로 추정된다는 소견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인 24일, 비쥬의 사체가 발견된 인근에서 불법 포획에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올무와 낯선 상자 두 개가 발견됐습니다.

포획 도구들을 확보한 뒤 비로소 저는 경찰에 동물학대를 신고했습니다. 비쥬의 죽음이 학대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장소에서 동물학대 사건이나 동물 불법 유기가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재개발 사업으로 밀려난 비쥬는 쉼터에서 지내다 다시 이주 방사된 고양이였다.
재개발 사업으로 밀려난 비쥬는 쉼터에서 지내다 다시 이주 방사된 고양이였다.

2017년 ‘똘이’는 올무에 목이 걸려 살이 까맣게 괴사된 채 발견됐습니다. 같은 해 동일한 장소에서는 몸통에 탄피가 박힌 유기견도 구조가 됐습니다. 2018년 이번에는 길고양이 ‘찡코’가 다리에 올무가 걸려 크게 부상을 당했습니다. ‘삼순이’는 예리한 흉기에 한 쪽눈이 찔렸고, 중성화한 고양이들이 연이어 비비탄 총알로 추정되는 발사형 흉기에 다리 부상을 입는 일도 이어졌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로 물과 사료를 나르는 저도 덜컥 겁이 났습니다. 다친 채 발견되던 동물들이 이제는 사체로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2019년 항상 고양이 사료를 놔두는 장소에 보란듯이 고양이 사체를 전시해 놓은 일이 있었습니다. 2020년 12월 동일한 장소에서는 새끼 고양이가 뼈가 으스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저는 근처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 가족을 쉼터로 구조해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불과 한 달이 채 지나지도 않은 시점, 이번엔 비쥬가 주검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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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 동물학대

비쥬는 수원 조원동 재개발 지역에서 살아나온 고양이입니다. 어미 고양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 제가 7년째 챙겨오던 고양이였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구조 뒤 입양을 가기도 했지만, 비쥬는 재개발 공사로 잠시 쉼터에서 지내다가 방사됐습니다. 쉼터 생활도 거리 생활도 잘 적응하는 건강하고 씩씩한 고양이였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영리하게 살아남던 비쥬가 이렇게 허망하게 생명을 잃을 줄이야. 너무나 억울한 일이었습니다.

비쥬가 발견된 장소는 지난 5년간 수차례 동물들의 학대가 의심되는 지역이다. 공공 교육기관이지만 이곳을 관리하는 CCTV나 인원은 없는 형편이다.
비쥬가 발견된 장소는 지난 5년간 수차례 동물들의 학대가 의심되는 지역이다. 공공 교육기관이지만 이곳을 관리하는 CCTV나 인원은 없는 형편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걸까요. 2017년부터 5년 째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단 한번도 학대자가 특정된 적이 없습니다. 올무와 비비탄 총, 사체 전시 등 누군가 반복적으로 동물을 괴롭히고 있지만 경찰 수사가 진행되더라도 증거 불충분으로 수사가 종결되기 일쑤였습니다. 피해 동물의 사체를 부검하기도 했지만 결론은 학대인지 사고인지 알 수 없다는 말 뿐이었습니다.

시시티브이(CCTV)만 있었더라도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이 사건들은 모두 동일한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곳은 경기도 교육청 산하 공공 교육기관인 경기도교육복지종합센터와 경기도교육연구원 일대입니다. 조원동 지역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며 많은 동네 고양이들이 이곳 인근으로 삶터를 옮겼습니다. 주차장에서 바로 연결되는 영산공원 일대는 아직도 재개발 공사가 진행 중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이미 수년 전부터 개, 고양이 유기와 들개 발생 문제로 보도가 나올 만큼 여러 차례 문제가 제기된 지역이기도 합니다. 저 또한 그 무렵 지자체와 함께 개를 불법포획하려는 업자들이 놓은 올무와 덫을 수거하는 활동을 벌이고, 들개화 된 유기견 13마리를 수년에 걸쳐 구조 입양을 보낸 바 있습니다. 더불어 이 두 곳 교육기관에도 시시티브이 설치와 동물보호 협조를 요청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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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이 싫어한다’ 급식소도 거부한 교육기관

