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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농장동물

“달래, 겅퀴, 완두야! 미안해…” 소를 보내는 마지막 인사

등록 2021-08-17 10:43수정 2021-08-17 16:34

[애니멀피플] 현장/도살장 가는 길 지킨 활동가들
동물해방물결 ‘소 살리기 펀딩’ 통해 소 6마리 구조
구조 일정 못 맞춘 9마리의 소는 결국 도살장으로
동물해방물결의 ‘인천 소 구하기’ 프로젝트에서 구조 대상이 됐다가 목장에 남겨진 9마리의 소가 지난 10일 도살장으로 향하는 트럭에 실려 바깥을 보고 있다. 동물해방물결 제공
동물해방물결의 ‘인천 소 구하기’ 프로젝트에서 구조 대상이 됐다가 목장에 남겨진 9마리의 소가 지난 10일 도살장으로 향하는 트럭에 실려 바깥을 보고 있다. 동물해방물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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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인사는 이른 새벽 시작됐다. 지난 10일 새벽 5시 인천시 계양산 둘레길 인근 주차장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아직 어두컴컴한 숲길 입구에 모인 이들은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 활동가들이었다. 이들은 이날 도살장으로 실려 가게 될 9마리의 소들을 배웅하기로 했다.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솔밭길을 10여 분 올라가자 소들의 모습이 보였다. 허름한 축사는 고즈넉한 숲을 배경으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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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15마리 구조에 나서게 된 사연

이날의 운명을 알 리 없는 소들은 사람이 나타나자 울타리 주변에 모여들었다. 양 귀끝과 코에만 까만 점이 있는 새하얀 소가 제일 먼저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름이 ‘달래’라고 했다. “아는 척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호기심이 많은 것 같기도 해요.” 확실한 건 소들을 처음 만난 지난 6개월 전보다는 서로 더 익숙해졌다는 사실이다.

10일 새벽 동해물 이지연 대표가 축사로 들어오자 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10일 새벽 동해물 이지연 대표가 축사로 들어오자 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동물해방물결(이하 동해물)이 인천 ㄱ목장의 “소들과 관계 맺기”를 시작한 것은 지난 2월이다. 이곳은 2019년 200여 마리의 개들을 사육하는 불법 개농장인 것이 드러나며 논란을 빚었다. 축사 바로 뒤쪽으로 견사가 붙어 있었다. 개들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으로 전원 구조가 결정 됐지만, 같은 농장주가 운영하던 축사의 소들은 달랐다. 보통 18개월~24개월이면 도축 되는 소들은 농장의 강제철거가 결정되면 꼼짝없이 도살장으로 끌려갈 운명이었다.

고민 끝에 동해물이 15마리의 소를 구조하기로 했다. 이들은 지난 4월 농장주와 협약서를 쓰고, 추석 전까지 소들의 구조 비용을 마련하기로 했다. ‘인천 소 살리기’ 프로젝트였다. 6월부터는 소의 구조 비용 7500만원을 마련하는 모금을 시작했다. 더불어 구조 뒤 소들이 여생을 평화롭게 보낼 수 있는 생추어리(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섬진강 범람 이튿날인 지난해 8월9일 전남 구례군 양정마을의 한 건물 지붕에 소들이 올라가 있다. 연합뉴스
섬진강 범람 이튿날인 지난해 8월9일 전남 구례군 양정마을의 한 건물 지붕에 소들이 올라가 있다. 연합뉴스

전례없는 소 생추어리 프로젝트는 도전적인 일이었다. 수천 만원의 구조 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적당한 부지를 찾는 일은 더 어려웠다. 소들을 방목하려면 농림축산식품부의 ‘산지생태축산’ 기준에 따르는 수천 평의 땅이 필요하고, 전염병으로 인한 살처분 위험 탓에 생추어리 근처에는 축사나 도살장이 없어야 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정면돌파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지연 대표는 그것을 “단 한 명이라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이들은 종 평등을 위해 동물을 셀 때도 마리 대신 ‘목숨 명(命)’을 쓰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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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동·엉겅퀴…들풀의 이름을 가진 소들

“작년 구례 수해 때 소들에 대한 관심이 컸어요. 물살을 피해 소들이 지붕에 올라가고, 섬으로 헤엄쳐 갔고, 산사로 피신했었잖아요. 그렇게 어렵사리 살아남은 소들이 결국 도살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뒤늦게 ‘우리가 한 명이라도 데려왔었더라면 어땠을까’ 안타까웠어요. 생추어리가 꼭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관련기사: ‘지붕 위 그 소’는 어떻게 됐을까)

7일 임시보호처인 강원도 인제군 한 목장에 도착한 ‘메밀’과 ‘머위’가 물을 마시고 있다. 동물해방물결 제공
7일 임시보호처인 강원도 인제군 한 목장에 도착한 ‘메밀’과 ‘머위’가 물을 마시고 있다. 동물해방물결 제공

펀딩 두 달째, 7월 말까지 프로젝트는 나름 순행 중이었다. 시민 1600여 명이 구조 비용 모금에 참여했고, 생추어리 건립 전까지 소들이 지낼 임시보호처도 어렵사리 구해졌다. ‘악재’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불법 대지 위에 세운 축사의 철거일이 앞당겨진 것이다. 애초 ‘대목’인 추석 전까지는 도살 계획이 없다던 농장주는 “소들을 8월10일쯤 도살할 예정이니 그 전에 데려가라”고 통보했다.

