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식 밀집 닭장인 ‘배터리 케이지’에서 사육되는 산란계들. 세계적 식품기업은 ‘케이지 프리’를 선언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처음 농장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머리카락이 거꾸로 서는 듯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충격을 받았다. 일렬로 칸칸이 늘어선 철제 틀은 암퇘지의 몸만 겨우 들어갈 수 있게 만든 맞춤형 박스였고, 그 안에 갇혀 극단의 무료함만 허용된 암퇘지들은 살아있는 자체가 정교하게 세팅된 ‘기계적 작동’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충격은 암퇘지에서 끝나지 않았다. 암퇘지가 한 마리당 한 칸의 영역을 부여받은 것은 그나마 축복이었다. 알을 낳는 암탉은 그보다 더했다. A4 용지 한 장도 채 되지 않는 비좁은 케이지에 감금된 채 동료 암탉과 면적 차지를 위한 생존 투쟁을 하며 살고 있었다. 날개 있는 동물이건만 시원하게 날개를 펴본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그런 가운데 알 낳는 소임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암컷으로 태어난 원죄라는 표현보다 더 적절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부당함에 대항할 능력을 원천적으로 박탈당한 존재들이었다.
‘인간 동물’ 사회는 물리적, 정신적 억압과 침해를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기초적인 도덕룰이다. 즉 ‘느끼는 능력이 있는 존재’에 대한 당연한 권리다. 그런데 느끼는 능력이 있는 존재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그동안은 우리 인간 동물만이 가지는 가치라고 생각해왔다. 아니, 사실 생각이랄 것도 없이 인간 동물이 아닌 ‘비인간 동물’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니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도 허락지 않는 공간에 가두어놓고 새끼나 알을 찍어 내놓는 기계로 취급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런 사실들을 알게 된 인간 동물의 마음은 편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인간 동물의 생명 감수성은 느끼는 존재 모두에 대한 자각을 요구한다. 또한 생산성 지향의 산업은 그에 상응하는 병폐가 생긴다. 인수공통 전염병의 발생, 식품안전을 위협하는 요인 등 인간 동물에게 위협이 다가왔다. 우리도 조류 인플루엔자, 구제역, 살충제 달걀 파동 등 그 경험을 하는 중이다. 자성의 요구가 발생한다. 서구사회가 동물복지를 일찍이 수용한 이유 중 하나다. 중요한 것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이다.
케이지 프리를 선언한 미국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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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부터 23일까지 체코 프라하에서 ‘오픈 윙 얼라이언스’(Open Wing Alliance) 연례회의가 개최됐다. 올해 39개국에서 온 40여개 단체가 모인 이 회의는 암탉의 케이지 사육 종식을 위한 국제연대체다. 가입 단체들은 각 나라의 사회 특성을 고려하여 운동방식을 기획하며 실패를 공유하고 성공을 위한 목표를 설정해 서로의 역량 강화와 연대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전략을 논의했다.
배터리 케이지(공장식 밀집 닭장) 사육 중단을 고민하고 있는 우리와 달리 서구의 단체들은 ‘엔리치트 케이지’(Enriched cage)를 포함한 모든 케이지 종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은 배터리 케이지가 금지돼 있으나 엔리치트 케이지 사육이 남아 있다. 이 케이지는 닭 고유의 본능인 횃대 오르기 등을 충족시킬 수 있어 배터리 케이지보다 개선된 것이다. 그러나 닭의 움직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케이지 특성상 그 조차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요구까지 갔고, 독일은 케이지 자체가 거의 없다.
유럽연합이 규정으로써 배터리 케이지를 금지한 것과 달리 미국의 기업들은 자사의 영업과 마케팅 차원에서 ‘케이지 프리’를 선택했다. 코스트코, 맥도날드 등 300여개의 유통업체와 외식업체, 생산업체들은 2016년에서 2025년을 목표로 케이지 달걀을 판매하지 않거나 음식에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이런 국제적 흐름을 한국 기업들은 언제까지 강 건너 불 보듯 할 것인지 개탄스럽다. 우여곡절 끝에 올 8월부터 달걀의 난각에 사육환경 표시제가 시행된다. 난각 표시만으로는 부족하니 포장재에 표시해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2017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조사한 국민인식 조사에서는 국민의 85.3%가 농장동물 복지 향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70.1%는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 축산물을 직접 구입할 의향까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2년(36.4%)에서 5년 사이 무려 33.7%포인트가 상승한 것이다.
여론조사와 장바구니의 현실은 차이가 있다는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런 꾸준한 인식 변화는 장바구니의 변화도 예고하는 것이다. 유통 또는 식품 기업들이 국제적 동향을 남의 일로만 여기지 않고 향후 소비자의 변화를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인지 기업 철학과 운영에 반영해야 할 때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
※‘동물의 친구들’에서는 애니멀피플과 함께하는 동물보호단체의 고민과 목소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