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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생태와진화

침팬지 코끝에 향기가 스쳤다…옛사랑의 추억 떠오를까

등록 2017-10-16 10:30수정 2017-12-03 16:22

[애니멀피플]
김예나의 ‘영장류 마음 엿보기’ 첫회-영장류의 시간여행 ①
내일 떠날 방향에 잠자리 만들고
3년 전 숨겨둔 위치 찾아내고…
영장류도 과거 기억 활용한다

내 이름은 김예나. 지구에 생존하는 모든 동물 중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뻘인 영장류의 인지, 마음에 대해 연구한다. 국내에서는 비교적 최근에야 화두가 된 동물권(animal right)이 관심을 얻으면서, 내가 연구하는 분야인 동물의 인지(animal cognition)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졌다.

과거에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동물들의 이야기를 ‘티브이 동물농장’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동물들의 인지능력과 생태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소개되고 있다. 동물, 그리고 과학에 대한 대중의 높아진 관심과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애니멀피플’을 통해 내 주된 연구분야인 영장류 인지에 있어 소위 ‘핫’한 주제들을 소개하고 그들과 우리 삶의 유사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동물들은 과연 3년 전의 기억을 꺼내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독일 라이프치히동물원의 오랑우탄들.  김예나 제공
동물들은 과연 3년 전의 기억을 꺼내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독일 라이프치히동물원의 오랑우탄들. 김예나 제공

첫 이야기의 제목을 제법 감성적으로 잡아보았다. 당신의 코끝에 향기가 스친다. 옛사랑의 추억이 자동 연상된다.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다. 향기는 옛사랑의 기억으로 돌아가는 자극이다. 이 이야기가 영장류의 인지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그럼, 한 번 이야기해보자.

인간에게 있어 ‘과거의 기억’, ‘정보의 저장’ 능력은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계획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영장류도 과거의 상황에 대한 기억을 통해 현재 직면한 문제를 해결한다.

‘옛사랑의 추억’과는 조금 다른 예를 들어보자. 특이한 향이 나는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서 호되게 아팠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같은 향이 나는 음식을 다시 접하게 됐을 때, 우리는 이 음식을 피하려고 한다. 이 경우 ‘특이한 향’이라는 ‘자극’이 과거의 ‘일화적 기억’(episodic memory)을 끄집어 내어, 또 다시 배탈이 날 뻔 한 순간을 막아주었다. 이처럼 과거의 기억은 잠재적 위험을 막아주거나 우리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일을 준비하는 코트디부아르 침팬지들

과거의 학자들은 동물은 현재만을 살며 과거를 회상하거나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고 여겼다. 그런 능력을 가진 건 오로지 인간뿐이었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동물들이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미래를 계획할 수 있음을 다양한 사례로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코트디부아르의 타이국립공원(Tai National Park)에 사는 침팬지들은 먹이가 부족한 계절이 오면 경쟁이 심해진다. 이들은 쉽게 접하기 힘든 특정 과실류를 먹기 위해 전날부터 ‘계획’한다. 밤에 자는 둥지를 그 과일나무가 있는 방향에 만들고, 평소보다 일찍 둥지에서 나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침팬지가 언제, 어디서, 그리고 어떤 먹이를 먹을 것인지 등과 같은 미래계획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연구는 미래에 대한 계획·예측보다는 과거의 기억을 통해 현재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침팬지와 오랑우탄에 관한 이야기다. 독일 라이프치히 동물원(Leipzig Zoo)은 영장류 인지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동물원 중 하나다. 그래서 이곳의 침팬지와 오랑우탄들은 다양한 인지연구를 접한다. 물리적 이해능력부터 협동, 경쟁과 같은 사회적 인지능력까지 다양한 연구자들이 매일같이 진행하는 연구는 이들로 하여금 영장류의 장기기억력을 테스트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연구자들은 과연 어떤 실험으로 장기기억력을 알 수 있었을까?

