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척하는 유럽 개미귀신. 최고 61분 동안 꼼짝 않는 사실이 밝혀졌다. 나이절 프랭크스 제공
죽은 척해 포식자를 피하는 동물은 많다. 그러나 명주잠자리 애벌레인 개미귀신의 회피행동은 무려 1시간 넘게 계속되기도 한다.
왜 죽은 듯이 꼼짝 않으면 공격을 받지 않는 걸까. 얼마나 오래 그런 행동을 해야 효과가 있는 걸까. 개미귀신을 대상으로 해 이런 궁금증을 푼 연구결과가 나왔다.
나이절 프랭크스 영국 브리스톨대 교수 등은 과학저널 ‘바이올로지 레터스’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개미귀신은 장기간 그것도 예측불가능한 기간 동안 죽은척함으로써 포식자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며 “이런 전략이 개미귀신의 생존율을 높인다는 모델링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개미귀신은 개미지옥의 애벌레 단계를 거쳐 명주잠자리가 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아름다운 명주잠자리가 돼 날아가기 전 애벌레 상태인 개미귀신은 일정한 크기의 모래를 골라 깔때기 모양의 함정인 개미지옥을 파고 한가운데 숨어 먹이를 기다린다. 개미 등이 함정에 빠져 허둥대며 사면을 기어나가려 하면 모래를 뿌려 미끄러뜨린 뒤 길고 날카로운 주둥이로 붙잡아 체액을 빨아먹는다.
무서운 포식자인 개미귀신도 새들에게는 맛있는 간식거리다. 여러 개의 개미지옥이 집단을 이뤄 위험을 분산시키는 것 말고 개미귀신이 포식자를 피할 비장의 무기로 마련한 것이 바로 죽은척하기이다.
프랭크스 교수는 2016년 다른 연구를 하면서 개미귀신을 저울에 달 일이 있었다. 달아나려는 벌레 무게 재는 일이 힘들 것이란 애초 예측과 달리 벌레는 저울 위에서 한동안 꼼짝 않고 얼어붙었다.
개미귀신이 죽은 척한 기간은 수 초에서 놀랍게도 61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찰스 다윈이 기록한 23분 동안 죽은척하던 딱정벌레보다 긴 시간이었다. 게다가 같은 개체도 측정할 때마다 기간이 달랐다.
유럽 개미귀신의 정상적 모습(왼쪽)과 죽은 척할 때의 모습. 프리츠 겔러-그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개미귀신이 꼼짝하지 않고 있는 기간이 길뿐 아니라 예측불가능하다는 게 중요하다”며 “포식자에게는 언제 다시 피식자가 되살아나 주의를 끌어 사냥할 수 있을지 예측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설명했다.
바위종다리 등 포식자는 함정에서 개미귀신을 끄집어내다가 떨어뜨리곤 한다. 새들은 움직이는 먹이를 쫓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동작을 멈추고 얼어붙은 개미귀신은 마치 시야에서 사라진 것 같은 효과를 거둔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연구자들은 개미지옥이 몰려있는 곳에서 새 한 마리가 개미귀신을 사냥하는 상황을 여러 조건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모의해 봤다. 바위종다리는 사냥하다 떨어뜨려 시야에서 사라진 개미귀신을 무한정 기다리기보다는 옆 함정을 뒤지는 편이 나을 것이다. 또 개미귀신도 끝없이 얼어붙어 있다가는 다른 청소동물의 먹이가 될지 모른다.
포식자에 잡혀 죽은척하는 브라질의 청개구리.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모델링 결과 개미귀신의 죽은척하기는 효과가 있어 생존율이 20%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랭크스 교수는 “죽은척하기가 포식자의 시간을 잡아먹어 다른 먹이를 찾도록 부추긴다”고 말했다.
죽은척하는 시간을 줄이면 개미귀신의 사망률이 커졌다. 반대로 그 시간을 더 늘렸더니 생존율을 늘리는 효과가 별로 없었다. 연구자들은 “이것은 포식자와 피식자 사이의 군비경쟁이 죽은척하는 시간은 더는 나아질 것이 없는 한계까지 길어졌음을 뜻한다”고 밝혔다.
프랭크스 교수는 개미귀신을 사냥하는 바위종다리의 처지에서 이번 연구결과를 이렇게 비유해 설명했다. “먹음직한 산딸기가 열린 덤불에서 한 나무의 딸기를 따 먹기 시작한다. 쉽게 딸 수 있는 열매를 다 땄을 때 더 안쪽의 딸기를 딸 것인지 아니면 포기하고 쉬운 옆의 딸기나무로 옮길 것인지 정해야 한다.” 개미귀신의 죽은척하기는 포식자가 다른 딸기나무로 옮기도록 부추기는 셈이다.
악취와 체액 등을 내면서 죽은 척해 포식자를 피하는 뱀. 버나드 듀폰,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죽은척하는 행동은 포유류, 파충류, 어류 등 동물계에 널리 나타난다. 돼지코뱀은 포식자의 공격을 받으면 몸을 뒤집어 만 채 악취를 내고 체액을 흘린다. 유대류인 주머니쥐도 악취를 풍기며 죽은척하기로 유명하다.
인용 논문: Biology Letters, DOI: 10.1098/rsbl.2020.089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