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랜 삽엽충 화석. 단순하지만 현생 절지동물과 비슷한 구조의 겹눈(붉은 상자) 구조를 하고 있다. 게나디 바라노프, 에스토니아 탈린대 제공.
복잡한 구조의 동물이 처음 출현한 원시 바다에 시각은 엄청나게 중요했다.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포식자가 나타나자 먹히는 동물 사이에서 시각 획득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됐다. 5억4000만년 전 그때까지 없던, 현생 생물의 조상에 해당하는 전혀 새로운 생물들이 갑자기 출현한 ‘캄브리아기 폭발’도 시각의 등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고생대 캄브리아기를 대표하는 동물로 우리나라의 강원도 태백·영월 등 전 세계에 분포하는 삼엽충의 시각은 큰 관심사이다. 약 5억년 전 삼엽충은 이미 꿀벌, 잠자리, 새우 등 절지동물과 비슷한 겹눈을 진화시킨 사실이 다양한 화석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최초의 삼엽충은 어떤 눈을 지니고 있었을까. 이런 의문을 풀어줄 연구결과가 나왔다.
삼엽충의 겹눈 구조. 각막이 방해석으로 되어 있어 분해되지 않고 화석으로 남는다. 존 패터슨, 뉴잉글랜드대 제공.
브리기테 쇤네만 독일 쾰른대 교수 등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미국 학술원 회보’(PNAS) 5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예외적으로 잘 보존된 캄브리아기 초기 삼엽충 화석(종명
Schmidtiellus reetae)에서 시각기관의 내부구조를 상세히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제까지 삼엽충의 겹눈이 어떤 내부구조인지는 수수께끼였다. 에스토니아에서 발견된 이 화석은 오른쪽 눈 부분이 살짝 깎여 운 좋게 내부구조를 살펴볼 수 있었다.
조사 결과 놀랍게도 5억년 전 최초의 삼엽충도 현재의 절지동물에 견줄 만한 겹눈을 지니고 있었다. 연구자들은 “(이 화석은) 아마도 우리가 연구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시각 체계의 기록일 것”이라며 “(이 삼엽충의) 겹눈은 단순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보는 꿀벌이나 잠자리의 눈과 같은 구조이다”라고 논문에서 적었다.
원시 삼엽충의 겹눈 구조. C는 시야, D는 살짝 깎여 내부구조를 보여주는 오른쪽 겹눈, E는 겹눈을 옆에서 본 모습이고 F는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각각의 홑눈 구조를 G와 H가 보여준다. 쇠네만 외(2017) PINAS 제공.
동물의 눈은 사람이나 새, 물고기에서 볼 수 있는 단일 렌즈 눈과 절지동물이 지닌 여러 개의 홑눈이 다발로 모인 겹눈으로 나뉜다. 겹눈은 수백∼수만 개의 홑눈이 볼록한 형태로 모여 다발을 이루며, 겉에서부터 마이크로렌즈 형태의 각막, 수정 추, 감간 순으로 구성된다.
원시 삼엽충의 겹눈은 현생 절지동물과 구조는 같지만 매우 단순한 형태였다. 우선 홑눈이 몇 개 되지 않았다. 이런 겹눈으로 피사체의 전체 이미지를 얻는 것은 어렵고 단지 앞을 지나가는 물체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정도였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했다. 그러나 이로부터 (지질학적으로 매우 짧은) 200만 년도 지나지 않은 시기의 노르웨이의 삼엽충 화석은 이미 현생 잠자리에 필적하는 홑눈이 빽빽한 겹눈을 진화시켰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시각의 진화가 매우 급속히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최초의 삼엽충 직후 겹눈을 발달시킨 노르웨이 삼엽충 화석 모습. 겹눈이 빽빽하다(C). 쇠네만 외(2017) PINAS 제공.
또 원시 삼엽충의 각막은 평평해 빛의 굴절이나 초점 맞추기가 불가능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렌즈 뒤에는 현생 곤충 겹눈의 수정 추와 비슷한 삼각형 구조가 있어 초점을 맞추었을 것으로 보았다. 또 빛을 받아들이는 세포의 잔해로 보이는 세포와 정보를 취합하는 감간의 존재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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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Brigitte Schoenemanna et al, Structure and function of a compound eye, more than half a billion years old,
PNAS, www.pnas.org/cgi/doi/10.1073/pnas.1716824114 PNAS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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