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홍수림과 갯벌의 물뱀, 뺨으로 펄에 누른 뒤 다리 떼고 삼켜
큰 게는 탈피 때 노려…껍데기 굳기 전 20분 사이에 공격한다
탈피 직후 아직 껍데기가 굳지 않은 동안을 노려 습격한 물뱀. 브루스 제이니 외 ‘린네 학회 생물학 저널’ 제공
물뱀은 대개 물고기를 사냥한다. 그러나 홍수림(맹그로브)과 넓은 갯벌이 펼쳐진 곳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이곳에 사는 수많은 게를 잡을 수 있다면 신천지가 열릴 것이다.
실제로 동남아의 일부 물뱀은 게와 새우 등 다리가 10개 달린 갑각류인 십각류를 전문적으로 잡아먹는 종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맛 좋고 영양분 풍부한 십각류를 먹는 일은 만만치 않다. 동작이 빠르고 강력한 집게로 저항한다. 작은 뱀이라면 큰 게의 먹이가 될 수도 있다. 게를 잡았다 해도 날카로운 가시와 집게로 버티는 게를 어떻게 삼킬 것인가. 뱀은 바늘처럼 예리한 이가 있지만 씹는 능력은 없다.
게들이 갯벌에서 먹이를 찾고 있다. 생산성 높은 맹그로브 생태계의 주역이다. 동남아 갯벌에서 물뱀의 주요 먹이 가운데 하나다. 야마토 오사가니/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브루스 제이니 미국 신시내티대 파충류 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갯벌에 서식하는 게와 딱총새우를 전문으로 잡아먹는 물뱀 3종을 대상으로 실험해 이들의 사냥 방법을 밝혔다. ‘린네 학회 생물학 저널’ 최근호에 실린 이들의 논문을 보면, 일반적인 먹이와 전혀 다른 집게발 갑각류를 사냥하기 위해 이 뱀들은 독을 전혀 쓰지 않고 매우 독특한 방법을 동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게를 단단한 껍질째 삼키는 물뱀(학명 Fordonia leucobalia)은 머리를 몽둥이처럼 사용한다. 보통 뱀은 사냥할 때 입을 벌려 송곳니로 먹이를 물지만 이 뱀은 입을 다문 채 머리로 잽싼 게를 내리친다. 이어 뺨으로 놀란 게를 갯벌에 눌러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한 뒤 몸으로 눌러 다리를 떼어낸 뒤 옆에서부터 삼킨다.
연구자들은 “이 게의 위장은 저항하는 게로부터 손상을 피하기 위해 너무 두껍고 질겨 해부가 힘들 정도”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상처를 입지 않고 위험한 먹이를 처리하는 적응에는 성공했지만 이 뱀이 먹을 수 있는 게의 크기에는 한계가 있다. 큰 게의 딱딱한 껍데기는 크고 위험해 삼키기 힘들다.
맹그로브 갯벌에 사는 다른 물뱀(학명 Gerarda prevostiana)은 이 문제를 해결해, 자신이 삼킬 수 있는 크기보다 4배나 큰 게를 사냥한다. 비법은 완력이나 민첩성이 아닌 기회를 놓치지 않는 능력이다. 어린 게는 성장하면서 게딱지보다 커지면 탈피를 한다. 말랑말랑한 몸이 옛 껍데기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껍데기가 굳을 때까지 기다린다. 게에 치명적인 이 시간은 약 45분이고, 이 기회를 노려 사냥하려는 뱀에게 ‘기회의 창’은 20분 정도만 열려있다. 연구자들은 “탈피 과정에 분비되는 화학물질을 단서로 취약한 상태의 게를 찾아내는 것 같다”고 논문에 적었다.
탈피하는 게의 취약한 틈을 노려 포식하는 물뱀. 브루스 제이니 외 ‘린네학회 생물학 저널’ 제공
탈피 직후의 게를 만나면 이 뱀은 상대를 뺨으로 펄에 누른 뒤 몸으로 고리를 만들어 게의 몸을 감은 뒤 입으로 물어뜯어 큰 게를 잘게 찢어 삼킨다.
큰 소리를 내며 저항하는 딱총새우를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물뱀(Cantoria violacea)도 상대를 몸으로 눌러 갯벌에 고정한 뒤 꼬리부터 삼킨다.
연구에 참여한 해럴드 보리스 미국 필드박물관 생물학자는 “맹그로브는 극히 생산성이 높은 생태계이다. 게는 그곳에서 연중 많은 수를 유지한다. 만일 뱀이 게를 먹는 문제를 해결한다면 이 자원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그건 멋진 일이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Bruce Jayne et al, How big is too big? Using crustacean-eating snakes (Homalopsidae) to test how anatomy and behaviour affect prey size and feeding performance, Biological Journal of the Linnean Society, 2018, XX, 1?15. https://doi.org/10.1093/biolinnean/bly00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