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 말사슴의 거대한 뿔. 봄부터 여름까지 ‘폭풍 성장’을 한 결과인데 암세포보다 빨리 자란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사슴의 뿔은 당연하고 친숙한 존재이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놀라운 진화의 결과다. 해마다 재생하는 사슴뿔의 빠른 성장은 암세포의 증식 방법을 채택했기 때문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유왕 중국 북서 농림 대 생물학자 등 중국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21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반추동물의 유전체를 비교 분석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사슴뿔이 빠르게 자라면서도 암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억제하는 방식이 밝혀져, 사람과 다른 생물의 암 예방과 치료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여러 개의 위로 섬유질 먹이를 소화하는 반추동물은 모두 두개골에 부속물이 난 특징이 있다. 가지가 여럿인 사슴뿔을 비롯해 단단한 소의 뿔, 부드러운 기린 뿔, 뿔 대신 송곳니가 발달한 사향노루와 고라니 등 형태가 다양하다.
반추동물의 계통도. 뿔의 진화는 한 번 일어났으며, 사향노루(Moschdae)와 고라니(Hydropotes inermis)는 뿔 없는 상태로 독립적인 진화를 했음을 보여준다. 왕 외 (2019) ‘사이언스’ 제공.
연구자들은 반추동물 44종의 유전체를 분석해 “이런 다양한 뿔이 약 2000만년 전 일어난 단 한 번의 진화적 사건의 결과”라고 밝혔다. 두개골에서 신경, 뼈, 피부 조직을 형성하는 일을 돕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뼈로 된 돌출물이 생겨났다. 사향노루와 고라니는 어떤 이유에선가 이 유전자의 작동이 멈추어 뿔이 자라지 않게 됐다.
연구자들은 특히 빠른 속도로 자라고 해마다 재생하는 사슴, 무스, 엘크 뿔의 유전적 기원에 주목했다. 수사슴은 짝짓기 경쟁을 위해 크고 멋진 뿔을 키우지만, 늦가을이나 이른봄 떨구고 번식기에 맞춰 새로운 뿔이 자란다. 일부 수사슴이 겨우내 거추장스러운 큰 뿔을 유지하는 이유는 포식자 늑대에 대항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진다(▶관련 기사:
번식기 끝난 수사슴, 큰 뿔 왜 달고 다니나).
북아메리카 엘크 수컷이 뿔로 겨루고 있다. 뿔은 겨우내 늑대를 막는데 요긴하지만, 빨리 떨궈야 짝짓기 때 더 크고 멋진 뿔이 돋는 딜레마에 놓인다. 야쿱 프리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봄부터 여름까지 짧은 기간 동안 수사슴은 완벽한 뿔을 만들어야 한다. 말사슴(백두산사슴)의 뿔은 이 기간 하루 평균 1.7㎝씩 자라 번식기까지 뿔 무게만 30㎏에 이르게 된다.
연구자들은 이런 뿔의 성장이 보통의 뼈라기보다는 암에 걸린 뼈와 비슷하게 자란다고 밝혔다. 보통 종양의 형성과 성장을 촉진하는 데 관여하는 8개의 유전자가 사슴의 유전체에 활성화돼 있었다.
놀랍게도 사슴은 뿔 성장에 암세포의 작동을 이용하면서도 동시에 세포의 성장을 엄격하게 조절하는 장치가 돼 있어 암 발현을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 사슴은 다른 동물보다 암에 덜 걸린다. 실제로 미국 필라델피아와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추정한 사슴의 암 발생률은 0.4∼0.8%로 다른 포유류의 2.1∼4.6%에 견줘 5분의 1 수준이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Yu Wang et al, Genetic basis of ruminant headgear and rapid antler regeneration,
Science 364, eaav6335 (2019). DOI: 10.1126/science.aav6335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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