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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농장동물

뚱보소 ‘투플이’는 풀냄새가 그립다

등록 2018-04-19 09:00수정 2018-04-19 10:10

[애니멀피플] 마승애의 동물학교
‘푸른 초원의 풀을 뜯을 수 있다면…’
좁은 축사에서 평생을 사는 소의 꿈
좁은 축사에서 먹이를 먹고 있는 소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좁은 축사에서 먹이를 먹고 있는 소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철컹! 스르릉~! 겨울동안 닫혀있던 축사 문이 드디어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왔다. 지난겨울은 지독히 춥고 길었기에 푸근한 봄바람이 더없이 반가웠다. “이것 봐! 맛있는 풀냄새야.” “오! 나무와 흙냄새도 나~!” “옆집엔 꽃을 심었나 본데?” 흥분한 소들이 연신 코를 벌름거리며 떠들어댔다. 마치 축사 밖 저편 어느 곳에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물론 나는 아주 잠깐만 바깥 구경을 해봤을 뿐 평생 생초(풀)를 직접 뜯어먹어 본 적이 없다. 바람을 따라 온 풀 냄새는 언젠가 놀러 온 어린아이가 던져 준 생초 맛을 기억나게 해주었다. 그땐 그게 뭔지 몰라서 조금만 살짝 씹어봤는데, 기가 막히게 향긋했었다. 하지만 그뿐, 바깥의 초원에 펼쳐진 생초를 우물우물 뜯어먹는다는 건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농장의 축사에는 100여 마리의 소들이 4~5마리씩 쇠창살로 갈라놓은 방에 들어가 살고 있었다. 농장 주인은 옥수수나 곡물 위주로 만든 사료에 살 찌우기 좋다는 이런저런 제제를 섞어서 우리에게 줬다. 모두들 할 일이라고는 먹고 자는 일밖에 없어서 사료가 급여대를 가득 채우면 앞다투어가며 먹어치우곤 했다. 농장 주인이 주는 사료는 달고 맛있지만 먹고 나면 이상하게 뱃속에 가스가 차고 영 불편했다.

‘가끔이라도 생초를 먹어봤으면….’

봄바람을 마시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소들이 시끄럽게 울어댔다. “음머~! 음머~!” 돌아보니 농장 주인이 커다란 사료 포대를 들고 우리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뒤에 있던 ‘투플이’가 다른 소들을 밀어젖혔다. “저리 가, 비켜! 비키란 말이야!” 우리 방에서 가장 뚱뚱한 투플이는 늘 그렇게 신경질적이었다.

우리들이 지내는 방은 겨우 몸을 돌릴 수 있는 정도로 비좁다. 그래서 매번 움직일 때마다 몸이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유독 몸이 비대한 투플이는 제 몸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인지 항상 애꿎은 소들에게 화를 내곤 했다. 얼마 전엔 같이 사는 ‘순남이’를 밀었다. 순남이는 칸막이용 철봉에 부딪혀 피를 보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렇게 사고를 치는데도 농장 주인은 투플이를 가장 좋아했다. 몸이 가장 뚱뚱해서 “마블링이 투플러스는 나올 거”라며, 이름도 투플이라 부르며 애지중지했다.

그러나 투플이는 농장 주인의 손길이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은 듯했다. 투플이는 자주 아팠다. 그렇게 고도비만 상태이니 몸이 성할 리가 없었다. 설사도 자주하고 폐렴도 자주 걸리고 네 다리의 관절은 운동부족으로 몸무게를 견디지 못해 심하게 절룩거렸다. 투플이가 매번 아파 누울 때마다 농장 주인은 커다란 주사를 놓았다. 주사를 맞고 나면 투플이는 좀 나아지곤 했다.

좁은 우리에 부대끼며 소의 몸에 지저분한 오물이 묻어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좁은 우리에 부대끼며 소의 몸에 지저분한 오물이 묻어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아이씨, 안 비켜?” 사료를 다 먹고 난 투플이는 또 신경질을 냈다. 다들 말썽이 나는 것이 싫어서 한쪽으로 몸을 피했다. 곧 투플이는 가장 푹신하고 마른자리에 가서 누웠다. 우리가 서 있는 바닥은 딱딱한 콘크리트다. 그마저 똥이 겹겹이 쌓여 발목까지 차올라 있었기에, 그 자리가 그 자리였다. 아무튼 그나마 조금이라도 낫다 싶은 자리를 차지하고서도 투플이는 다리가 아픈지 자꾸 몸을 돌려댔다. 결국 투플이의 온몸에 똥이 묻었다.

