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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농장동물

그 시절 바둑이의 죽음, 지금은 처벌될 수 있을까?

등록 2018-12-31 15:43수정 2018-12-31 16:42

[애니멀피플] 동물의 친구들
인천 개 전기도살 사건에서 드러난
동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무지와 잔인함
잔혹한 도살에도 인도적 배려가 필요해
도살자의 손에서 벗어나려 사투하는 개, 개들은 인간의 행동이나 음성언어를 가장 잘 이해하는 동물이다.
도살자의 손에서 벗어나려 사투하는 개, 개들은 인간의 행동이나 음성언어를 가장 잘 이해하는 동물이다.
어릴 적 할머니 댁 인근에는 배밭과 논이 있었다. 지금까지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날, 나는 거기서 개를 목매달아 죽이는 어른들을 목격했다. 목 매달린 채 매 맞고 있던 개는 우리 집 ‘똘이’만한 크기의 바둑이었다. 그 자리에서 도망칠 때 마음 속에서 솟구쳤던 감정들. 지금 성인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증오, 멸시, 적대, 자괴감 심지어 살의와 같은 것들이었다.

1991년 동물보호법이 제정된 이래 그 실효성이 계속 문제시되어 왔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 목격했던 바둑이의 죽음, 지금은 처벌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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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성’을 새로 정의하다

인천의 한 개농장에서 일하는 남성이 전기 쇠꼬챙이를 개들의 입에 물려 도살하다 고발되었다. 동물권행동 카라와 동료 단체들이 이 사건을 알게 된 건 지방법원에서 이 사건에 무죄 판결을 내린 후였다. 사건이 알려지자 약 4만 명의 시민들이 판결 결과가 부당하다며 동물보호법에 따른 처벌을 염원했다.

개농장에 있는 극히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개들. 개농장에서는 5Kg 미만부터 30Kg 이상 개까지 다양하게 발견된다. 털 길이와 체형도 제각각이다.
개농장에 있는 극히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개들. 개농장에서는 5Kg 미만부터 30Kg 이상 개까지 다양하게 발견된다. 털 길이와 체형도 제각각이다.
공방 끝에 대법원이 원심 판결이 부당했다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잔인성의 여부는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그 시대의 통념에 따라 객관적이고 규범적으로 판단해야 하며, 특정 동물의 도살 방법이 동물에게 가하는 고통의 정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다 하더라도 사용되는 도구나 행위 형태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동물별 특성에 따라 고통의 정도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여러 번 지적했다. 또한 동일한 물질, 도구 등을 이용하더라도 그 구체적인 이용방법과 행위가 다르다면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도살에 사용한 도구가 관련 법령이 규정한 것과 동일하거나 유사하다는 것을 기준으로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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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도 닭도 그렇게 죽이지 않느냐”

지난 11월과 12월, 대법원의 파기환송에 따른 전기도살 무죄 판결 사건 심리가 열렸다. 꽉 들어찬 방청객들을 지켜보는 가운데 날 선 양쪽의 공방이 이어졌다.

초로의 개 도살자는 어눌한 말투로 자신은 개농장을 이미 접었다고 말했다. 개 도살에 사용했던 조악한 전기 쇠꼬챙이는 오래전 인수한 개농장과 함께 물려받았다고 했다. 장비의 출처를 모르니 작동 원리 같은 건 애초 알 리 없었다.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떠올랐다.

문제는 이 초로의 피의자 뒤에 숨어있는 개 식용 산업의 그림자이다. 어두운 그림자는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들의 입을 통해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며 동물에 대한 무지와 잔인성을 뿜어내고 있었다.

도살 직전 계류장에 있는 돼지들이 장난감에 관심을 보인다. 최대한의 인도적 배려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도리이다.
도살 직전 계류장에 있는 돼지들이 장난감에 관심을 보인다. 최대한의 인도적 배려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도리이다.
그들은 380볼트 고압이 흐르는 쇠꼬챙이를 이용해 개를 도살했으며, 개가 물체를 무는 습성을 이용해 전기 쇠꼬챙이를 입에 물려 도살했다고 말했다. 개가 감전되어 죽는 과정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을 못 봤으니 잔인한 도살이 아니며 돼지나 닭, 오리 등도 전기를 이용해 도살하니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다.

‘바둑이들’은 내 어린 시절과 달리 현재 대부분 전기 감전되어 ‘개고기’가 된다. 전기 개 도살은 도살자들이 동물보호법에서 명문화한 ‘목을 매다는’ 행위를 피하기 위해 임의로 고안한 방법이다. 전기라는 물리력을 농장동물의 도살 과정 중 사용한다는 점에 착안해 도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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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고통, 알 수 있을까

동물들은 지각력 있는 존재로서 주변의 상황을 잘 인지하고 대처한다. 사실 모든 도살은 기본적으로 잔인하다. 그래서 고통의 경감은 언제나 판단의 기준점이 된다.

동물의 고통을 경감하려면 △죽음에 이르기 전 의식의 소실 △의식 소실 이전 스트레스와 공포가 없을 것 △의식 없는 상태에서의 절명이라는 세 가지 원칙이 모두 지켜져야 한다. 절명 전 의식 소실은 특히 중요해서 우리 동물보호법에서도 반드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다음 도살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그러나 개들은 올가미나 줄로 결박되어 도살되기까지 사투를 벌이다 극도의 흥분 속에서 의식 소실 없이 감전에 의한 심장마비로 고통사한다. 개들은 더는 도망갈 수 없어 마지막 저항으로 입에 쑤셔 넣어지는 전기봉을 무는 것이며 이 순간 극도의 공포 상태가 된다. 전기에 감전되면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몸부림조차 칠 수 없어 맨눈으로 그들의 고통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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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동물의 도살과 개의 도살

관계 법령에도 ‘전기’는 일련의 도살 과정에서 기절을 위해 사용되는 한 단계로서만 규정되어 있으며 그마저도 동물별로 전기 기절 장비의 정확한 적용을 위한 동물 고정 방법, 전극이 피부에 닿는 위치와 면적 등 세부 사항이 다르다.

체격과 털의 길이, 체중이 다양한 개를 인도적으로 기절시키기 위한 고정의 방법도 전압과 전류량을 정형화할 방법도, 이를 알기 위한 연구도 어느 것 하나 가능한 것이 없다. 구전된 도살 방법, 조악한 전기 쇠꼬챙이가 개들을 잔인하지 않은 죽음에 이르게 했을 가능성은 명백히 ‘제로’다.

오직 전기라는 것만 겹칠 뿐 농장동물의 도살과 개 도살은 같지 않다. 대법원 파기 환송심의 최종 결과는 상식과 규범이 우리 사회에서 작동하는지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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