그림1. 침팬지에게는 10㎝와 30㎝의 막대가 주어진다. 실험장치 위의 먹이를 꺼내기 위해서는 부스 밖의 먹이를 당겨올 수 있도록 충분히 긴 30㎝의 나무막대를 골라야 한다.
그림1. 침팬지에게는 10㎝와 30㎝의 막대가 주어진다. 실험장치 위의 먹이를 꺼내기 위해서는 부스 밖의 먹이를 당겨올 수 있도록 충분히 긴 30㎝의 나무막대를 골라야 한다.
보통 실험에 참여하는 동물들은 실험자, 실험장소, 실험장치로 구성된 세 가지 조합을 접한다. 이를테면 A라는 실험에 참여하기 위해서 A+라는 실험자가 있는 A++라는 장소로 가서 A+++라는 장치를 접하는 것이다. 같은 실험자가 B++라는 장소에서 B+++라는 장치로 실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A+, A++, A+++ 이 세 조건이 결합한 실험상황은 동물들에게 마치 코끝을 스치는 향기처럼 A라는 실험을 다시 회상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준다.

장기기억력 실험에서 실험자는 3년 전에 진행한 도구사용 실험을 다시 테스트한다(그림1). 3년 전에 진행한 도구사용 실험에서 실험자는 A+++라는 실험장치에서 먹이를 꺼낼 수 있는 도구 A- 하나와 꺼낼 수 없는 도구 B- 하나를 각기 다른 위치에 숨겼다. 실험에 참여한 침팬지와 오랑우탄은 실험자가 실험장치에서 먹이를 꺼내기 위한 A-라는 도구를 어느 곳에 숨기는지 보고 있었기 때문에 혼란 없이 정확한 위치로 가서 도구를 꺼내온 뒤 A+++ 실험장치에서 먹이를 꺼내 먹을 수 있었다.

인간만이 ‘미래계획 능력’이 있다고?

3년이 지난 이후 동일한 실험자 A+는 동물이 실험장소인 A++에 들어오기 전 같은 위치에 A-와 B-의 도구를 숨겨두고 동물이 들어온 이후 A+++ 실험장치를 제공하였다. 따라서 이 실험에서는 과거의 기억을 제외하고는 도구를 숨겼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단서는 없었다. 놀랍게도 3년이 지난 뒤 진행된 단 한 번의 시도에서 11마리의 침팬지와 오랑우탄 중 단 한 마리를 제외한 10마리가 정확히 A-라는 도구를 찾아온 뒤 실험장치에서 먹이를 꺼내먹는 데 성공했다. 반면에 3년 전 실험에 참여하지 않았던 대조군으로 이루어진 7마리의 침팬지와 오랑우탄은 아무도 도구를 찾아서 먹이를 꺼내먹지 못했다.

독일 라이프치히동물원은 영장류 인지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동물원 중 하나다.  김예나 제공
독일 라이프치히동물원은 영장류 인지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동물원 중 하나다. 김예나 제공
이 실험은 침팬지와 오랑우탄이 과거의 기억을 이용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과거의 ‘기억 인출’이 인간과 매우 유사한 방식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도 알려줬다. 인간과 영장류뿐이 아니었다. 유사한 연구를 통하여 까마귀나 어치 등 조류에서도 이러한 능력이 차츰 밝혀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서울대공원의 오랑우탄들은 나와 함께한 시간을 추억하긴 하는 걸까? 매우 궁금하긴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침을 뱉지 않는 녀석들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다음 연재에는 영장류의 미래예측에 관한 실험을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김예나 영장류 인지·행동학자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Karline R. L. Janmaata, Leo Polanskya, Simone Dagui Bana, and Christophe Boesch. 2014. Wild chimpanzees plan their breakfast time, type, and location. PNAS(www.pnas.org/lookup/suppl/doi:10. 1073/pnas.1407524111/-/DCSupplemental)

Gema Martin-Ordas, Dorthe Berntsen, and Josep Call. 2013. Memory for distant past events in chimpanzees and orangutans. Current Biology (https://doi.org/10.1016/j.cub.2013.06.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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