‘엄마와 함께 살던 농장에는 톱밥이 깔려있어서 깨끗하기라도 했었는데….’

그 시절, 따뜻한 엄마 젖을 먹고 나면 엄마는 나를 핥아서 깨끗이 해주었었다. 그러고 나면 온몸이 개운했다. 하지만 그렇게 지낸 건 잠시뿐, 나는 태어난 지 겨울 3달 만에 젖도 못 떼고 엄마와 헤어졌다. 엄마 품이 그리워서 4박5일 동안 동네가 떠나가라 울었다. 그때 농장 주인은 나에게 계속 미안하다며 “하지만 소로 태어난 너의 운명이니 어쩔 수 없다” 했다. 그는 울다 지쳐 쓰러진 나를 위해 수의사도 불러주었다.

그 다정했던 손길도 거기가 끝이었다. 내가 다 낫고, 수개월이 지나자 나는 심하게 흔들리는 차에 태워졌고, 한참 후도착한 곳이 바로 이 농장이었다. 오는 도중에 잠시 바라본 햇빛과 꽃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리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그날 이후로 줄곧 나는 비좁은 축사 안에 영영 갇혀버렸다.

그런데 우리의 고된 여행은 여기가 끝이 아닌 모양이었다. 며칠 전이었다. “아이 더러워! 온몸에 똥투성이라니 냄새가 이만저만이 아니군!” 내가 혼잣말을 내뱉자 내 밥을 빼앗아 먹으러 온 까치가 놀리는 투로 말했다. “똥이 쌓인 걸 보니 너도 곧 도살장에 끌려가겠군. 곧 가겠어.”

“도살장이 어딘데?” “도살장은 너희들의 무덤이야. 사람들이 너희들에게 왜 이 맛있는 밥을 주는 줄 알아? 그게 다 뚱보소로 키워서 잡아먹으려고 하는 거지.” “그냥 잡아먹으면 되지, 왜 뚱보로 키우는 건데?” 도통 이해가 안 가서 내가 물었다.

“뚱보소가 되어야만 마블링이 생겨 고기가 부드럽다지? 열심히 운동한 소는 근육에 지방이 사라져서 질겨질 수밖에 없지. 당연한 거 아냐? 어리석은 인간들! 그게 자기들 건강에 안 좋은 것도 모르고! 입에 맛난 것만 찾다니…. 어차피 풀이 아닌 사료는 나도 빼앗아 먹을 수 있으니 나만 횡재한 거지 뭐야. 히히히 까악! 까악!”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까치의 말은 사실이 아닐 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트럭에 실려서 가는 곳이 혹시 푸른 초원은 아닐까? 찬란한 햇빛을 받으며 푹신한 풀밭을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넓은 초원! 향긋한 풀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닐까?”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마블링 소고기는 사람에게도, 소에게도 재앙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마블링 소고기는 사람에게도, 소에게도 재앙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재앙이 되어 돌아올 일등급 마블링 소고기

소고기의 근육 내 지방을 측정하여 지방 함량이 많을수록 높은 마블링 등급을 매깁니다 . 높은 등급의 고기는 낮은 등급에 비해 가격이 무려 몇 배 이상 차이가 나지요. 소비자들이 많이 찾고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으니 농장주들은 소의 마블링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소를 키웁니다. 좁은 곳에 가둬 운동을 최소화하고, 살이 많이 찌는 곡물 위주의 사료를 먹이는 거죠. 생태적으로 소는 풀이 주식이어야 하는데, 곡물만 먹으니 고지혈증 등을 앓으며 심한 고통을 받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블링은 현대인에게 많은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인 오메가6지방산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소가 건강한 고기를 생산한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만한 상식입니다 . 뉴질랜드나 영국 등 안전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나라에서는 이러한 마블링에 따른 등급제가 아닌 ‘무엇을 먹여 어떻게 키우는지’를 소고기 분류 기준으로 삼습니다. 풀을 먹여 방목 사육한 저지방 소고기는 그 풍미와 식품 안전성으로 최고의 가격을 받고 소비자에게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

동물복지축산물을 아시나요 ?

동물의 5대 자유를 지켜주는 동물복지 축산이 국내에도 닭 , 돼지를 이어 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 당장 육식을 그만두지 못하더라도 소중한 생명을 내어준 동물들이 고통 없는 삶을 살도록 지켜주는 것은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입니다 . 조금 덜먹게 되더라도 나에게 안전하고 동물에게도 고통이 적은 동물복지축산물을 찾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

마승애 동물행복연구소 ‘공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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