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따구리가 나무를 쫄 때 뇌는 중력가속도의 1400배에 이르는 충격을 입는다. 어떻게 뇌 손상을 입지 않는지는 오랜 수수께끼였다. 그런데도 2억5천만년 동안 무사히 산다. 비밀은 뭘까. 아를렌 코지올, 필드자연사박물관 제공
딱따구리는 단단한 나무를 부리로 쪼아 구멍이나 소리를 낸다. 먹이를 잡고 둥지를 지으며 자신의 영역을 널리 알리는 데 꼭 필요한 행동이다. 그런데 나무를 두드리는 이런 행동에도 뇌가 멀쩡한 이유는 오랜 수수께끼였다. 딱따구리는 초속 6~7m의 속도로 1초에 10~20번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나무를 쪼는데, 이때 딱따구리는 사람에게 뇌진탕을 일으키는 것보다 최고 14배의 충격을 받는다.
이런 박치기를 하루 1만2000번이나 할 수 있는 이유로 뇌의 크기와 배치가 충격을 최소화하게 돼 있고, 두개골을 안전띠처럼 감싼 기다란 목뿔뼈와 두개골 뼈의 스펀지 구조가 충격을 완화한다는 등의 가설이 나왔다. 최근에는 딱따구리의 부리 길이가 위아래가 다른 짝짝이여서 충격을 이긴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수수께끼는 아직 안 풀렸지만 딱따구리의 두뇌 구조를 응용해 충격을 완화하는 헬멧 등 스포츠용품이 개발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전혀 다른 차원의 가설이 병리학자로부터 나왔다.
미국 보스턴의대 연구자들은 3일 딱따구리의 뇌에서 뇌 손상의 징표가 되는 단백질이 다량 검출됐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이 대학 피터 커밍스 교수는 “딱따구리가 쪼아대도 뇌 손상을 입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다양한 스포츠용품이 개발되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그 새의 뇌에 손상이 생겼는지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필드자연사박물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은 이 박물관의 알코올 속에 보관된 딱따구리의 액침 표본에서 두뇌를 구해 검사했다. 그 결과 사람에게 뇌 손상의 신호로 간주하는 타우 단백질이 축적된 것을 발견했다. 뇌에서 신경세포끼리 연결하는 전화선이 축삭돌기라면, 타우 단백질은 전화선을 감싸 보호하는 구실을 한다. 뇌가 손상되면 이 단백질이 쌓여 신경 기능이 단절된다.
미국 필드자연사박물관에 보관된 각종 딱따구리의 액침 표본. 연구자들은 1960년대에 채집된 표본을 이번 연구에 썼다. 필드자연사박물관 제공
문제는 과연 딱따구리의 뇌에서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타우의 축적을 뇌 손상의 증거로 볼 수 있겠냐는 것이다. 딱따구리는 2억5000만년 전부터 나무를 두드려왔다. 뇌에 해롭다면 그런 행동이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커밍스 교수는 “타우 단백질이 딱따구리에서는 병을 일으키지 않고 오히려 뇌를 보호하는 쪽으로 적응했을 수 있다”며 “이를 사람의 퇴행성 뇌신경 질환에 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플로스원’ DOI:
10.1371/journal.pone.019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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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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