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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생태와진화

큰까마귀가 하나의 종이 되어간다

등록 2018-04-01 10:38수정 2018-04-01 10:40

[애니멀피플] 역종분화의 세계
“아종인 전북구계·캘리포니아계 큰까마귀가 통합 중”
북미에서 캘리포니아계 사라지고 전북구계·잡종만 남아
북미 대륙에 사는 큰까마귀. 전북구계와 캘리포니아계 큰까마귀가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즈 제공
북미 대륙에 사는 큰까마귀. 전북구계와 캘리포니아계 큰까마귀가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즈 제공
진화라고 하면 생물 집단이 오랜 세월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점차 변해서 새로운 종으로 나뉘어지는 ‘종분화(speciation)’가 대표적인 개념이었다. 그런데, 북미에 서식하는 큰까마귀를 20년 동안 연구해봤더니, 기존의 통념과는 반대되는 사실이 밝혀졌다. 100만년 이상 유전적으로 갈라져 있던 두 개의 다른 무리가 다시 하나로 통합하고 있던 것이다.

1999년부터 큰까마귀를 연구해온 케빈 옴런드 미국 메릴랜드대학 생물학과 교수 등 연구진은 큰까마귀의 유전자를 분석해서 ‘역종분화(speciation reversal)’가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역종분화란 유전적으로 다른 두 가지 계통의 생물이 교잡을 통해 하나로 통합하는 현상인데, 이러한 큰까마귀의 특별한 진화의 과정이 지난 2일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발표됐다.

큰까마귀는 북반구에 광범위하게 서식하는 대형 텃새로, 몸 길이가 63㎝, 날개 편 길이는 1m가 넘으며, 몸무게는 1.2㎏에 이른다.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전 세계의 큰까마귀를 좀 더 분류해보면 대략 8개의 아종으로 분류된다. 옴런드 교수는 2000년에 전 세계 큰까마귀들을 유전적으로 분석해, 이들이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는 것을 밝혀냈다. 북미를 포함한 북반구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사는 7개 아종은 ‘전북구계 큰까마귀’로 분류되며, 북미 서부에만 사는 한 아종만 ‘캘리포니아계 큰까마귀’로 구분된다. 북미에 사는 전북구계 큰까마귀와 캘리포니아계 큰까마귀는 유전적으로는 다르지만, 겉모습이 비슷하고, 소리와 행동까지 같다.

한편, 미국 남서부와 멕시코 일대의 건조 지역과 반건조 초원지역에는 ‘치와와큰까마귀’라는 별개의 종이 산다. 치와와큰까마귀는 캘리포니아계 큰까마귀에서 분화된 종인데, 큰까마귀와 생김새도 비슷하고 서식지역도 상당 부분 겹친다. 하지만 좋아하는 서식지가 다르고, 번식 시기도 다르며, 내는 소리까지 다른 별개의 종이다.

수만년 교잡이 불러온 변화

연구진은 북미 전역에 걸쳐 서식하는 큰까마귀 441마리와 치와와큰까마귀 28마리의 핵과 미토콘드리아에 들어있는 유전자를 분석해서 이들 사이의 근친 관계 및 진화의 비밀을 밝혀냈다. 이들의 디엔에이(DNA) 정보를 분석해 돌연변이와 교잡에 의한 유전자 교환이 얼마나 일어났는지 비교함으로써, 새들 사이의 유전적 연관성을 확인하고 언제부터 유전적 변이가 일어났는지 추정할 수 있었다.

