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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농장동물

생명 다루는 새 직장…똥 치울 시간도 부족하다

등록 2019-03-31 13:43수정 2019-04-23 14:47

[애니멀피플] 김성만의 슬기로운 육식생활 6
사료 발효, 80톤 톱밥 삽질, 들러붙은 똥까지…본격 ‘양돈업자’의 삶
다른 농장에서 이사 온 돼지들. 작년 가을부터 대기하다 이곳에 온 탓에 다 자라서 왔다. 새 공간이 맘에 들었으면 좋겠다.
다른 농장에서 이사 온 돼지들. 작년 가을부터 대기하다 이곳에 온 탓에 다 자라서 왔다. 새 공간이 맘에 들었으면 좋겠다.
“직장이 참 가깝니더.”

축사 위쪽 밭 아주머니께서 나를 보며 외쳤다. 아주머니는 3㎞ 정도 떨어진 마을에 사시는데 이곳까지 산책 삼아 걸어오시는 것 같았다. 축사는 우리 집에서 200m 떨어져 있으니 참 가까운 것이다. 머쓱하게 “예, 그치요”하고 대답을 했다.

축사가 완공되고, 돼지들이 이곳에 자리 잡은 뒤부터는 매일 아침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 돼지를 굶기면 안 되니까 말이다. 보통 내가 도착하면 대부분은 몸을 파묻고 자거나 쉬고 있다. 내 발걸음 소리를 누군가 듣게 되면 짧고 굵게 ‘꿀’한다. 아마 다른 돼지들에게는 ‘밥 주러 왔다’ 정도로 들리나 보다. 그때부터 “꿀꿀” 소리가 시작되고, 축사 입구에 다다를 즈음엔 귀가 아플 정도로 요란하다. 꼭 양철판에 떨어지는 소나기 소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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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과 동시에 ‘밥 달라고 꿀꿀꿀’

잠입에 실패하고 상태가 그 정도 되면 뛰어야 한다. 대단히 흥분한 수십 개의 눈과 소리가 나를 향한다. 일단 발효실 앞까지는 뛰지만 발효실 문을 열고는 잠깐 발효 향을 느낀다. 천연발효빵 냄새, 된장 냄새, 청국장 냄새가 뒤섞여 있다. ‘오늘도 발효가 잘됐군’하고 생각하며 사료를 외발 수레에 옮겨 담는다.

밥통 자리에 사료를 놓으면 주로 혀를 이용해 떠먹는다. 그렇다. 개처럼 핥아 먹는 게 아니라 혀로 떠먹는다. 풀이나 과일은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먹지만 대부분 가루로 돼 있는 발효사료는 그렇지 않다. ‘쩝쩝’ 먹는 소리는 요란하다. 어릴 적 ‘쩝쩝거리지 말고 먹어라’하고 혼나던 게 자꾸 떠오른다. 돼지들 서로는 그런 밥상 예절이 없는 게 분명했다.

사료를 주고 나면 다시 사료를 섞는다. 미강이라고 부르는, 현미를 백미로 만들며 나온 가루가 주재료다. 가축(주로 소)에게 많이 주면 탈이 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돼지도 마찬가지인데, 발효가 덜 된 생 미강을 먹으면 여지없이 설사한다. 예전에는 죽을 끓여서 먹였지만, 요즘에는 공장에서 나온 배합사료도 싸기 때문에 잘 안 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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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 늘어 할 일도 태산인데…

우리는 발효를 통해 먹을 수 있는 사료로 변신시킨다. 섞은 재료들이 하루 이틀 만에 온도가 55℃까지 치솟는데 여간 흐뭇한 게 아니다. 발효사료의 온도가 50℃ 전·후면 아주 적절한 온도다.

먹여야 할 돼지 식구들도 늘어나고 있다. 작년 여름 일곱 마리였던 돼지들은 에크와 삼일이가 새끼를 낳아서 17마리가 되었고, 백설이와 굴이, 메이가 출산을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안동의 한 농장에서 흑돼지들을 데리고 왔다. 작년 가을부터 대기하고 있던 녀석들이라 이미 덩치가 크다. 그리고 다음 주에 또 이사가 예약돼 있다.

발효실을 만들었다. 발효는 먹을 수 없는 미강을 건강한 사료로 만들어준다.
발효실을 만들었다. 발효는 먹을 수 없는 미강을 건강한 사료로 만들어준다.
마릿수가 늘어난 뒤부터는 발효시켜야 할 사료의 양도 늘어났지만 그 외에도 할 일이 넘쳐나서 마음이 바쁘다. 축사가 준공됐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었다. 80톤 톱밥을 삽으로 퍼 넣었고 돼지 음수용 수도꼭지 설치도 꽤 골치가 아팠다. ‘창고’로 지은 곳은 작업대, 선반, 발효실이 들어차 이제 작업실로 불러야 할 판이다.

사료통도 스테인리스로 된 기성품을 설치하려고 했는데, 500만원 가까이 되는 돈이라 망설이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대구의 공단까지 찾아가 스테인리스 철판과 파이프를 샀다. 대략 10분의 1 가격으로 더 효율적인 사료통을 곧 만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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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라고 만들었더니…

해야 할 일들이 태산 같은데 며칠 전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도 더해졌다. 바로 똥 치우기다. 우리 농장 축사는 ‘톱밥 발효돈사’라 불리는 방식으로 톱밥 위에 똥오줌을 싸면 절로 발효가 일어나 냄새나 파리가 덜 생기는 게 특징이다. 심지어 발효된 똥을 돼지들이 스스로 먹기도 한다. 비닐하우스 임시 축사에서 그 모습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당황스럽게도 새 축사에서는 ‘돼지 더위 쉼터’라고 만들어 놓은 자리에 똥을 쌌다. 전부 톱밥 바닥으로 돼 있으면 여름철에 더울 게 뻔하므로 돈사 한쪽에다 폭 1.2m 길이 16m와 10m 정도 되는 콘크리트 공간을 만들었고, 최종적으로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냉수 사우나를 할 수 있는 자리였다. 만들 때 건축업자와 눈치 싸움을 엄청 했었는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곳을 화장실로 쓴 것이다. 각 방의 돼지들이 모두 똑같이 행동했다.

다행인 건 싼 똥들은 화장실을 오갈 때 밟히고 펴져서 말라붙었다. 냄새도 안 날뿐더러 발로 밟아도 별 감흥이 없다. 끝부분이 사각 모양인 삽으로 벗겨내듯이 긁어냈다. 오래된 똥은 꽤나 힘을 줘서 긁어야 했지만 다 긁고 나니 이 방식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긁어낸 똥은 외발 수레에 담아서 퇴비사로 옮겨두었다. 나중에 톱밥과 함께 발효를 시켜 밭으로 보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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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혐오하던 ‘양돈업’

어제는 하하농장 사업자등록증에 ‘양돈업’을 추가했다. 한때는 혐오하던 분야였는데, 이제는 나와 아내의 직장이 되었다. 우리는 공히 ‘양돈업자’다. 매일 아침 돈사로 출근해서 돼지들을 돌보고, 축사를 관리해야 한다. 1월30일에 축산업 허가를 받았으니 이제 새 직장에 두어 달 나간 셈이다. 아쉽게도 이 직장은 휴일도 없고, 정년도 없다. 오늘 한 일이 평생 반복될 일이어서 부담되는 건 없다. 다만, 돼지들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 마음이 무거울 뿐이다.

글·사진 김성만 하하농장 대표

다른 농장에서 이사 온 돼지들이 앞으로 생활할 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다른 농장에서 이사 온 돼지들이 앞으로 생활할 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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