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호텔에서 열린 제2회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에서 동물운동 활동가들이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자들 제공
“치킨은 살 안 쪄요, 치킨은 죽어요!”
지난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호텔의 제2회 배민 치믈리에 자격 시험장. 갑자기 10여명의 젊은 청년들이 종이 피켓을 들고 무대에 난입했다.
“동물 사체 감별사라니”, “치킨은 살 안 쪄요, 치킨은 죽어요” “이 냄새는 30일 된 병아리 냄새”… 시위자들은 ‘배달의 민족’ 글씨체로 인쇄한 피켓을 들고 있었다. 장내는 소란해졌고 호텔 측의 제지로 기습시위는 5분 만에 끝났다.
‘치믈리에’는 치킨 맛을 감별하는 전문가로, 음식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배민)을 운영하는 (주)우아한형제들이 발급하는 민간 자격증이다. 배민 측의 말을 들어보면, 이번에 두 번째로 열린 치믈리에 자격시험 모의고사 응시자는 57만명이었으며, 2만7000여명이 통과했다. 이 중 500명에게 이날 시험 응시 기회를 준 것이다. 시험은 치킨과 관련한 문제를 풀고, 치킨 샘플 10개를 먹으며 치킨을 맞추는 실기시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23일 (주)우아한형제는 23일 입장문을 내어 시위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이 업체는 “행사에 끼친 직간접적 피해와 행사 참가자들의 정신적·정서적 피해를 초래한 부분에 대해 수사기관을 통해 정식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애니멀피플’은 치믈리에 기습시위에 참여한 14명 중 리더인 김명진(가명·서울 거주)씨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시위 사나흘 전 개별 활동가들이 게릴라성으로 모여 기습시위를 준비했다고 한다. 그는 인터넷에 악성 댓글이 많아 시위 참여자의 신상은 밝히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시위를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는지?
“(7월18일에서 22일까지) 대구에서는 ‘치맥 페스티벌’이 열렸습니다. 그 뒤 치믈리에 자격시험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닭을 희화화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이번 시위를 기획했습니다. 지인과 지인의 지인들이 모였습니다.”
-평소 채식을 하나요?
“채식하게 된 지는 1년쯤 됐고, 비건(완전 채식주의자)으로 생활한 지는 200일 정도 됐습니다. 동물권과 관련한 활동을 시작하며 채식을 시작했죠.”
기습시위는 약 5분만에 호텔 측의 제지로 끝났다. 시위자들 제공
-이번 시위에서 어떤 메시지를 알리고 싶었나요?
“모든 사람에게 닭을 먹지 말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닭이 치킨이 되는 과정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치믈리에 자격시험 과정에서 치킨을 맛보는데, 닭이 어떻게 자라고 도축되는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맥락이 삭제된 채 치킨이 ‘치느님’으로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게다가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배민의 홍보문구). ‘1인1닭’이라고 유머로 소비하는 것도 잘못되었고요. 게다가 (주최 측에서) 농림축산부에 ‘치믈리에’를 민간 자격증으로 등록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치킨이 되는 닭은 어떻게 자라고 도축되는지 자세하게 알고 싶습니다.
“닭이 치킨이 되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30일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 내에 적은 사료로 가슴살을 찌우기 위해 사육됩니다. (이렇게 자란 닭들은) 탈수 증세를 보이거나 절름발이가 됩니다. 또한 심장병까지 초래합니다.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폐사하는 닭들도 많습니다. 공장식축산 시스템에서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이번 시위가 오히려 배달의 민족만을 홍보한 것은 아닐까요?
“(동물권 시위에 관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합니다. 치믈리에 시험장 입구에서 시위를 벌였다면 이 정도 화제가 됐을까요? 배민 측은 오히려 쉬쉬하고 계속 행사를 진행했을 것입니다.”
-화제성을 위해 이런 형태의 시위를 기획한 것인가요?
“(기존의) 다른 동물권 시위들이 화제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약자의 시위가 항상 그러하듯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렇게라도 소수의 인원을 모아서 기습시위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이해해주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희의 활동으로 인해 적은 사람들이라도 마음의 동요가 있었다면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기사 댓글을 보면, ‘그럼 치킨을 먹지 말라는 거냐’는 반응도 있습니다.
“뉴스 자체가 ‘치킨 먹지 말라’ 강요하는 듯한 이야기로 나갔습니다. 잘못 보도됐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닭을 먹지 말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닭을 먹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공장식 축산의 참혹한)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이번 시위를 통해 사람들이 치킨의 소비를 줄이든지 안 먹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더불어 치킨을 ‘치느님’이라고 신성화하는 것도요.”
-앞으로 개인 활동가들끼리 모여 단발성 시위를 하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때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
안예은 교육연수생,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