모금은 목표액의 61%(4500여 만원)가 달성된 상태였다. 15마리 중 6마리만 구조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프로젝트 시작 때부터 가장 우려했던 일”이 닥치고 만 것이다. 소 생추어리 프로젝트를 맡은 동해물 한승희 활동가는 ‘일부 구조’가 결정되자 소들에게 이름을 붙여준 것을 후회했다. “어쩌자고 책임도 못질 생명들에게 이름을 붙였을까, 미안함이 앞섰어요.”

유난히 붙어 다니는 두 녀석에게는 엉이와 겅퀴란 이름이 붙여졌다. 동물해방물결 제공
유난히 붙어 다니는 두 녀석에게는 엉이와 겅퀴란 이름이 붙여졌다. 동물해방물결 제공

활동가들은 소들의 생김새와 개성에 따라 각각의 이름을 준 터였다. 온몸이 유난히 하얀 소는 백도라지, 작은 몸집에 코가 반짝이는 들콩이, 팬더처럼 양쪽 눈 주변에 얼룩이 있는 소는 봄동, 유난히 붙어 다니는 두 녀석에게는 엉이와 겅퀴란 이름이 주어졌다. 모두 들풀의 이름을 따랐다. “소들을 한 명 한 명 기억하고 싶어서” 만든 이름은 불가피한 현실 앞에서 활동가들을 고뇌에 빠뜨렸다. ‘누구를 구하고, 누구를 남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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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구하고, 누구를 남길 것인가

8월3일 고심 끝에 강원도 인제군의 임시보호처로 갈 소들이 정해졌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축사의 형태가 기준이 됐다. 세 칸으로 나뉜 축사 중 출입구로의 이동이 가장 수월한 왼쪽 칸의 5마리를 보내기로 한 것. 그리고 왼쪽 칸과 중간 칸의 가림막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왼쪽으로 넘어온 한 마리가 포함됐다. ‘막차’를 탄 소는 엉이였다. 그렇게 머위, 메밀, 미나리, 부들, 창포, 엉이는 7일 새 삶을 찾아 인제로 떠났다.

도살장 차량이 도착하기 전 활동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소들과 인사를 나눴다.
도살장 차량이 도착하기 전 활동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소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로부터 사흘 뒤 남겨진 소 9마리는 이른 아침부터 축사에 온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중간 문을 열었을 때 달래도 문으로 다가왔었어요. 간발의 차로 엉이가 나오긴 했지만요….” 달래와 인사를 나누던 이지연 대표가 아쉬운 듯 당시 상황을 전했다.

소들을 도살장으로 실어갈 트럭은 6시30분에 도착한다고 했다. 한시간 반 남짓 마지막으로 소들을 만날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활동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소들의 마지막 모습을 간직하려 노력했다.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소들의 모습을 스케치하고, 쪼그려 앉아 소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삼삼오오 서서 그동안 소들과 만났던 추억들을 이야기했다.

10일 오전 7시 ㄱ목장에 남은 소 9마리가 도살장으로 가는 트럭으로 옮겨지고 있다. 동물해방물결 제공
10일 오전 7시 ㄱ목장에 남은 소 9마리가 도살장으로 가는 트럭으로 옮겨지고 있다. 동물해방물결 제공

날이 밝아오자 농장주가 나타나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비탈길을 따라 동물운송용 5톤 트럭이 올라와 축사 입구에 자리를 잡았다. 과연 소들이 순순히 트럭에 오를까 싶었지만, 뜻밖에도 승차에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며칠 전 옆 칸 애들이 트럭 타는 걸 봐서 그런가 봐요.” 소들은 운송기사와 농장주가 미리 트럭 뒷 칸에 연결해 놓은 장막 안으로 순순히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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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이름이라도 기억해주길”

오전 7시 9마리의 소가 전원 트럭에 올랐다. 활동가들은 소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차량 가까이로 모여들었다. 차에 시동이 걸렸다. “달래, 겅퀴, 꽃다지, 둥굴레, 들콩, 박하, 백도라지, 봄동, 완두야! 잘 가. 미안해.” 한승희 활동가의 호명을 마지막으로 차는 도살장으로 출발했다. 그는 그간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지금은 이름 붙여주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오늘 떠난 9명의 존재와 죽음을 단 한 명이라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한승희 활동가(왼쪽 두번째)의 호명을 마지막으로 차는 도살장으로 출발했다. 동물해방물결 제공
한승희 활동가(왼쪽 두번째)의 호명을 마지막으로 차는 도살장으로 출발했다. 동물해방물결 제공

이날 죽은 9명의 소를 ‘비운의 소’라 할 수 있을까. ㄱ농장의 15마리 소는 모두 2019년 10월 경기 파주시의 농장들에서 태어난 홀스타인종 수소였다. 우리가 흔히 ‘젖소’로 알고 있는 이 얼룩소들은 수컷으로 태어나 3일 만에 어미 소와 떨어져 ‘고기’로 길러졌다. 4개월 때 비육농장으로 팔려가 몸집을 키워온 송아지들에게 이 농장은 죽음을 기다리는 세 번째 거처였다. 매해 도축되는 약 80만 마리(2020년 88만 마리, 통계청)의 소들이 이 같은 삶을 산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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