그러나 안타깝게도 누구보다 생명 존중 교육에 앞장서야 할 이 두 곳이 사실상 동물 학대와 살상, 유기를 방조하고 있습니다. 수원시에 요청해 두 교육 기관에 시시티브이 설치나 동물유기 방지에 관한 협조 공문을 수차례 보냈지만, 지금까지 그 어떤 조치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수원시와 함께 마련한 길고양이 급식소마저 직원들이 고양이를 싫어한다는 이유로 매번 설치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경기도교육복지종합센터는 야외 주차장에 동물학대, 유기방지현수막을 제작해 내걸었지만 별반 효과가 없었다. 경찰의 동물학대 수사도 CCTV 화면이 없어 흐지부지 종결됐다.
경기도교육복지종합센터는 야외 주차장에 동물학대, 유기방지현수막을 제작해 내걸었지만 별반 효과가 없었다. 경찰의 동물학대 수사도 CCTV 화면이 없어 흐지부지 종결됐다.

현재도 경기도교육연구원의 전지작업으로 나온 나뭇가지와 쓰레기 더미가 경기도교육복지종합센터 야외 주차장에 쌓여있는 형편입니다. 동물은 물론 사람이 다쳐도 모를 만큼 으슥하다 보니 청소년들의 탈선장소로 이용되고 합니다. 경기도교육복지종합센터는 야외 주차장을 주민들에게 개방했다는 이유로 일절 관리를 하지 않으며, 직원들이 버리는 쓰레기는 묵인해도 원래 그곳에 살던 동네 고양이들의 밥 자리는 용납하지 않는 편협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곳의 길고양이들은 대부분 일련번호를 부여해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관리해온 동네 고양이들입니다. 조원동에 아파트가 들어서며 갈 곳을 잃은 이 동네 고양이들은 질병 치료는 물론 중성화 수술까지 마쳐 정확하게 개체 파악이 되는 아이들입니다. 지난 5년 간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보살펴 온 고양이들이 차가운 사체로 발견될 때마다 저희는 깊은 좌절감을 느낍니다.

MBC 다큐멘터리 ‘도시의 묘한 동거’ 카메라에 포착됐던 비쥬의 모습. 화면 갈무리
MBC 다큐멘터리 ‘도시의 묘한 동거’ 카메라에 포착됐던 비쥬의 모습. 화면 갈무리

동물학대 행위는 나보다 약한 존재에 대한 무시와 폭력으로부터 발생합니다. 사회부적응자가 단순한 관심을 받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저지르는 비정상적, 반사회적 범죄입니다. 강력범죄자를 면담했던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연쇄살인범 강호순, 유영철 또한 동물학대에서부터 범죄를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단지 개, 고양이라고 해서 가볍게 보고 방조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여린 길 위의 생명을 돌보는 데 있어 협조는 커녕 최소한의 책임의식도 보이지 않는 공공 교육기관들에 유감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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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설치·동물권 교육…학대 방지 나서주길

경기도교육청 또한 산하기관들에 대한 동물학대 방조에 대해 책임의식을 갖고 대책을 마련해주길 바랍니다. 동물학대를 감시할 수 있는 CCTV 설치와 교육기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동물보호법 교육, 지자체 길고양이 급식소 설치 협조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드립니다. 더이상 약한 생명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비쥬의 비참한 죽음이 또 다시 반복되어선 안됩니다. 단지 사료 몇 알, 물 몇 모금이면 하루가 행복했던 작은 생명들, 그 짧고 위태로운 삶을 지키는 일은 단지 고양이만을 위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들도 이제 우리와 삶을 함께 하는 공동체의 일부분이며 보호해야 할 구성원입니다.

글·사진 좋은냥이 좋은사람들 콩이바바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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