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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생태와진화

내 소리가 제일 커…열대 귀뚜라미의 ‘유혹 앰프’

등록 2018-07-04 15:25수정 2018-07-04 17:50

[애니멀피플]
동굴 울림통, 잎사귀 울림판 이어 배수관 등 인공 시설물도 이용
소리 멀리 퍼져 짝짓기에 유리…땅강아지, 청개구리, 긴꼬리도
짧은꼬리귀뚜라미가 울음소리를 증폭하기 위해 반쯤 마른 나뭇잎 속에서 울거나(왼쪽) 사람이 만든 벽, 계단, 빗물배수관 등에서 우는 사실이 밝혀졌다. 베티나 에레거 외 (2018) ‘동물 행동’ 제공.
짧은꼬리귀뚜라미가 울음소리를 증폭하기 위해 반쯤 마른 나뭇잎 속에서 울거나(왼쪽) 사람이 만든 벽, 계단, 빗물배수관 등에서 우는 사실이 밝혀졌다. 베티나 에레거 외 (2018) ‘동물 행동’ 제공.
귀뚜라미 등 곤충은 짝짓기 상대를 부르기 위해 큰 소리로 운다. 포식자의 눈에 띌 위험도 커지지만 많은 암컷과 짝짓기를 해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서다. 핵심은 가능한 한 큰 소리를 내 멀리 있는 암컷에게까지 들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곤충 가운데는 무작정 큰 소리로 우는 게 아니라 소리를 증폭시키는 독특한 전략을 펴기도 한다.

여름과 가을에 숲에서 가장 흔하게 들리는 소리는 긴꼬리라는 곤충이 낸다. 남아프리카 과학자들은 1975년 과학저널 ‘네이처’에 귀뚜라밋과에 속하는 긴꼬리가 나뭇잎을 울림판으로 활용해 우는 소리를 증폭한다고 처음 보고했다. 이 곤충은 적당한 나뭇잎을 골라 타원형으로 갉아 구멍을 낸 뒤 구멍에 앞발을 걸치고 앞날개를 구멍에 밀착시켜 비비면서 울었다. 날개의 진동은 잎사귀에서 증폭돼 멀리 퍼져 나갔다. 이후 많은 지역 긴꼬리에서 이런 모습이 관찰됐는데, 잎사귀 울림판 덕분에 소리가 4배까지 증폭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나뭇잎에 구멍을 뚫은 뒤 그 속에 들어가 울어 잎사귀를 울림판으로 활용하는 긴꼬리. 나타샤 마터 제공.
나뭇잎에 구멍을 뚫은 뒤 그 속에 들어가 울어 잎사귀를 울림판으로 활용하는 긴꼬리. 나타샤 마터 제공.
소리를 키우는 행동을 하는 동물은 긴꼬리만이 아니다. 땅강아지는 땅속에 뿔 모양의 굴을 파 여기서 소리가 울려 커지는 공명통으로 이용한다. 이런 방식으로 땅강아지는 평지에서보다 12㏈(데시벨) 큰 소리로 울 수 있는데, 암컷을 유인하는 효과도 11배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청개구리의 일종도 나무에 난 구멍을 이용해 소리를 증폭한다. 이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동물이 소리를 키우지만, 사람이 만든 시설물을 이용해 소리를 증폭하는 곤충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베티나 에레거 오스트리아 그라츠대 동물학자 등은 과학저널 ‘동물 행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중·남미 열대지방에 분포하는 짧은꼬리귀뚜라미가 건물의 벽, 콘크리트 계단, 빗물 배수관 등 인위적 시설을 앰프처럼 이용해 우는 소리를 증폭한다고 밝혔다.

이 귀뚜라미는 풀밭에 굴을 파고 사는 야행성 곤충인데 암컷을 찾아 노래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한 연구에 의하면, 이 귀뚜라미는 울 때 소비하는 에너지가 쉴 때의 6배에 이른다. 이 귀뚜라미는 효과적으로 우는 소리를 키우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동원한다. 가장 흔히 쓰는 방법은 굴 들머리에 엄지손가락으로 누른 것 같은 움푹 팬 곳을 만든 뒤 그곳에 들어가 우는 것이다. 우묵한 곳은 접시 안테나처럼 소리를 모아 증폭하는데 평지보다 6㏈ 소리가 커진다. 또 다른 방법은 반쯤 마른 잎사귀를 이용하는 것이다. 잎사귀가 말린 곳에 들어가 울면서 소리가 울려 커지는 효과를 노린다.

인위적 시설물을 소리 증폭에 쓰는 사실이 밝혀진 중·남미 서식 짧은꼬리귀뚜라미. 알케트론,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인위적 시설물을 소리 증폭에 쓰는 사실이 밝혀진 중·남미 서식 짧은꼬리귀뚜라미. 알케트론,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청개구리의 일종이 빗물 배수관을 이용해 우는 소리를 4∼5㏈ 키워 소리의 도달거리를 2배까지 늘린다는 다른 연구를 보고 이 귀뚜라미도 인위적 환경을 활용하는지 실험으로 확인했다. 예상대로 이 귀뚜라미도 인공 시설물을 활용했는데, 소리의 크기는 풀밭에서보다 위에서 13㏈, 앞에서 7㏈ 증폭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귀뚜라미 서식지에는 거미, 전갈, 도마뱀 등 귀뚜라미의 천적이 득실댄다. 수컷의 평균 수명은 노래를 시작한 지 평균 사흘에 그쳤다. 필사적으로 노래해 짝짓기를 마쳐야 하는 상황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귀뚜라미가 인위적 시설을 이용해 소리를 증폭하는 것은 에너지 소비와 포식자에 노출될 위험을 줄이며, 굴 파기 등 기존 소리 증폭 수단보다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인위적 시설을 이용하는 수컷이 더 많은 자손을 남기는지는 이번 실험에서 확인하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Bettina Erregger, Arne K. D. Schmidt, Anthropogenic calling sites boost the sound amplitude of advertisement calls produced by a tropical cricket, Animal Behaviour, 142 (2018) 31e38, https://doi.org/10.1016/j.anbehav.2018.05.02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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