미국 남서부와 멕시코 일대의 건조 지역과 반건조 초원지역에 사는 ‘치와와큰까마귀’. 캘리포니아계 큰까마귀에서 분화된 종이다.  퀸 돔프로프스키/위키미디어 코먼즈
미국 남서부와 멕시코 일대의 건조 지역과 반건조 초원지역에 사는 ‘치와와큰까마귀’. 캘리포니아계 큰까마귀에서 분화된 종이다. 퀸 돔프로프스키/위키미디어 코먼즈
북미 전체에서 채집된 큰까마귀 441마리 가운데 281마리는 전북구계 미토콘드리아 DNA를 가지고 있었고, 159마리는 캘리포니아계 미토콘드리아 DNA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 서북부에서 채집된 94마리 가운데 전북구계는 60%, 캘리포니아계는 40%를 차지했다. 미국 서남부와 멕시코에서 채집된 121마리 가운데 전북구계는 39%, 캘리포니아계는 61%를 차지했다. 반면에 미국 북부와 동북부에서 채집된 큰까마귀 172마리 가운데 캘리포니아계 미토콘드리아 DNA는 2마리에서만 발견되었다.

미토콘드리아 DNA를 비교해보면 지난 2백만년 동안 북미의 큰까마귀들은 진화를 통해 분화해왔다. 전북구계에서 캘리포니아계 큰까마귀가 갈라져 나온 것은 87만~205만 년 전이며, 캘리포니아계에서 치와와큰까마귀가 갈라져나온 것은 59만~151만 년 전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이들의 핵 DNA까지 좀 더 정밀하게 분석해보았더니 전북구계와 캘리포니아계 큰까마귀는 지난 수만년 동안 서로 교잡을 해왔으며 이를 통해 최근 하나의 종으로 통합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러한 교잡 때문에 이제 북미에는 순수한 전북구계 큰까마귀와 잡종 큰까마귀만 남아있으며, 순수한 캘리포니아계 큰까마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에 가장 최근에 분화된 치와와큰까마귀는 캘리포니아계 큰까마귀와 서식지가 광범위하게 겹치지만, 서로 간에 교잡이나 유전자 교환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나무’가 아니라 ‘그물’이다!

오랫동안 진화는 나뭇가지가 갈라지듯이 하나의 종에서 새로운 종이 분화되어 갈라져 나오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지만, 두 가지가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역종분화’도 있다. 진화 과정을 그림으로 그리면 나뭇가지가 계속 갈라지며 뻗어 나가는 모양의 단순한 수형도가 아니라 갈라졌던 가지가 합쳐지면서 그물 모양으로 복잡한 그림을 그리며 진화하기 때문에 이것을 ‘망상진화(reticulate evolution)’라고 부른다.

많은 종의 생물들은 교잡을 통해 서로 다른 생물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아주 복잡한 진화과정을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탄생했다. 이제까지 몇몇 새와 물고기 등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북미 큰까마귀들의 역종분화는 바로 지금 매우 넓은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기에 더욱 흥미롭다. 연구진은 44만~14만년 전에 있었던 빙하기 동안 거대한 빙하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에 두 까마귀들이 고립되어 있으면서 이들의 짝짓기 본능 때문에 교잡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빙하기가 끝난 이후에도 까마귀들은 더 넓은 영역에서 교잡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종분화와 망상진화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인간(Homo sapiens)이다. 최근 네안데르탈인의 학명을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로 해야 하는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 해야 하는지 논쟁이 일고 있다. 유럽과 서아시아 일대에서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은 4만년 전에 멸종된 사람속의 한 종으로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이 아니라는 것이 유력한 학설이었다. 그렇지만, 최근 유전자 분석 기술이 발달하면서 확인해보니 네안데르탈인들은 우리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와 교잡을 통해 아프리카 출신이 아닌 현대 인류에게 1.8~2.6%의 유전자를 남겨주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우리 조상들은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피부와 머리카락 등에 관한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추운 지역에서 적응하며 사는 영역을 전 세계로 확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Anna M. Kearns, Marco Restani, Ildiko Szabo, Audun Schrøder-Nielsen, Jin Ah Kim, Hayley M. Richardson, John M. Marzluff, Robert C. Fleischer, Arild Johnsen, Kevin E. Omland. Genomic evidence of speciation reversal in ravens. Nature Communications volume 9 (2018)

DOI: 10.1038/s41467-018-03294-w

마용운 객원기자·굿어스 대표 ecoli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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