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주변에서 음식 찌꺼기를 먹고 자유롭게 교배하는 인도의 떠돌이 개. 개체수도 많고 유전다양성도 풍부해 개의 기원을 밝히는 연구대상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찰스 다윈은 ‘자연선택에 의한 생물 진화’의 이론을 찾기 위해 가축을 열심히 연구했다. 사람의 선택으로 야생동물이 어떻게 가축이 됐는지를 안다면 진화의 수수께끼도 풀릴 터였다. 그는 관찰을 통해 가축은 야생 친척에 견줘 더 온순하고(사람을 덜 무서워하고), 주둥이가 짧으며, 이가 작고, 발정주기가 짧으며, 귀가 누웠고, 피부나 털 색깔이 없다는 사실 등을 파악했다. 이를 ‘가축화 신드롬’이라 한다.
사람이 야생동물 가운데 마음에 드는 형질을 지닌 개체만 선별해 육종을 거듭하다 보면 이런 형질이 드러난다. 옛 소련 유전학자 드리트리 벨라예프는 1959년부터 수십 년 동안 은여우를 육종해 가축화의 과정을 재현했다. 개처럼 꼬리가 말려 올라가고 귀가 누워 있으며 사람을 반기는 ‘개 여우’는 불과 20세대 동안의 육종으로 만들어졌다(▶
늑대는 왜 개가 되기로 했나).
러시아 세포학 및 유전학 연구소가 온순한 야생 은여우를 계대 배양하여 애완동물로 개발한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최근 발달한 분자유전학은 개의 가축화를 풀 유력한 수단이다. 그러나 늑대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개가 되었는지는 아직도 논란 많은 주제이다. 1만∼4만년 전 유라시아의 늑대에서 개가 기원했다고 알려졌을 뿐이다. 이 수수께끼 가운데 ‘어떻게’를 유전학적으로 해명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어맨다 펜들턴 미국 미시간대 인간유전학과 박사 등 미국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비엠시 바이올로지’ 27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개와 늑대와 유전체를 비교 분석해 가축화 과정의 규명을 시도했다. 이 연구는 특히 개의 표본을 지난 300년 동안 유전형질을 단순화한 개 품종을 넘어 떠돌이개에서 찾았다. 마을 주변을 떠돌면서 먹이를 찾고 자유롭게 짝짓기하는 이 개들은 세계 개 개체수의 4분의 3을 차지하며, 애초 가축화한 개의 유전 다양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인도, 베트남, 포르투갈 등의 떠돌이개 43마리와 전 세계의 야생늑대 10마리의 유전체(게놈)를 비교·분석했다.
베트남의 떠돌이 개. 1만∼4만년 전 처음 늑대를 가축화한 유전적 변이를 간직하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그 결과 연구자들은 늑대에서 개로 변화하면서 유전체의 246곳에서 변이가 일어났음을 확인했다. 이 부위에서 일어난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가축화 과정에서 축적되면서 늑대는 개로 바뀌었다. 이들 변이는 다른 동물의 가축화를 설명할 때 많이 쓰이는 ‘신경 능선 세포’ 가설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펜들턴은 “배아의 신경 능선 세포는 몸의 구석구석으로 이동해 다양한 세포로 분화하는 놀라울 만큼 중요한 세포”라며 “배아의 발달과정에서 신경 능선 세포에 일어난 유전적 변화가 가축화의 여러 형질변화를 일으킨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우리 조상이 신경 능선 세포를 알았을 리 없지만 벨라예프의 실험처럼 온순한 늑대를 선택해 육종하는 과정에서 신경 능선 세포의 변이를 부지불식 간에 선택했다. 연구자들은 이처럼 사람이 온순한 형질을 선택함으로써 유전 변화를 선택했을 수도 있지만, 늑대가 ‘자기 가축화’를 스스로 선택했을 수도 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순한 성격의 늑대가 사람 주변에서 음식 찌꺼기를 얻어먹으며 더 번성해 스스로 가축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자기 가축화’ 현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사람과 자주 만난 생쥐는 가축이 된다).
늑대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개로 가축화됐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온순한 늑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단지 귀가 눕고 얼굴이 짧으며 이가 작은 형질만 출현한 것이 아니라 수면 패턴의 변화도 나타났다. 초기 가축화 과정에서 야행성에서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자는 형질로 변화가 일어났다. 연구자들은 RAI1 유전자에 일어난 변이가 24시간 주기의 리듬을 결정하는 멜라토닌과 세로토닌 분비를 바꾸어 이런 일이 일어났을 것으로 보았다. 사람에게 이 유전자가 누락되거나 중복되는 변이가 일어나면 수면 장애 등 뇌 질환이 발생한다. 개의 온순함과 작은 얼굴은 사람에게 안면 기형이나 과잉 사회성을 일으키는 유전자 변이와 관련이 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Pendleton et al. Comparison of village dog and wolf genomes highlights the role of the neural crest in dog domestication, BMC Biology (2018) 16:64, https://doi.org/10.1186/s12915-018-0535-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