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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생태와진화

피할 수 없다면 맞서라…‘태풍의 눈’은 새들의 피난처였다

등록 2022-10-13 11:44수정 2022-10-13 17:05

[애니멀피플]
슴새 401마리 11년 동안 장기 위성추적조사 결과 밝혀져
태풍과 육지 사이에 낄 상황이면 태풍 중심으로 돌입
8시간 동안 태풍 따라가기도…강풍 이용한 고효율 비행
바닷새인 동해의 슴새는 태풍의 강풍보다 육지에 떠밀리는 위험을 더 크게 느낀다. 태풍의 눈을 향해 비행하는 예상 밖의 행동을 하는 이유이다. 고토 유스케 제공.
바닷새인 동해의 슴새는 태풍의 강풍보다 육지에 떠밀리는 위험을 더 크게 느낀다. 태풍의 눈을 향해 비행하는 예상 밖의 행동을 하는 이유이다. 고토 유스케 제공.

2018년 8월 일본 혼슈를 관통해 큰 피해를 낳은 태풍 시마론이 동해로 진입하자 위성추적장치를 단 바닷새 슴새들이 놀라운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보통 일본 서해안의 아와시마 섬을 중심으로 해안을 따라 비행하며 먹이를 찾던 슴새들이 반대 방향인 태풍의 중심부를 향해 날아갔다.

번식기를 빼고는 바다에서만 사는 새들과 대양을 거쳐 장거리 이동하는 철새가 열대폭풍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오랜 수수께끼이다. 최근 첨단 기상레이더 덕분에 많은 새떼가 비교적 안전한 열대폭풍의 눈 안에 머문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관련기사: ‘태풍의 눈’은 새들이 갇히는 덫일까, 피난처일까). 그러나 새들이 의도적으로 폭풍 속으로 피하는지 어쩔 수 없이 갇혔는지는 불확실했다. 태풍을 만난 바닷새가 능동적으로 태풍의 눈 속으로 대피한다는 사실이 위성추적장치를 통한 장기 연구로 처음 밝혀졌다.

2018년 8월 태풍 시마론(A 검은 궤적)이 일본을 관통하고 동해로 진입하자 일본 서해안 쪽에 있던 슴새 무리의 일부가 태풍의 눈을 향해 비행하는 모습이 위성추적 궤적(B)으로 드러났다. 에마눌리 림페다키스 외 (2022) PNAS 제공
2018년 8월 태풍 시마론(A 검은 궤적)이 일본을 관통하고 동해로 진입하자 일본 서해안 쪽에 있던 슴새 무리의 일부가 태풍의 눈을 향해 비행하는 모습이 위성추적 궤적(B)으로 드러났다. 에마눌리 림페다키스 외 (2022) PNAS 제공

영국과 일본 연구자들은 2008∼2018년 사이 11년 동안 슴새 401마리에 추적장치를 부착해 비행궤적을 추적했다. 이 가운데 75마리는 동해를 향한 태풍 10개 속에서 날아 태풍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알 수 있는 드문 데이터를 냈다. 연구책임자인 영국 스완지대 에밀리 셰퍼드 교수는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슴새들이 태풍의 눈을 향해 날아가는 지피에스 궤적을 보고 우리는 모두 화들짝 놀랐다. 일부 슴새는 태풍을 8시간이나 따라가기도 했다. 바닷새가 열대폭풍에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올해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이안에서 드러난 태풍의 눈.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촬영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올해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이안에서 드러난 태풍의 눈.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촬영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태풍은 중심부 쪽으로 갈수록 바람이 강해진다. 그러나 태풍 한가운데 지름 20∼50㎞인 태풍의 눈은 강력한 바람과 적란운이 벽처럼 둘러싼 비교적 잠잠한 구역이다. 슴새는 이곳을 피난처로 삼은 걸까. 연구자들은 “태풍의 중심부에서 30㎞ 이내로 접근한 슴새가 4마리였고 13마리는 60㎞ 이내로 근접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평온한 태풍의 눈으로 대피하거나 그런 시도를 한 새가 드물지 않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펠리컨, 어린 군함새, 얼가니새 등 바닷새들은 태풍을 만나면 육지나 육지에서 가까운 바다에 머무는 것으로 위치추적 조사에서 밝혀진 바 있다. 그런데 무게가 580g으로 비교적 몸집이 작은 슴새는 어떻게 이런 과감한 대응을 하는 걸까. 연구에 참여한 이 대학 엠마누일 렘피다키스 박사는 “슴새는 앨버트로스처럼 강풍에 잘 적응해 바람을 타고 잘 날아오른다. 날개를 거의 퍼덕이지 않으면서 바람을 이용해 난다”고 말했다.

슴새는 강풍을 이용하는 뛰어난 비행술을 지녔지만 늘 태풍의 눈으로 뛰어드는 것은 아니다. 패트릭 코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슴새는 강풍을 이용하는 뛰어난 비행술을 지녔지만 늘 태풍의 눈으로 뛰어드는 것은 아니다. 패트릭 코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러나 슴새가 뛰어난 비행술을 지녔더라도 무작정 태풍의 눈을 향해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슴새들은 태풍과 육지 사이에 끼는 상황이 예상되면 태풍을 향해 다가선다”고 밝혔다. 슴새들이 가장 꺼리는 것은 육지로 부는 강풍에 떠밀려 육지의 지형지물에 부닥치거나 착륙했다가 포식자에게 먹히는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슴새는 비행 전문가이지만 땅에서는 동작이 둔하고 어설프게 날아오른다. 태풍과 육지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슴새들은 태풍을 멀리 우회하거나 육지에 근접해 비행하는 등 유연한 대응책을 구사한다.

연구자들은 이런 대응에 비춰 “슴새들이 일종의 ‘지도 감각’을 지녀 자신의 위치와 태풍의 경로 등을 파악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런 지도를 습득하지 못한 슴새 새끼 수천 마리가 태풍 뒤에 죽어 해안에 떠밀려 오기도 한다”고 연구자들은 덧붙였다. 이 연구는 미 국립학술원회보(PNAS) 4일 치에 실렸다. 

인용논문: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DOI: 10.1073/pnas.221292511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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